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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물머리
김희승 2009년 02월 21일 (토) 02:44:00
중앙선 전철을 타고 덕소를 지나 팔당으로 가는 동안 우측 창문으로 내다보면 강물이 유유히 흐르고 있습니다. 밝은 햇살이 비쳐들고 잠시 후 긴 터널을 지날 때쯤이면 스위스의 한 마을을 지나는듯한 착각에 빠집니다. 긴 터널을 빠져나오면 바로 운길산 역에 도착합니다. 이곳은 주위로 강과 전답과 산이 펼쳐져서 목가적인 분위기를 흠뻑 누릴 수 있는 곳입니다. 새로 지어진 운길산 역사(驛舍)는 첨단 건축술로 멋지게 치장하고 강변에 서있습니다.

불과 1주일 사이에 나는 두 번이나 이 역에서 내려 운길산에 올랐습니다. 이 역은 지난해 12월 29일에 개통되었습니다. 이틀 후인 12월 31일에 첫 번째로, 그리고 1주일 후인 올해 1월 7일 두 번째로 이 역에 내렸습니다. 연거푸 두 번씩이나 방문한 이유는 이곳에서 동포들의 눈물을 떠올렸기 때문입니다.

운길산에서는 양수리가 강 건너로 보이고 두 강이 만나 이룬 커다란 물의 세계를 볼 수 있습니다. 북한강은 북한 땅에서 발원하여 화천, 춘천, 청평을 차례로 지나 이곳으로 흐르고, 남한강은 대덕산에서 발원하여 영월, 충주, 양평 등을 거쳐 여기에 이릅니다. 두 물은 이곳 두물머리에서 만납니다. 북한과 남한의 강물이 한 곳에서 만나 만남의 기쁨을 맛보며, 온갖 회한을 털어내고 얼싸안는 모양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환성(歡聲)도 탄성(歎聲)도 웃음도 울음도 터뜨리지 않습니다. 그냥 고요히 만나 얼싸안고 떨어질 줄 모릅니다.

얼마 전 탈북자 김영순 씨의 글을 읽었습니다. 그녀는 요덕의 수용소에서 부모의 아사를 목도하였고, 탈출을 시도하다가 총살당한 아들의 죽음에 치를 떨었습니다. 청춘을 슬픔과 기아와 죽음의 공포로 채웠습니다. 오로지 자유를 찾기 위하여 만주로, 칭타오로, 베트남으로, 캄보디아로, 태국으로, 공안에 쫓기며 유랑하다가 천신만고 끝에 대한민국의 품에 안겼습니다. 북한 동포 삼백만이 굶어 죽었다는 기막힌 일도 함께 씌어 있었습니다. 이 땅에서 안온하게 살아 온 내가 이런 비극적인 일들을 어떻게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마는 이 두물머리에서 만나 얼싸안는 북한강물이 북한 동포들의 눈물이 모여 흘러내렸다는 사실만은 똑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운길산 봉우리에 구름이 걸리면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머문다고 합니다. 겨레의 슬픔을 목도하고 차마 그대로 떠나지는 못하는 모양입니다. 운길산에서 두물머리를 내려다보면 어우러진 강물은 때론 햇살을 받으며 때론 빗방울을 맞으며 서울로, 서해로 고요히 행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눈물의 강은 소리 없이 흐릅니다. 끝날 줄 모르는 비극의 공포를 떨쳐내지 못한 채 역사(歷史)를 따라 흐르고 있습니다. 엄청난 겨레의 비극 앞에 망연자실, 말을 잃습니다.

서울시립대 컴퓨터과학부 교수. 서울대 문리과대학 물리학과 학사, 계산학 석사, 미국 Texas A&M 대학교 전자공학 박사다. <영상인식>, <인공지능과 그 응용>, <PC 어셈블리어>, <Visual Basic>, <미국, 풍요와 탐욕의 두 거울>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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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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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른 사람 (211.XXX.XXX.45)
집 떠나는 걸 좋아하지 않는 저이지만 운길산 봉우리의 슬픈 구름을 보러 가고 싶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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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23 09:5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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