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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에 얽힌 추억
최창신 2009년 04월 24일 (금) 02:10:20
매화 꽃길 5백리(3)

   
  매화 꽃길을 걸으며 문득 10 년 전 일본땅 센다이에서 마주쳤던 우리 매화의 향기를 떠올리게 됐다.  
매화와 관련, 개인적으로 소중한 추억이 하나 있다. 이미 10년 가까이 지난 일이지만 너무 특이한 경험이라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당시는 2002 한일 월드컵축구대회의 준비작업이 막바지를 향해 치달으며, 그야말로 거친 숨결을 뿜어내고 있던 때였다. 한일 두 나라는 서로 협력하고 조정해야 할 일이 많았기 때문에 한 달에 한 번씩 만나 협의해 나갔다.

회의는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두 나라에서 겨끔내기로 열렸다. 한 번 우리가 일본을 방문하면, 그 다음 달은 일본 측이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식이었다.

교통이 편하고 일하기 수월하다고 서울과 도쿄에서만 만날 게 아니라 개최도시를 순방하면서 현장감있게 실무협의를 계속하기로 약속하고 매달 그대로 강행해 나갔다. 그것이 유명한 ‘한일 사무총장회의’였고 의제에 따라 담당 국장, 부장 등이 동행했다.

두 나라가 각각 10개씩의 개최도시를 선정해 놓고 있었기 때문에 모두 20개 도시를 순방해야 했다. 매화에 얽힌 이야기는 일본의 북쪽 도시 센다이를 방문했을 때 경험한 일이었다.

일본에서 돌아온 직후 국내 어느 일간지에 ‘일본 속에 핀 우리 향기’라는 제목을 달아 그 경험담을 소개한 적이 있다. 2천년 5월 초의 일이었다.

이번에 ‘매화 꽃길 5백리’를 걸으면서 당시의 기억과 감흥이 되살아나 그 칼럼 형식의 기사를 원문 그대로 소개해 보고 싶다. 기사가 신문에 실린 날, 일본 출장에 동행했던 우리 조직위원회의 전병묵 기획부장이 내 방으로 찾아와 “우리 일행 모두가 느꼈던 감정이 짧은 글에 아주 잘 표현되었다”며 칭찬해 주었다. 전 부장의 티 없이 환하게 웃던 모습이 잠시 추억의 스크린에 생생하게 떠오른다.

<일본 속에 핀 우리 향기>

우리 월드컵조직위원회의 해외 출장은 유명하다. 회의건 조사 활동이건 출장 목적만 달성되면 최단 시간 내에 귀국하는 것이 하나의 전통이 돼 버렸다. 그래서 유럽 출장은 ‘1박 3일’, 일본 출장은 가급적 ‘하루’로 처리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따라서 공식 일정과 귀국하는 비행기 시간 사이에 조금만 틈이 생기면 요령껏 단거리 관광을 즐기는 때가 있는데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것과 같은 기분에 휩싸인다.

2000년 들어 한일 사무총장 회의가 일본의 미야기[宮城]현 센다이[仙台]에서 열렸을 때의 일이다. 일을 다 마치고 약간의 여유가 있길래 두 시간짜리 구경을 했다. 일본의 3대 절경 중 하나라는 ‘마쓰시마’와 ‘스이간지[瑞巖寺]’.

마쓰시마는 아름답고 기묘한 모습들로 바다에 촘촘히 떠 있는 수백 개의 섬 무리[島群]이고 스이간지는 글자 그대로 절. 마치 키가 큰 서양 여성들의 늘씬한 다리처럼 일직선으로 쭉쭉 뻗어 올라간 30~40미터짜리 삼나무들이 열병식을 하듯 손님을 맞는 것 이외에는 일본의 여느 절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런데 본당 앞마당에서 우리는 숨이 멎을 듯한 일을 접하게 되었다. 400여 년 전에 우리 땅에서 시집온 두 그루의 매화가 혈육처럼 우리를 기다리며 서 있었던 것이다. 하나는 깨끗하게 흰 치마저고리, 다른 하나는 매혹적인 분홍빛 치마저고리로 성장을 하고 고향 식구들을 맞이해 주었다.

다테 마사무네[伊達正宗]라는 무장이 있었다. 미야기 지방에서는 영웅이다. 그가 임진왜란 때 우리 땅에 왔다가 매화의 아름다움에 반해 흰꽃과 분홍꽃이 피는 나무 두 그루를 아름다운 처녀 모셔가듯 가지고 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1609년 이 절을 중건하면서 본당 앞에 정성들여 심고 ‘와룡매’라는 이름까지 지어 주었다.
매화나무의 수령이 얼마인지는 모르겠으되 400년 이상을 버틴 탓인지 그 크기가 작은 초가집 만해 보였다.

꽃이 만발한 매화나무 위로 봄비가 내렸다. 비 때문에 향기는 많이 잦아들었을 텐데도 흰꽃은 그윽한 향기로 우리를 조용히 감싸 주었다. 요란하거나 천박하지 않으면서 정감이 넘치는 그 향기. 우리 시골 언덕에 스며 있는 바로 그 향이 일본 땅에 살아 숨쉬고 있는 것이다.

비에 젖은 우리의 매화. 고향 친척들을 향한 반가움인가 아니면 강제로 이국땅에서 외로이 살아야 하는 슬픔 때문인가. 매화는 눈물에 젖어 있었다.

다행스런 점은 일본 사람들이 관리를 잘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세심하게 가지치기를 하거나 늙어서 말라 버린 부분은 성형수술을 해 주고 영양 주사도 수시로 놓아 준다고 한다. 그나마 다행이다.




최창신
서울신문 기자 출신. 체육부(현 문화관광체육부) 대변인을 거쳐 체육과학국장·체육지도국장으로 서울올림픽 대비 종합전략을 기획, 한국의 4위 달성에 기여했다. 축구협회 수석부회장, 문화체육부 차관보, 2002월드컵조직위 사무총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태권도신문사 상임고문, 한국유소년축구회 회장, 프로축구단 서울유나이티드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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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3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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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병두 (211.XXX.XXX.194)
2000년 그리고 2009년, 근 10년전에 쓴 글이 어쩌면 어제 쓴 글처럼 생생하게 다가올까요?
글을 읽으면서 생각도 많이 하고 기분도 좋아지고, 제가 스이간지를 방문한 느낌이 듭니다.
글쓴이에게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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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19 13: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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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옥 (210.XXX.XXX.99)
애잔한 매화꽃에 이끌렸다는 무장은 진정 멋진 남자였습니다.
최창신님의 봄비에 젖은 매화를 아꼈던 마음을 보면. 너무나 아름다운 글 절제된 표현이 맘속에 오래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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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27 20: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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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수 (211.XXX.XXX.129)
다음 회에 어떤 이야기 나올지 모르겠지만.
답변달기
2009-04-26 13:4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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