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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고픈 분들에게
신아연 2009년 04월 06일 (월) 08:41:39

작년 9월에 쓴 <글은 뭐 아무나 쓰는 줄 아세요?> 라는 칼럼에서 말씀드린 적이 있지만 저를 만나면 어떡하면 글을 쓸 수 있는지, ‘글쓰는 법’을 가르쳐 달라는 분들이 더러 계십니다.

글이 쓰고 싶은 이유야 각기 다르겠지만, “글을 쓸 수만 있다면 답답하고 각다분한 현실을 조금이라도 잊을 수 있을 것 같다.” 거나 “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 능력만 된다면 그렇게라도 풀어내고 싶다.” 는 분을 대하면 가볍게 대꾸하기가 송구해지면서 숙연한 마음조차 듭니다. 그리고 조금은 당황스럽습니다.

어찌 보면 글 쓰기에 신앙적 견지를 싣는 듯한 그 분들의 거창하고 결연한 자세가 애초에 제게는 부담스러운 데다 , 지금까지 글을 쓰면서 그 분들의 기대처럼 순전하고 진지하게 임한 것이 과연 몇 번이나 있었는지 돌아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글도 글 나름이지만 누가 그렇게 ‘글 쓰는 일의 대단함’을 무작정 머릿속에 심어놓았는지 글쟁이로서 양심에 걸리고 부끄러워집니다.

우리나라의 이름있는 한 국문과 교수가 일반인을 상대로 수필을 지도하면서 정직한 마음 자세로 꾸밈이 없어야 한다는 의미로 “ 팬티까지 벗어라”고 했다지만 무조건 벗는다고 글이 써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글을 쓰려면 우선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일반적인 생각도 꼭 맞는 것은 아닙니다. 다독이 도움이 되는 것은 분명하지만 ‘읽는 것’과 ‘쓰는 것’은 사실 별개의 능력입니다.
여북하면 어쭙잖은 작법같은 걸 설파하는 것을 두고 ‘의도하지 않은 사기’라고까지 하겠습니까. 단언컨대 ‘글 쓰는 법’ 같은 건 없다는 뜻입니다.

엊그제 어느 모임에서 이런 맥락으로 제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아주 둔한 아이가 아닌 이상, 하려고만 하면 학교 들어가기 전에 한글을 떼는 것이 독별난 것도 아니지만 제가 국민학교 입학 전에 한글을 배운 이유는 좀 독별난 데가 있습니다.

전에 밝혔듯이 2년 전에 돌아가신 제 아버지는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무기형을 선고받고 20년 20일을 복역한 후 1988년 광복절 특사로 가석방되셨습니다.
아버지가 기한 없는 옥살이를 시작하셨을 때 막내였던 저는 너댓 살 정도였는데 제가 한글을 배운 것도 그 무렵 아니면 그 다음 해였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감옥에 계시는 아버지께 편지를 쓰게 하려고 언니와 오빠가 제게 한글을 가르쳤지 않나 싶습니다.

같은 사건으로 제 아버지와 함께 복역하면서 가족에게 써보낸 서한을 모은 성공회 대학 신영복 교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 있듯이, 제게도 대여섯 살부터 시작하여 거의 매주 20년을 이어온 서한집 '감옥으로의 사색'이 출간되지 못한 채 지금껏 가슴 한 켠에 남아 있습니다.

대여섯살 작은 계집아이의 눈을 통해 남편과 아버지 없이 살아가는 가족들의 모습이 기록으로 남겨지기 시작한 이후, 전달자가 10대 사춘기와 20대 청춘을 통과하는 내내 감옥 이편과 저편을 넘나드는 소식은 줄기차게 이어졌습니다.

솔직히 여섯 살에 시작하여 스물여섯에서야 그만둘 수 있었던 ‘편지질’은 어린 나이에 당한 혹독한 형벌이자 끝없는 고통이며, 기껏 좋게 말해봤댔자 극기 훈련 같은 자신과의 싸움거리였습니다.

특히 시험기간이나 몸이 아플 때, 친구들과 놀고 있을 때도 ‘편지를 써야 한다’는 중압감은 항상 저를 짓눌렀습니다. 맘 편하고 개운하게 지낸 기억이 지금껏 별로 없는 걸 보면 “편지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는 절규가 맘속에 늘 끓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결국 그것이 밑거름이 되어 지금은 남한테 읽히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글 나부랭이라도 쓸 수 있게 되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남다른 훈련의 결과로 내 속의 재능이 드러나게 되었고 그것이 개발되어 작으나마 어떤 성취를 가져왔다고 해야 할까요.

‘어떡하면 글을 쓸 수 있는지’ 제게 물어오신 분께 대답이 되었나요? 그냥 글을 쓸 수밖에 없겠습니다. 저처럼 한 20년 습작을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사실 이 칼럼을 쓰기 위해 저 또한 ‘글 쓰는 법’이라는 검색어를 만들어 인터넷 검색창에 띄워 보았더랬습니다. 그러면서 실소를 금치 못했습니다. ‘그렇게 쓰고도 아직도 이렇다 할 글 쓰는 법을 모른단 말인가’해서입니다.

최근에 저는 시드니의 한 교민단체로부터 동포 사회 문화강좌의 일환으로 ‘글짓기 교실’을 맡아달라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사실 그 일이 계기가 되어 지금 이 칼럼을 쓰게 되었습니다. 자칫하다간 시드니 한인 사회에 ‘의도하지 않은 사기’를 치게 생겼기에 덜컥 제안을 받아들여 놓고는 걱정이 이만저만 아닙니다.

   




신 아연 :ayounshin@hotmail.com
신 아연은 1963년 대구에서 태어나 이화여자대학교 철학과를 나왔다.
16년째 호주에 살면서 <호주 동아일보> 기자를 거쳐 지금은 한국의 신문, 잡지, 인터넷 사이트, 방송 등에 호주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저서로는 이민 생활 칼럼집 <심심한 천국 재밌는 지옥> 과 <아버지는 판사 아들은 주방보조>, 공저 <자식으로 산다는 것>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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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8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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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123.XXX.XXX.28)
선생님을 약올려주셨군요.^^ 읽히기 위한 일기란 실상 일기의 참 의미는 아니지요. 그 때의 일기쓰기는 그저 쓰는 훈련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무난한데, 그렇게 생각한다면 님이 쓰신 주제가 '매맞을꺼리'가 될 일도 아니잖습니까. 외람된 말씀이지만 님은 아마도 여간 아닌 어린이였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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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21 08: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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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희 (211.XXX.XXX.38)
초등학교 시절,

일기장을 만들어 매일 일기를 써가야 했습니다.

일기를 써 가면, 선생님께서 피곤하신 날은 쉽게 "참 잘했어요!" 도장을 받았고,

선생님 컨디션이 좋은 날은 제출한 일기를 유달리 꼼꼼히 읽어보시는 바람에,

빨간 볼펜으로 이런저런 지적을 받거나, 운 없는 날은 손바닥을 회초리로 맞기도 했습니다.

특히 제가 손바닥을 맞았던 이유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일기를 너무 쓰기 싫은 나머지 너무 자주

"일기를 쓰기 싫은 이유", "일기를 쓰는 법", "일기란 무엇일까" 등

그 날의 일기의 주제로 '일기' 그 자체에 대한 것을 써서 일기장을 채웠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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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16 09:4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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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123.XXX.XXX.28)
맞습니다. 시대를 잘못만났다는 말이 있지요. 어떤 세대는 시대의 포탄을 고스란히 뒤집어 쓰게 되지요. 제 부모님 세대가 바로 그런데, 폭풍을 가로지르며 그 세월을 견뎌내신 것에만도 큰 존경을 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원래는 말씀하셨듯이 명랑한 성품을 타고난듯 한데 워낙 이리저리 짓눌려서 찌그러져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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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08 06: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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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필코 (123.XXX.XXX.28)
성철 스님이 강론을 끝내고는

꼭 내말에 속지말라고 하셨다 말씀이 생각나는 군요.

사기죠. 마음의 위조지폐를 만들어 마구 뿌려대는 것이지만

다른 사람을 조금이라고 행복하게 해준다면 예쁘게 보아줄 사기라고

하겠네요.

좋은 글 많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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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07 20: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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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희 (210.XXX.XXX.103)
제 아버지 어머니 세대에는 과부도 많았고 전쟁 고아와 상이 군인들로 넘쳐 났다고 하셨습니다. "어느 쪽이건 모두 역사 때문이야!" 하며 뜻모를 한탄을 자주 하시던 아버지의 말씀의 의미를 이제야 알겠습니다. 오로지 반공을 생활 철학으로 삼으며 살아 가신 분의 어울리지 않던 말씀...한국전 과부로서 재혼하였으나 남편의 구타에 시달리다 자살인지 타살인지 조차 밝혀 지지 않은 채 나무에 매달려 죽은 어머니를 평생 그리워하면서 힘겹게 살아 온 제 선배님의 응어리도 갑자기 생각납니다. 한많은 이 민족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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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07 16: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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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아연 (123.XXX.XXX.28)
두 분의 격려에 황공함을 느낍니다. 구름 속에 있으면 구름을 느낄 수 없듯이, 저희 가족 역시 여느 가정처럼 평범(?)하게 살았습니다. 빨갱이 가족이라는 낙인이 늘 찍혀있었지만 저희 나름으로는 웃기고 하고 즐겁기도 한 날이 왜 없었겠습니까. 그저 뒤돌아보니 오늘의 저를 형성한 것에서 남들에게는 없는 시대의 아픔이 찾아지더라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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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07 08: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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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알바트로스 (210.XXX.XXX.253)
특히 어머님께......아주 어릴 때 부터 글로 쓰인 것이라면 신문,책 가릴 것 없이 읽다 아버지의 서재의 모든 책..중고등학교 도서관의 모든 책(모르는 한자는 얼렁뚱땅 해석하여 넘어가는 기지까지 생겼고)..읽기 중독증에 걸리다시피하였던 제게 남북 분단의 근본적 원인과 그로 인해 동족이 겪어야 하였던 질곡과 원통함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었고 아직 한반도에 떠돌던 원혼이 천국으로 완전히 올라갈 날은 멀었나 봅니다만. 그 폐해의 중심에서 살아야 하였던 가족들에게 가장 큰 공감대(empathy)가 형성된 것도 어쩌면 제게 잠재해 있는 문학인적 본능이 아닌가 합니다만.....신아연님도 글을 쓸 수 밖에 없게 한 환경에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는 여유까지 생겼을 것으로 유추하면서... 공감을 불러 일으키는 유머와 재치가 넘치는 글 변함없이 올려 주시길 앙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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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06 17: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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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us (121.XXX.XXX.164)
오랜 세월 마음속에 담겨진 사연들이 숙성되어 지금의 글이 되었군요! 마음이 너무 서러워무거울 때 글로 퍼내지 않았다면 터지고 말았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겠습니다. 지금 갖고 계시는 글에 대한 재능이 부친께서 주시고 가신 독한 선물인 줄은 몰랐습니다. 잘 가꾸시고 따뜻하게 보듬어셔서 추운 겨울에도 피어있는 꽃이 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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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06 10:5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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