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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호 부르는 동무들
임철순 2009년 04월 20일 (월) 09:33:54

국어학자 一石(일석) 李熙昇(이희승ㆍ1896~1987)의 회고록 <딸깍발이 선비의 일생>은 일찍이 국권 상실시대에 국어 연구에 뜻을 세운 뒤 역경과 고난을 이겨내고 마침내 큰 업적을 쌓은 학자의 삶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일석의 키는 작고 회고록도 두껍지 않지만 그의 학문적 성취는 크고 아득합니다.

일석이 이화여전 교수일 때 <남으로 창을 내겠소>라는 시로 유명한 月坡(월파) 金尙鎔(김상용ㆍ1902~1951)이 그 학교에 함께 있었습니다. 일석은 자신이 쭉정이 밤송이라면 월파는 톡톡히 여문 회오리밤톨이라고 했습니다. 회오리밤이란 밤송이 속에 외톨로 들어 있는, 동그랗게 생긴 밤을 말합니다. 둘 다 누가 더 땅에 가까우냐 할 만큼 키가 작았지만, 월파는 아주 다부지고 야무졌다는 것입니다.

일석이 어느 날 월파에게 장난을 걸었습니다. “호가 월파이니 자네가 달을 사랑하는 건 잘 알겠는데 坡자가 틀렸어. 一年明月今宵多(일년명월금소다)라는 시구가 있지만 나는 이걸 一年今宵滿地月(일년금소만지월)이라 고치고 싶네. 자네 호를 地月(지월)이라고 바꾸게. 아주 존대해서 地月公이라고 불러줄 테니.” 월파는 긴가 민가 하다가 “호 하나쯤 더 가져도 괜찮겠지”하고 응낙했답니다.

그러자 일석은 신이 나서 “地는 땅이고 月은 달 아닌가. 그러니까 자네가 땅달보라는 말이야. 어때 훌륭하지?”하고 놀렸고, 좌중의 사람들이 박장대소를 했답니다. 얼굴이 발개진 채 한참 앉아 있던 월파는 그 보복으로 일석에게 棗核公(조핵공)이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고 합니다. 대추씨처럼 작은 놈이라는 뜻이지요.

일석이 인용한 시는 韓愈(한유)의 <八月十五夜贈張功曹(팔월십오야증장공조)>라는 작품으로, 마지막 부분이 一年明月今宵多(일년명월금소다) 人生由命非由他(인생유명비유타) 有酒不飮奈明何(유주불음내명하)라고 돼 있습니다. “1년 동안에 밝은 달이 오늘 밤 가장 밝구나. 인생살이 명에 달렸지 다른 사람에게 달려 있지 않네. 술이 있는데도 마시지 않는다면 저 밝은 달을 무엇 하리오”하는 멋진 시입니다.

그 다음부터 서로 지월공, 조핵공 하고 놀려 부르며 어울리다가 월파가 먼저 세상을 뜨자 일석은 “쭉정이 밤송이는 아직 이 땅에 남아 이 글을 쓰고 있는데, 아람 밤톨같이 오달지고 단단하던 월파는 천상에서 아래를 굽어 살피고 있다”며 “여보게, 地月公 대신 天月公(천월공)이라는 호를 경건히 지어 올릴까”하고 애도했습니다.

无涯(무애) 梁柱東(양주동ㆍ1903~1977)의 <文酒半生記(문주반생기)>에는 도쿄에서 함께 하숙했던 李殷相(이은상ㆍ1903~1982)에게 鷺山(노산)이라는 호를 지어준 경위가 기록돼 있습니다. 귀가 유난히 두터웠던 노산의 원래 호는 春園(춘원) 李光洙(이광수ㆍ1892~1950)가 지어준 耳公(이공)이었답니다. 무애가 “놀리느라 지어준 것이니 그 호를 쓰지 말라”고 하자 새로 하나 지어달라고 부탁을 하더랍니다. 그래서 그의 고향 뒷산 鷺飛山(노비산)에서 따온 鷺山이라는 호를 지어 주었고, 노산은 그 후 줄곧 이 호를 썼습니다. 그러나 무애는 사실 격에 맞지 않게 우국지사연하고 국수적인 그의 언동이 티꺼워 ‘물이 아닌 산의 해오라기’라는 야유의 뜻에서 호를 지어주었다니 우스운 일입니다.

이렇게 아호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고등학교 동기 하나가 지난해 말 제안한 아호 짓기 운동이 친구들 사이에서 대단한 호응을 얻고 있기 때문입니다. 치과의사인 그는 언제 그렇게 한학을 공부했는지 놀라울 만큼 박식하게 아호에 관한 모든 것을 설명하고, 우정을 다지면서 한문 공부는 물론 아름다운 우리말을 찾아내 사용하는 새로운 문화 활동으로 아호 갖기를 제안했습니다.

그의 말을 인용하면, 우리나라에서는 최근까지도 자식이나 손아랫사람의 이름은 불러도 친구나 윗사람의 이름은 부르지 않았고, 성인이 되면 字(자)를 지어 주고 號(호)나 字를 불렀습니다. 풍류적이고 우아한 호를 짓고 서로 불러 주었던 선조들의 취미를 되살려 시대의 멋진 문화 현상으로 발전시켜 보자는 그의 제안은 전폭적인 환영을 받았습니다. 그는 호가 없는 경우 호를 짓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홈페이지에 올리도록 하고 이에 맞춰 친구들이 지어주는 호가 마음에 들면 작명료를 적당히 동기회 기금으로 내자는 제안까지 했습니다.

그 이후 동창회 홈페이지에 신설된 ‘별호ㆍ아호 작명코너’는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 코너를 통해 호가 있는 친구들이 의외로 많은 것을 알고 놀랐습니다. 장인이 호를 지어 주었다는 陽村(양촌), 아버지의 호를 그대로 물려받았다는 曉峰(효봉), 처가의 고향이라는 錦山(금산), 그리고 아버지의 호 竹史(죽사)라는 사무실을 운영하는 친구 등등.

한의사인 친구는 士與(사여)라는 字가 족보에 올라 있다고 소개하고, 큰아버지가 좋은 친구들과 잘 어울리라고 지어 주신 이름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의 호는 한학자가 지어준 洪卿(홍경)이었다는데 마음에 들지 않아 스스로 여러 가지 붙여 보다가 지금은 聽雨軒(청우헌) 臥嘗齋(와상재) 氷淵(빙연), 이 세 가지를 쓰고 있답니다. 청우헌은 창틀에 턱 고이고 뜨락에 내리는 빗소리를 듣는 모습을 생각하며 지은 것이고, 와상재는 와신상담이 아니라 게을러서 누운 채로 먹는다는 의미랍니다. 빙연은 시경에 나오는 如履薄氷 如臨深淵(여리박빙 여림심연), 살얼음 밟듯 깊은 못 가에 선 듯 매사에 조심해야 한다는 말이 환자를 보는 자신의 직업에 맞는 것 같아서 氷과 淵 두 글자를 따온 것이랍니다.

빙연에 대해 그의 아내는 꼭 무협지에 나오는 여자 이름 같다고 놀렸답니다. 그래서 氷淵堂(빙연당)으로 바꿀까 하다가 아무래도 빙연은 그 뜻이 너무 삼엄해 호로 쓰기에 마땅치 않은 듯 해서 버리기로 했으니 당분간 청우헌으로 불러 달라는 게 그의 주문이었습니다. 내가 그 글을 읽고 “아니, 자네같은 B라인 몸매가 무슨 놈의 빙연이야? 푸하하하”하고 댓글을 달았습니다. 사실 그는 무슨 의사가 이럴까 싶을 만큼 끝없이 먹는 사람입니다. 언젠가 점심을 함께 먹고 커피나 한 잔 하자고 했더니 생맥주가 커피보다 더 싸다며 나를 호프집으로 끌고 가 500cc 하나씩 마시게 한 친구입니다.

청우헌이라는 그의 호는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중국 수저우(蘇州)의 유명한 정원 拙庭園(졸정원)에 기왓장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감상하기 좋게 지은 청우헌이라는 건물이 있다더군요. 그 B라인의 청우헌은 절친한 동창에게 溫訥齋(온눌재)라는 호를 헌정했는데, 늘 따뜻하게 친구들을 배려하는 모습이 좋아 溫자를 쓰고, 말은 조금 덜 하라고 訥을 골랐답니다. 내가 봐도 그 친구가 말을 많이 하는 건 사실입니다. 웃기도 물론 잘하고.

작명코너를 통해 空卮(공치), 즉 빈 술잔이라는 호를 얻은 친구에게 동창들은 “비어 있는 잔에 우정과 사랑, 행복을 가득 채우시오”라고 축하해 주었습니다. 나도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남들이 자네를 꽁치라고 부르지 못하게 해 줄게”라고 한 마디 거들었습니다. 호를 받으면 得號酒(득호주)를 한턱 내는데, 이래저래 술 마실 일이 늘어나 좋습니다.

아호 짓고 부르기를 제안한 친구의 호는 참 독특합니다. 그의 말을 인용하면 옛 어른들은 콩을 심을 때 한 구멍에 세 알씩 심었습니다. 벌레에게 한 알, 새에게 한 알, 그리고 우리 인간이 먹을 한 알이었습니다. 그의 호는 그런 의미를 담아 '콩 세 알’, ‘三豆齋(삼두재)’ ‘세알콩깍지’를 거쳐 ‘콩밝(空朴)’으로 진화했다고 합니다. 자연을 사랑하고 환경생태운동에도 앞장서고 있는 그다운 호입니다.

그는 친구들의 호를 많이 지어 주었습니다. 그가 호를 지으면 철학원을 운영하는 觀訓(관훈)이라는 친구가 유식하게 풀이를 해 줍니다. 방구리(술이나 물을 담는 질그릇)라는 호도 쓰는 관훈은 정식으로 作號證(작호증)을 발급하고 있습니다. 그의 호 풀이를 예로 들면 이런 식입니다. 1)四柱上 火와 土가 필요한데 (이 호는) 火土가 그득하며 2)日干 戊土라서 신용을 바탕으로 한번 믿으면 거의 변함이 없는 성격이 땅과 같고 3)한글 발음 오행상에도 필요한 오행 火土로 충족하고 4)數理的으로 두 글자의 合이 21획으로 지도자가 되는 수-頭領格으로 萬人仰視之像(만인앙시지상)이 되고 5)姓과 함께 사용해도 좋게 수리를 맞추었다…운운. 생년월일을 바탕으로 이렇게 전문적인 해석을 들이대니 누가 감히 이의를 제기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것에 비하면 나는 별로 할 이야기가 없는 편입니다. 나는 중학교 때 도 닦는 구름이라는 뜻에서 道雲(도운)이라는 호를 내 멋대로 지었습니다. 그 학교는 불교중학교였고 나는 나중에 중이 돼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어 고등학교 때는 登海(등해)라고 지어 교과서건 노트건 마구 적어 놓았는데, 아마 치사하게도 登龍門(등용문)이라는 말을 의식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대학교 때는 靑圓(청원)이라는 호를 썼습니다. 푸른 하늘, 둥근 땅 그러니까 뜻을 높이 갖되 남들과 잘 어울리자는 뜻을 담아 지은 ‘和而不同(화이부동)’성 호입니다. 근래에는 志高淸遠 任重道遠(지고청원 임중도원), 뜻은 높고 맑고 아득하고 책임은 무겁고 갈 길은 멀다는 말대로 한자를 淸遠으로 바꿀까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콩밝이 淡硯(담연)이라는 호를 지어 주어서 요즘은 또 이 호를 쓰고 있습니다. 동창들은 홈페이지에 ‘담연 칼럼’이라는 자리까지 하나 만들어 주었습니다. 물 맑을 담, 벼루 연. 아마 내가 글을 쓰는 사람이어서 이렇게 지어준 것 같습니다. 우리 아버지의 호는 碧海(벽해)였습니다. 내가 登海라는 호를 버린 것은 결과적으로 잘한 일 같습니다. 당시에는 아버지의 호를 몰랐지만 부자가 똑 같이 海자를 쓰는 건 뭔가 잘못된 일인 것 같습니다.

콩밝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 호를 가장 많이 가졌던 분은 秋史(추사) 金正喜(김정희ㆍ1786~1856)로, 무려 503개였다고 기록되어 있답니다. 또 艸丁(초정) 金相沃(김상옥ㆍ1920~2004)) 시인은 20여 개의 호를 썼다는군요. 이런 식의 호가 아니라도 인터넷 강국인 우리나라는 대부분의 국민들이 인터넷 아이디와 닉네임이라는 또 다른 별명을 쓰고 있고, 블로그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여러 개의 퍼스나콘을 통해 자신의 개성을 창출하거나 확장해가고 있습니다. 재미있고 의미있는 현상입니다.

아호 짓고 부르기를 하면서 우리는 친구를 좀더 잘 알게 됐고, 좀더 성숙해지고 의젓해진 기분을 느끼고 있습니다. 야 이 자식아, 임마, 저 새끼는, 이런 따위의 말이 저절로 사라지고, 아울러 동무라는 우리 말도 잘 쓰게 됐습니다. 공산당 때문에 빼앗긴 정다운 말, 초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흔히 쓰고 교과서에도 나왔던 그 말이 이렇게 해서 되살아나고 있습니다. 나도 아호 짓고 부르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이것이 새로운 사회 문화운동으로 번져가면 좋을 것입니다. 삶의 지향과 기호에 따라 호는 바뀔 수도 있고, 더 늘어날 수도 있지만 그야 多多益善(다다익선)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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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5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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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옥 (210.XXX.XXX.99)
수필을 지도해 주시는 손광성 선생님께서 <홍차와 각설탕>이란 劇적인 수필을 쓰셔서 제가 홍차의 대사를 낭독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따뜻한 홍차의 이미지를 잘 살릴 수 있을까? 마음 쓰면서. 그 뒤 부터 제가 따뜻하다는 인사를 받게 되었습니다.
따뜻한 홍차의 이미지를 온전히 제 자신의 것으로 하려면 아호를 紅茶로 해야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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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21 23: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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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정자 (118.XXX.XXX.14)
제 별명이 오지랖이라 또 함 오지랖 실력 자랑 좀 할랍니다.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바로 알고 바로 판단하여 정의롭고 용감하게 행동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 사회에는 바로 알기는 커녕 어릴 때 부터 잘못된 교육으로 판단력 장애증에다 색안경까지 끼고 살아 색맹이 된 자칭 지식인들로 너무나 한심한 나라가 되어 최첨단 산업국이지만 정신 문화는 유구한 정체성을 못 벗어나고 있습니다. 바로 알고 바로 판단하여 정의롭고 용감하게 행동하며 살기 운동이라도 벌여야 할 것 같습니다. 무식하고 어리숙해도 인간성만 제대로 갖추어 있으면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못 배운 자들을 등쳐 먹거나 악이용하는 위선자,이중인격자들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훌륭한 분들이며 이 사회의 진정한 소금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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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21 21:4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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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인 (211.XXX.XXX.129)
임동무 나 한가지 불만이 있소. 같은 고등학교에 같은 대학을 같이 나왔는데 왜 그리 많은 걸 알고 있소? 나도 고등학교까지는 누구에게 빠지지는 않았다오 물론 대학은 좀 바뻐 늦게 갔지만...처음엔 애 한글하는데 하다가 이젠 jealous해...
설마 영어도 이렇게 잘하지는 ??? ....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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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21 08:4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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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 (211.XXX.XXX.129)
깝깝한 세상살이에 가끔 조흔 세상을 접할수있을것같은 기대가듭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김동호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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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20 15: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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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연못 (211.XXX.XXX.129)
저도 50대 중반인데 이런 글에 동조하려면 적어도 50대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하는 씁쓸한 생각이 듭니다. 한자를 멀리하니 우리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제대로 알 리 없는 세대들을 보면 마음이 가라앉습니다. 임선생님의 글에 적극 동조합니다. 아호 지어주기를 서로 한다면 그 아호에 맞추어 살아가려고 몸과 마음을 더 바르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좋은 글 늘 감사합니다. 금성초 교사 소진권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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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20 09:5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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