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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게 지나친 ‘미로공원’
최창신 2009년 02월 14일 (토) 01:23:54
걸어서 탐라(耽羅) 일주- 후편(9)

‘명천 해장국’ 집에서 맛은 기막히게 좋고 서비스 정신은 기가 막히게 낙제점인 점심식사를 마치고 다시 빗길을 나섰다. 빗줄기가 좀 가늘어지긴 했으나 그렇다고 우비를 벗어도 될 정도는 아니어서 역시 비닐 우비를 앞뒤로 입은, 웃기는 몰골로 무장(?)하고 걸었다.

바닥이 떨어져 접착제로 임시변통을 한 신발이 늘 신경 쓰였는데 식당 근처 신발가게에서 마음에 드는 운동화를 살 수 있어 다행이었다. 비록 명품은 아니고 이름이 다소나마 알려진 회사의 제품도 아니었으나 우선 발이 편하고 튼튼해 보여 좋았다. 그 덕에 ‘탐라 일주’의 마지막 길을 마음 놓고 걸을 수 있었다.

길게 뻗어나간 벌판길. 빗줄기가 조금 더 굵어지고 있었다. 덩달아 바람도 아까보다 더 거친 숨결을 토해냈다.

   
아무리 고단하고 상황이 좋지 않아도 세화에서 조천 가는 길의 중간에 있는 ‘김녕 미로공원’은 꼭 보고 싶었다. 나무를 심어 미로(迷路)를 만들고 이를 오랫동안 잘 가꾸어 아름다운 명소로 자리매김한 곳이라 한다.

경기도 양평에서 비록 어쭙잖은 수준이긴 했으나 나무를 심고 가꿔 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궁금한 점이 많았다. 아울러 긴 세월, 말없이 참고 기다리며 일구어 낸 지은이의 손길을 가까이에서 직접 보고 싶었다. 그것은 또 다른 각도에서 확인할 수 있는 ‘느림의 미학’이 될 것이다.

아침에 숙소를 떠나면서 지도를 유심히 보아 두었기 때문에 길을 대강은 짐작하면서 걸었다. ‘김녕 미로공원’은 일주도로에서 왼쪽으로 2km 가까이 들어가야 된다.

감각적으로 좌회전해야 되는 지점을 통과하고 있는 듯싶었으나 아무리 보아도 도로표지판이 보이지 않았다. 길에 걸어 다니는 사람들이 전혀 없어 물어볼 수도 없었다.

대충 짐작대로 좌회전, 걷다가 확인해 볼까 하는 생각도 여러 차례 했으나 그렇게 객기(客氣)를 부릴 입장이 아니었다. 비와 바람이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아 체력소모가 심할 것이고 아침부터 계속 걸었기 때문에 이미 어느 정도 지쳐 있었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미로공원의 폐장 시간이 5시 30분이어서 길을 잘못 들어 조금만 시간을 낭비하면 입장할 수 없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신중하게 도로표지판이 나오기를 살피면서 걸었으나 발견할 수 없었다. 길이 동복리로 접어들 즈음 아무래도 지나쳐 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소방서 사무실로 들어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들의 설명은 이랬다.

“우선 안타깝게 됐습니다. 꺾어져 들어가는 지점을 한참 지나치셨습니다. 제주도 일원에 걸쳐 난립된 도로표지판과 관광안내판 등을 정비하는 중이라 일단 기존의 간판들을 모두 철거하고 제대로 된 것들로 통일시켜 나가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미로공원’의 안내판이 없어져 버린 모양입니다.” 공연히 소방서 관계관들이 미안해했다. 할 수 없는 노릇이지 별 도리 있겠나.

그렇지만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되자 다리에 힘이 빠지고 추위를 느끼기 시작했다. ‘김녕 미로공원’, 다음번에 찾아 가마. ‘김녕’? 자료에 보면 한자로는 ‘金寧’의 약자를 사용하고 있는데 상식적으로 보면 그 발음이 ‘금녕’이어야 맞지 않나? 부르는 것이야 자기들 마음이지만.

말이 조금 앞서 나갔으나 ‘김녕’ 바로 전이 행원리. 이 마을을 지나면서 보니 오른쪽, 즉 바다 방향의 언덕 위에 10여개의 하얀색 바람개비들이 적당한 간격으로 늘어서서 날개를 돌려대고 있었다. 좀 가까이 접근하며 자세히 살펴보니 바람개비 하나하나가 굉장히 큰 규모였다.

이건 또 무슨 관광상품인가? 제주도에 와서 보니 어지간한 것은 모두 볼거리로 만들어 놓았다. 각 지역마다 역사나 유래, 지형, 문화 등을 특화(特化)시켜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잘 하는 일이다.

그러나 좀 튀는 아이디어를 내다보니 ‘영화박물관’ ‘섹스박물관’까지 등장했다. 어? 영화나 섹스산업이 제주도와 얼마나 관련이 있길래 저런 박물관들이 다 모습을 드러냈지? 그렇군, 관광상품의 다양한 개발을 위해서는 그런 주제들도 한두 개 끼어 있는 게 나쁠 것 없겠지.

그렇다면 이 바람개비는 무엇을 특화시킨 것인가. 궁금했으나 당장은 알아볼 방법이 없어 나중에 조사해 보니 그건 ‘풍력발전기’들이었다. 옳거니, 그래서 이 지역, 즉 제주도의 동북부 해안선 부근이 그토록 거센 바람으로 시달리고 있었군!


멀리서 볼 때는 그리 커 보이지 않았으나 날개 지름이 20여m, 높이가 45m나 되어 15층짜리 빌딩과 맞먹는 크기였다. 발전기는 모두 15개. 제주도 전체 수요량의 1퍼센트 정도만 충당하고 있지만 연간 14억원에 한국전력이 매입하고 있기 때문에 투자비(2백억원)와 대비해 보면 짭짤한 장사가 되는 셈이다. 생각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바람도 돈이 되는군.

바람, 지금까지 다녀본 중에는 하와이의 그 ‘바람의 계곡’에 몰아치는 괴이한 바람이 세계 챔피언 감이었다. 그곳에서는 관광으로 사람들의 눈길을 모으고, 이곳에서는 풍력발전으로 실리를 챙기는군!

김녕 미로의 공원을 그냥 지나친 덕(?)에 당초 예정보다 조금 더 걸어 함덕 해수욕장 근처의 G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숙소와 근처의 식당(돼지고기집) 모두 만족할 만한 수준.


최창신
서울신문 기자 출신. 체육부(현 문화관광체육부) 대변인을 거쳐 체육과학국장·체육지도국장으로 서울올림픽 대비 종합전략을 기획, 한국의 4위 달성에 기여했다. 축구협회 수석부회장, 문화체육부 차관보, 2002월드컵조직위 사무총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태권도신문사 상임고문, 한국유소년축구회 회장, 프로축구단 서울유나이티드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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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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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담 (211.XXX.XXX.199)
미로공원, 인간의 손에 의해 자연이 훼손되지 않고 돋보이게 되는 곳도 있으니 참 다행스러운 일이지요. 공원을 만들어 운영 중인 외국인은 해마다 제주에다 장학금까지 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참 많은 교훈을 얻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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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16 17: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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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돌이 (124.XXX.XXX.117)
장로님 다음에 여행 가실 땐 저도 같이 가시죠~
혼자 가셔도 괜찮으시겠지만 이정표 없는 길을 가실 땐 제가 알아 볼께요.
참 힘드신 여행을 하셨네요... ㅋㅋ 식사는 그런대로 괜찮으셨다니 다행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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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15 00: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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