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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우언라이(周恩來) 기념관에서
이석봉 2007년 01월 25일 (목) 11:47:52

연초에 티안진(天津)을 다녀왔습니다. 9년만의 재방문입니다. 당시는 겨울에 화석연료를 쓰며 도시가 온통 시커멓고 해를 볼 수 없었는데,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회색이지만 가끔 파란 하늘이 보였고, 햇빛이 도시를 비췄습니다. 당시는 못 본 대형 양판점들과 고층 아파트들이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9년 전에도 다른 일정 중에 짬을 내 저우언라이 기념관을 다녀왔습니다.(정확하게는 그의 부인 이름을 함께 써서 ‘저우언라이 덩잉차오(周恩來 鄧穎超) 기념관) 당시에 한 인물의 영향력이 이토록 큰 것인가 하고 가슴이 멍해진 적이 있습니다. 그 때의 감동을 다시 느끼고 싶었고, 사진도 몇 장 마련해야겠다고 생각해 이번에 또 찾았습니다.

그는 장쑤성(江蘇省) 출신이지만 기념관은 天津에 세워졌습니다. 학창시절을 이곳에서 보냈고, 그의 사후 시가 재빨리 기념관 건립을 계획했기 때문입니다. 이곳에는 그가 활동하던 각종 사진 자료가 시대별로 전시돼있습니다.

   
 
   
 
그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은 총리시절 그가 방문한 현장의 사진들입니다. 공장에서, 탄광에서, 건설현장에서 인민들과 함께 찍은 환한 얼굴이 인상적입니다. 총리 신분임에도 직접 노동을 하는 사진도 있습니다.

그에 대한 중국인들의 흠모는 기념관을 둘러보고 난 뒤 적힌 소감을 통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중국 인민의 영원한 등대’, ‘중국의 국부’, ‘인민을 사랑한 총리, 당신을 영원히 사랑합니다’, ‘위대한 총리, 당신은 인민의 가슴에 영원히 살아있습니다’… 그에 대한 찬사는 끝이 없고, 사람들은 그를 통해 사랑의 힘을 느끼고, 공인의 길을 봅니다.

3無로 그를 표현하기도 합니다. ‘재산이 없고, 자식이 없고, 무덤이 없다.’ 그는 공직생활을 하면서 축재하지 않았습니다. 부인인 덩잉차오(鄧穎超)와의 사이에 자녀가 없습니다. 공산당 중요간부 가운데 처음으로 화장을 했습니다. 매장으로 국토가 훼손될 것을 염려하며 솔선수범했고, 그 뼛가루는 만리장성에, 황하에, 황해에 뿌려졌습니다.

그의 일생은 조국애로 일관합니다. 봉건잔재와 제국주의가 기승을 부릴 때에는 압제에서 조국을 해방시키는데 힘을 쏟았고, 공산혁명 뒤에는 국가의 기틀을 마련하고 체제를 안정시키는데 전력을 다했으며, 문화대혁명 시기에는 홍위병의 소용돌이에서 나라를 구하는데 몸을 바쳤습니다.

오늘날 중국의 부흥의 기틀을 놓은 인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의 기반 위에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이 가능했고, 장쩌민과 후진타오의 부국강병 정책이 이어졌습니다.

그에 대한 재미있는 일화도 있습니다. 국빈만찬이 예정된 가운데 그가 주방에 와서 국수를 하나 말아달라고 하더랍니다. 주방장이 곧 산해진미가 나올 터인데 왜 그러시냐고 되물었다고 합니다. 국가 중대사를 논의할 때 배가 고프면 회의를 제대로 할 수 없으므로 미리 배를 채워 놓아야겠다고 대답했답니다.

무릎을 치고, 고개를 숙이게 하는 내용입니다. ‘사람’이 중요합니다. 저우언라이란 위대한 사람은 당대의 한 사람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많은 후대인들이 그의 기념관을 찾아 그와 같은 자세로 살아가겠다고 다짐하며 제2, 제3의 저우언라이를 만들어냅니다. 인물을 키워야 하는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라고 하겠죠.

기념관 마지막 코너에서는 그의 장례식을 담은 슬라이드 쇼가 상영됩니다. 1월의 늦은 밤에 추위도 마다않고 인민들은 그의 마지막 모습을 보려고 기다립니다. 마침내 운구차가 지나가자 눈물로 그를 보내는 모습에서는 함께 눈가가 촉촉해집니다. 그러면서 한 번 더 가슴을 칩니다. 우리는 왜 이런 인물이 없는가하고.

혹 天津에 가실 일이 있으시면 시간 내서 그의 기념관을 꼭 들러보시기 바랍니다. 시내에 있고, 둘러보는데 한 시간이면 족합니다. 기념관 위치는 天津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더군요.

자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국민을 마음 깊이 사랑하는 그런 인물을 그려봅니다. 따라오라고 다그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보듬고, 영향력이 큰 만큼 신중한 그런 인물을. 새해 복 많이 짓고, 늦었지만 21세기의 희망을 만드는 그런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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