인기검색어 : 자유칼럼, 에세이
> 연재칼럼 | 김영환 사에라
     
입체영화 안경의 추억
김영환 2009년 02월 13일 (금) 01:49:40
경제도 가라앉았고 사회도 어수선합니다. 새해의 즐거움은 온데간데없고 실업과 흉악 범죄에 찌든 민생이 헐벗은 겨울 나뭇가지처럼 앙상합니다. 희대의 살인광 강호순의 어이없는 미소가 떠오릅니다. 우리 사회는 어디로 가는 것인지…

일부 언론이 범죄를 예방한다는 차원에서 논란을 일으키면서 범인 얼굴을 공개했습니다. 그러나 범인 가족들에게 주는 영향을 고려하여 얼굴 공개에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필자는 범인의 얼굴을 공개한다고 해서 흉악 범죄가 크게 줄어들 거라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미 사이버 세계나 ‘엔터테인먼트’에서 ‘살인’을 일상화한 사회가 얼굴 공개를 얼마나 무서워하겠느냐는 거지요.

얼굴 공개보다 더 효과적일 방법은 헐리우드를 뺨치는 영상 대중 매체들의 광포한 악영향을 축소하는 것이 아닐까요. 제목조차 섬뜩한 ‘킬 빌’(kill ville:직역하면 ‘살인도시’). 지금 이 시각에도 이런 류의 인간에 대한 폭력과 외계 생물과의 전투를 담은 영화나 게임을 비디오나 인터넷으로 즐기는 젊은이들은 수없이 많을 것입니다. 영상 산업들은 평화가 너무 길어 지루한 것인지 가공할 인간의 적들을 생산해 놓고 불타는 적개심으로 이를 파괴하는 흥행을 일삼고 있습니다.

‘주라기 공원’에서 공룡 알 화석이 부화하는 것보다 ‘vraisemblance(있음직한 가능성)’가 훨씬 낮을 ‘괴물’이 사람을 마구 물어 죽이고 또 인간은 그를 잡으려고 혈안이 되는 것도 어찌 보면 오락을 가장한 살상의 다른 표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터미네이터’는 로봇을 죽이고 지구인들은 ‘에일리언’을 죽입니다. 무슨 목적으로 만들고 무슨 목적으로 죽이면서 무슨 메시지를 던지는 것일까요?

그간 우리 사회를 흔든 지존파, 박한상, 유영철 등 많은 패륜적 살인 사건의 바탕에는 잔혹한 영화의 폭력성이 깔려 있었다고 합니다. 범죄 영화는 범죄의 교본이라는 우려도 나옵니다. 이런 비난에 대해 영화 감독들은 범죄는 영화의 책임 아니라 이를 만들어내는 사회의 책임이라고 주장하겠지요. 영화에 등장하는 폭력은 개인이 맞설 수 없는 구조적인 사회악을 쳐부수기 위해 필수적이라는 식으로 논리도 펼치겠지요. 그러나 영화나 드라마, 게임물은 물론이고 그 제작 감독들 역시 사회의 축입니다.

필자가 어렸을 적에 1회용 셀로판 종이 색안경을 쓰고 입체 영화를 관람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서부영화에서 인디언이 화살이라도 쏘면 우리들을 향해 날아오는 것 같아서 극장 안은 비명으로 자지러졌습니다. 지금도 그런 청소년들이 있을까요. 그런 인간의 순수함을 밀어낸 원흉은 누구일까요?

‘머나 먼 다리’ ‘간디’ ‘찰리 채플린’ 등을 감독했고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영국의 리처드 아텐보로 경(86세)은 얼마 전 대형 스크린에 총과 칼이 등장해도 둔감해지는 문화를 만든 영화 산업을 비난했습니다. 아텐보로 경 자신도 왕년의 영화에서 연쇄 살인범을 연기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반성일까요? 그는 영화 속의 폭력 묘사가 범죄의 급격한 증가에 관련이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작년 5월, 영국에서는 10대 배우로 해리포터에 출연한 로버트 녹스가 런던의 술집 앞에서 칼에 찔려 숨졌습니다. 영국에서는 도검류 범죄가 4분마다 1건씩 일어난다고 합니다.

영화평론가이기도 한 아텐보로 경은 “30년 전에 (만약)개리 쿠퍼가 총을 꺼냈다면, 관중은 놀라서 숨을 삼켰다. 그러나 이제 폭력 행위는 다반사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에는 칼과 같은 무기의 존재를 용납한 책임의 일단이 있다”라고 경고했습니다.

범죄 예방 대책은 전 사회에서 이뤄져야 하지만 영화나 게임물도 예외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표현의 자유를 들먹일지는 모르지만 우리 사회에도 정착된 그런 영화의 폭력이 우리 젊은이들의 인간성을 황폐화하는데 기여할 것이라는 점은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 영화들이 대박을 터뜨려 극장이 미어터져서 GNP가 성장한다고 한들 국민행복지수도 증가하는 것일까요?

   
ⓒ 자유칼럼(http://www.freecolum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칼럼의견쓰기(1개)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신 아연 (123.XXX.XXX.28)
미디어의 폭력에 대해 분개가 일 정도입니다. 꼭 물리적 폭력이나 범죄 행위 뿐 아니라, 되바라지고 버릇없는 요즘 세대들, 심지어 가족간의 기본 예의, 부모에 대한 눈꼽만큼의 존경심마저 사라진 것에도 미디어는 책임을 져야합니다. '심슨'같은 만화를 보십시오. 저녁마다 그 만화를 보면서 부모와 기성세대를 조롱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답변달기
2009-02-13 07:39:55
0 0

다음에 해당하는 게시물 댓글 등은 회원의 사전 동의 없이 임시게시 중단, 수정, 삭제, 이동 또는 등록 거부 등 관련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운영원칙]

  • 욕설 및 비방, 인신공격으로 불쾌감 및 모욕을 주거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
  • 다른 회원 또는 제3자의 저작권을 침해하거나 불법정보 유출과 관련된 글
  • 다른 회원 또는 제3자의 사생활 침해 및 개인정보 유출
  • 공공질서 및 미풍양속에 위반되는 내용을 유포하거나 링크하는 경우
  • 불법복제 또는 해킹을 조장하는 내용
  • 영리 목적의 광고나 사이트 홍보
  • 범죄와 결부된다고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내용
  • 지역감정이나 파벌 조성, 일방적 종교 홍보
  • 기타 관계 법령에 위배된다고 판단되는 경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