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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자의 시선/에드위 플레넬
신종호 2007년 01월 20일 (토) 14:05:09
동남아 지역 노동자들이 길거리를 지나가자 어느 꼬마가 엄마에게 저 사람들은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그 아이의 엄마는 못사는 나라에서 돈 벌려고 온 외국인들이라고 설명을 하더군요. 차이에 대한 아이의 호기심이 차별로 각인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동남아지역의 노동자들이 우리의 시선 속에서 ‘열등한 존재’로 재구성된 거죠.

콜롬비아대학의 비교문학 교수인 에드워드 사이드는 그의 저서 『오리엔탈리즘』에서 서양이 동양을 어떻게 재구성했는지를 면밀하게 밝혔습니다. 서양은 우월하고 동양은 열등하다는 것이 서구의 시선이며, ‘오리엔탈리즘’이란 동양에 대한 지배와 조정을 합리화시키려는 서구의 우월주의라는 것이 사이드가 말하는 핵심 요지입니다. 자기 집단의 동질성을 최고의 가치로 내세우고 다른 집단에 대해서는 폄하의 시선을 던지는 배타적 우월주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의 도처에서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인류의 평화를 위협하는 심각한 사태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세계주의 휴머니즘’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 에드위 플레넬의 『정복자의 시선』입니다.

『정복자의 시선』은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과 부시 부자(父子)가 ‘사막의 폭풍’과 ‘충격과 공포’라는 작전명으로 자행한 두 번의 이라크 전쟁과 긴밀한 연관을 갖고 있습니다. 1991년 아버지 부시가 바그다드를 공격해서 사담 후세인의 군대를 굴복시켰을 때 플레넬은 두 달간 콜럼버스의 여정을 따라 18개국의 과거와 현재를 심층 취재합니다. 그 내용을 묶은 것이 이 책의 2부 「콜럼버스와의 여행」입니다.

‘사막의 폭풍’으로 피폐해진 바그다드는 10년 후 9.11테러에 대한 보복으로 아들 부시에 의해 또 한 번 초토화됩니다. 플레넬은 그 사태를 목도하면서 문화 충격과 문명 충돌의 시대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라는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동양과 서양이 이항대립의 굴레에서 벗어나 함께 공존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사유합니다. 그러한 모색을 담고 있는 것이 이 책의 1부인 「혼합인」입니다.

‘진보’와 ‘자유’를 빙자한 두 차례의 전쟁은 동양은 야만적이고 서양은 문명적이라는 서방 세계의 편견이 유발한 비이성적인 폭력이었습니다. 그러한 편견을 지양하기 위한 방안으로 플레넬은 “동양을 서양으로 버무리고, 서양을 동양으로 버무리는 것. 국경들을, 할당된 장소들과 지명된 소속들을 휘저어버리는 것. 모든 것을 전혀 다른 방향에서 다시 생각해보는 것”으로 요약되는 ‘혼혈’의 저항 전략을 제시합니다.

그것은 눈앞에 주어진 것만 숭배하는 이들과 맞서 과거의 지식과 현재의 지식을 집요하게 포개나가는 것입니다. 그러한 포갬의 사유는 역사를 거꾸로 읽어가는 여정이기도합니다. 2부의 「콜럼버스와의 여행」은 그러한 탐구의 시선을 나침반으로 삼아 콜럼버스의 항해가 동양을 어떻게 타자화 했는지를 세밀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이탈리아를 출발하여 쿠바, 아이티, 도미니카, 푸에르토리코 등 과거 유럽의 식민지였던 18개국을 풍부한 고증과 자료, 과거 인물에 대한 회고와 그곳에서 현재 살고 있는 인물들의 인터뷰를 통해 서양의 의해 구축된 ‘타자들의 고통과 수난사’가 현재까지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가를 입체적으로 밝혀가는 저자의 예리한 시각이 돋보입니다.

서양에서 횡행하고 있는 혼혈 혐오, 반유대주의, 인종주의는 정복자들의 시선에 의해 타자화된 동양에 대한 낙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환대하는 원주민들에게 자애로운 시선을 던졌던 콜럼버스의 미소 뒤에는 장차 자행될 온갖 약탈과 탐욕의 씨앗이 잉태되었기에 그의 항해는 ‘야누스’적이라고 플레넬은 말합니다.

‘착한 야만인’들에 대한 콜럼버스의 경이와 예찬은 의도와는 상관없이 전혀 다른 길을 열었습니다. 그래서 콜럼버스가 개척한 길은 곧 몰락과 비극의 길이 되어버렸습니다. 이제 그 약탈의 시선은 미국에 의해서 주도되고 있습니다. ‘사막의 폭풍’과 ‘충격과 공포’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전쟁의 근원으로 작용하고 있는 ‘오리엔탈리즘’의 실체를 밝혀내면서 그에 대한 전략으로 ‘혼혈의 저항’을 제시하고 있는 플레넬의 『정복자의 시선』을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가 탐독해야할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휴머니즘에 대한 당위성 때문일 것입니다.

플레넬의 휴머니즘은 철학자들이 사변적으로 운운하는 추상적인 인류애가 아닌 개개 인간들(타자화된 개인)에 대한 구체적이고도 실제적인 열정과 사랑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인류는 사랑하면서도 인간들에게는 무심할 수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는 저자의 말이 마음 깊이 울려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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