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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를 이두화하는 사람들
김영환 2009년 03월 27일 (금) 08:22:32
국왕이 글자 발명을 핵심 과제로 수립하여 글을 만들어낸 국가는 우리나라가 유일한 예가 아닐까 합니다. 그러나 성군(聖君) 세종대왕이 1443년에 창제한 한글은 451년이 지나서야 공식적인 나라 글자가 되었습니다.

그 기간 동안 한글은 ‘반절’ ‘언문’ ‘암클’ 등 명칭에서부터 갖은 수모를 겪으며 명맥을 유지해왔습니다. 한글이 우리 글로 대접 받게 된지 불과 10여 년 뒤에 우리는 국권을 일본에게 상실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한글의 전폭적인 글 구실이 너무 늦었던 탓도 있었던 것이죠.

공문서는 한자였고 백성들이 이르고저 할 바 있어도 표현 못할 세상이었으니 지식과 사상이 널리 전파되어 국가를 발전시키고 문화를 활짝 꽃피우는 데까지 이르지 못한 것이죠. 아쉽기 한이 없는 노릇입니다. 가끔 한문 시가를 접하면 ‘꿈보다 해몽이 좋다’고 한글 번역이 뛰어남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니 한글이 있기 전에 우리 선조들은 얼마나 갑갑했을까요? 우리의 오랜 작품으로는 이두로 만든 향가 26수를 들 수 있습니다. 그 중의 하나를 들어봅니다.

君隱父也(군은부야)
臣隱愛賜尸母史也(신은애사시모사야)
民焉狂尸恨阿孩古(민언광시한아해고)
爲賜尸知民是愛尸知古如(위사시지민시애시지고여)…
안민가(安民歌)라는 향가의 앞 부분입니다.

현대어로 풀이하면
‘임금은 아버지요
신하는 사랑하시는 어머니요,
백성은 어리석은 아이로고
하실진댄 백성이 사랑을 알리라.’ 라고 합니다.

안민가는 지금으로부터 1,200여 년 전인 신라 35대 경덕왕 24년 (765)에 충담사라는 스님이 임금에게 지어준 것이라고 삼국유사는 전하고 있습니다.

향가는 한자를 빌어 때로는 소리, 때로는 뜻을 취했기 때문에 해독이 어려워 우리말로 완벽하게 재현해내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죠. 때문에 해석을 놓고 여러 학설이 존재합니다. 안민가에서 보듯이 주격조사 ‘은’은 한자 ‘은(隱)’을 빌어 표기되었습니다. 글자 없는 국민의 슬픔이죠. 지금 만개한 우리 글은 후손들의 지극한 행복입니다.

그런데 요즘에 시대착오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어제 시내버스 외부의 옆면을 보니 이런 광고 글이 있었죠. ‘서울시와 함께 일어서自’ ‘희망드림프로젝트’ 한글과 한자와 영어 가 뒤섞여 누더기가 된 표현입니다. 이런 ‘프로젝트’를 만들고 표현하는 사람이 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월급받고 있는 사람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습니다.

그뿐인가요? 걸핏하면 일간지에도 ‘뭐든지 多 있다. 뭐든지 多 된다’ 라는 표현들이 등장합니다. ‘金치된 김치’, ‘金치된 갈치’ ‘金치 현실화? 배추 무 값 작년의 2-3배? ‘ 등등 한자의 음과 훈을 빌어 장난치는 어이없는 언어감각이 확산되고 있죠.

오죽하면 어느 네티즌이 인터넷의 기사 뒤에다 이런 댓글을 올렸겠습니까? ‘참으로 우리 농민들 불쌍합니다. 농촌의 고단하고 힘든 삶을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10킬로그램 배추가 6천원 정도가 아니라 6만원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언론에서 농산물에 대해서 금값이라는 표현을 자제해 주시길 간곡히 바랍니다. 수도작 1만5천평 농사가 도시에서 하루 몇 시간의 알바만도 못하다는 현실을….’. 그러니 말도 더럽히지만 현실도 모르는 셈이죠.

소통의 위기는 생존의 위기로 통합니다. 자기들만이 쓰는 암호 같은 언어는 멸망의 지름길입니다. 아름다운 한글을 오염시키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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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5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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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타 (115.XXX.XXX.128)
좋은 글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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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31 21:46:17
0 0
조형자 (119.XXX.XXX.228)
글을 읽고 나니 제가 많이 유식해진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좋은 글이었습니다.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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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29 12: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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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완 (119.XXX.XXX.228)
선생님의 글을 흥미 있게 읽었습니다. 한글이 오늘의 빛을 보기까지는 너무나도 많은 풍상을 겪었습니다. 한글에 대한 가장 최근의 모욕은 이승만의 철자법을 없애자는 문화 파동이었습니다. 그가 얼마나 그릇된 지도자였음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그는 한강 다리를 끊어 서울 시민들의 피난 길을 막고 자신은 일본에 피난갔고 수복해서는 서울에서 구사 일생으로 살아 남은 사람들을 부역했다는 죄로 처벌한 위이이였습니다. 한글은 우리의 가장 큰 자랑입니다. 한글이 없었다면 한국이 지금처럼 발달도 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인터넷 선진국도 되지 못했을 겁니다. 지금은 한글의 세계화를 추진할 때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F, V, th, Z, L 등의 소리를 한글에 첨가해야 합니다. 문교부와 한글 전문가들이 해야할 과제입니다.
이종완/연변 과기대 영어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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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28 17: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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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아연 (123.XXX.XXX.28)
글과 말은 혼이거늘... 소중한 것일수록 그 가치를 모르기 쉽다는 것이 정말 가슴아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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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27 17:29:03
0 0
한세상 (119.XXX.XXX.228)
요즘 신문, 방송 등 각종 매체, 정부 정책...모두 한글을 망치지 못해서 안달입니다. 한글은 우리의 얼이고, 우리가 가장 효율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도구입니다. 휴대전화에서 문자보내기 등 한글이 얼마나 우수한 글자인가는 도처에서 확인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우수한 한글을 못 망쳐야 안달을 해야 할까요? 서울시의 정책등 많은 부분이 별 뜻도 없이 영어로 되어 있는 것을 보면 아찔합니다. 빨리 고쳐나가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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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27 11: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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