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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 일주를 마치며
최창신 2009년 02월 25일 (수) 08:28:10
걸어서 탐라 일주 -후편 (10, 최종회)

함덕에서 제주까지의 거리는 20km 남짓. 하루에 걷기에는 아무 부담없는 코스였다. 전날 오후의 계획이 틀어져 김녕 미로공원을 그냥 지나치는 바람에 길을 상당히 줄여 놓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탐라일주의 마지막 일정은 편안하고 여유있게 보내게 되었다.

평소와는 달리 해물요리로 아침식사도 챙겨 먹고 느지막하게 길을 나섰다. 풍력발전까지 가능하게 만든 제주도 북쪽 해안길의 거친 바람에 백발의 억새꽃이 흐느끼는 길. 지난밤에 충분히 휴식을 취해서일까 몸과 마음이 가볍기 그지없다.

덩달아 걸음도 해깝고 탐라의 들판이 가슴 가득히 안겨 온다. 아, 이제 조금만 지나면 이곳 탐라의 땅을 떠나야 한다. 힘들고 외롭게 걸어서일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정이 들었나 보다. 가슴한 구석이 잔잔하게 울린다.

“이별하면서도 저토록 아무렇지도 않게 춤을 추는 것은/ 나뭇잎 밖에 없을 겁니다./ 가벼우니 그렇지요. 남기는 것이 없으니 저렇지요.”(홍순관의 ‘낙엽-저렇게 가벼운 생을’에서)

그렇다. 삶의 흔적이 묻어있는 것들은 물론 삶 자체에서도 미련을 남기지 말자. 남기는 것이 없이 가볍게 떠날 준비를 하자.

   
  청소년 축구국가대표 선수로 뽑힌 동문을 축하하는 현수막. 부모의 이름까지 소개해 이채로웠다.  
조천을 거쳐 제주시에 이르는 길은 특별한 추억이나 이야기거리를 남기지 않았다. 큰길 옆에 있는 어느 학교 울타리에 나붙은 플래카드. 그 학교 축구선수가 청소년 레벨의 대표팀에 뽑혔다는 소식과 그동안 말로만 듣던 제주 최고의 명문 오현고등학교를 잠시 보게 된 것 정도가 기억의 옹달샘에 남아 있을 뿐이다.

그밖에 길에서 배운 것 한 가지. 처음에는 특별히 관심을 갖지 않고 그냥 지나쳤는데 동일한 현상이 끊임없이 펼쳐짐에 따라 의아(疑訝)하게 여겨지는 것이 있었다.

거의 제주 전역의 길섶 크고 작은 공간을 뒤덮고 있는 저 푸성귀. 스스로 자라나는 야생초라고 보기에는 모든 빈터를 약속이나 한 듯 장악하고 있고,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심었다고 보기에는 다소 방만하고 생각없이 씨를 뿌려 놓은 것 같아 종잡을 수가 없다.

생긴 건 영락없이 열무 같은데 그렇게 보자니 철(계절)이 맞지 않고 너무 방치된 상태. 그렇다면 확인해 봐야지. 7cm쯤 자란 놈 하나를 뽑아 주머니에 넣고 제주시내에 들어 와서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에게 물었다.

“이미 시들어서 제대로 분별하실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이게 무슨 풀인지 아시겠습니까?”
“그게 바로 제주도의 상징처럼 되어 버린 유채꽃 나무입니다.”
아! 이런. 서울 촌놈 같으니. 다 자라 1m 이상 커서 노란 꽃을 달고 있는 유채꽃만 보았지 이런 건 눈여겨 본 적이 있나.
“그럼 사람들이 일부러 씨를 뿌린 것입니까?
“물론입니다. 지역별로 그렇게 가꾸고 있지요.”

드디어 제주도 일주를 마쳤다. 대체로 재미있고 즐거웠다. 비바람 때문에 힘들기도 했다. 그러나 가장 큰 걸림돌은 고독이었다. 특히 해질녘의 외로움은 특이했고 신비하기도 했다.

일주를 자축하는 의미에서 탐라의 마지막 밤은 은성(殷盛)한 분위기에서 보내기로 하고 무궁화 5개짜리 좋은 호텔에 들었다. 편하고 안락한 가운데 지나온 길을 더듬어 보며 정리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리민회관’. 처음에는 ‘개발의 편자’처럼 느껴져 심하게 비판의 칼을 들이댔는데 깊이 생각해보니 적어도 제주도에서만큼은 충분히 이해가 되는 일이었다. 행정적 기능 이외에도 독서실, 물리치료실, 체력단련장, 아이들의 공부방, 노인들의 각종 모임, 마을 대소사의 의논, 경조사를 위한 공간 등으로 다양한 기능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양 속담에도 ‘모든 것을 이해하면 모든 것을 용서 할 수 있다.’ 했거니. 잘 알지도 못하면서 흥분했던 게 미안해진다.

서귀포의 ‘서복기념관’에 얽힌 이야기를 자세히 소개하자 안덕면 대평리의 고정홍 리장께서 “대평리에도 ‘서씨과처(徐氏過處)’라는 서복의 발자취가 있다”고 알려 주었다.

‘대평리’가 어디에 있는지 지도를 펼쳐 보았다. 국내에서 발간된, 적어도 시중에는 있는 것으로는 가장 자세한 지도인데 찾을 수 없었다. 하모리 상모리 사계리 인성리 화순리 감산리 창천리 삼창리 덕수리 안성리 구억리 신평리 서광서리 상창리 상천리 동광리 산양리 서광리 저지리 광평리를 거쳐 북쪽으로 금악리 월림리 상명리 협재리 명월리 어음리 소금리를 지나 한라산 언저리의 장전리 금덕리까지 샅샅이 뒤졌으나 못 찾았다.

결국 그곳이 중문단지 서남쪽 바닷가 마을이라는 것을 나중에 다른 지도에서 찾아 낼 수 있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방문해 보고 싶다.

서복기념관 말이 나왔으니 한 가지 덧붙일 내용이 있다.

지난해 12월 26일 서복기념관에서는 중국의 원자바오(溫家宝) 총리가 쓴 휘호 ‘徐福公園’을 산동성 태산에서 캐낸 육중한 바위에 새겨 만든 현판의 제막식이 거행됐다. 높이 3.5m 무게 10톤짜리 현판이 만들어지기까지의 재미있는 우여곡절은 지난해 봄 발표한 기행문의 전편 후반부에 자세히 설명한 바 있거니와 이날 기념식에는 이세기 한중친선협회장과 김태환 제주도지사, 서귀포의 김형수 시장, 중국측에서는 차이우 문화부장관, 주한중국대사 등 1백여 명의 관계자들이 참여했다.

탐라의 땅 제주도, 육지에는 없는 온갖 자연과 아름다운 말, 그리고 인정이 살아있는 우리의 보고(寶庫)를 사랑하는 마음이 더욱 깊어졌음을 다시 한 번 느끼며 일주의 장정을 마친다.


최창신
서울신문 기자 출신. 체육부(현 문화관광체육부) 대변인을 거쳐 체육과학국장·체육지도국장으로 서울올림픽 대비 종합전략을 기획, 한국의 4위 달성에 기여했다. 축구협회 수석부회장, 문화체육부 차관보, 2002월드컵조직위 사무총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태권도신문사 상임고문, 한국유소년축구회 회장, 프로축구단 서울유나이티드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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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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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ffseoul (61.XXX.XXX.81)
수고 많으셨습니다. 두 번이나...
현수막에 부모 이름까지 적혀있는 사진 참 이채롭구만요.
이런 제주를 오래동안 찾지 못해 참으로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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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01 22:2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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