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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처럼 구름처럼
임철순 2009년 05월 04일 (월) 02:09:51
나는 서예를 모릅니다. 그러나 배우고 싶은 생각은 굴뚝 같습니다. 굴뚝 같다는 말의 어원이 무엇인지는 잘 모릅니다. 어쨌든 그만큼 간절하다는 뜻입니다. 어리석은 착각이겠지만, 붓을 잡으면 갑자기 소질이 계발돼 글씨를 제법 잘 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옛부터 선비라면 琴書棋畵(금서기화), 거문고 글씨 바둑 그림, 이 네 가지에 두루 능해야 한다고 믿어왔습니다. 그 중에서도 서예는 書如其人 學藝一致(서여기인 학예일치)를 중시했습니다. 글씨는 곧 그 사람이며, 사람은 학문과 예술이 일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도록 자신을 가다듬으며 늘 노력하고 수행하는 것이 선비의 자세이며 삶입니다.

   
  청명 임창순(1914~1999)  
지금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방랑연운(放浪烟雲) 청명(靑溟) 임창순(任昌淳)’전(4.16~5.10)은 사람과 글씨의 일치를 보여주는 전시회입니다. 청명(1914~1999)의 10주기를 맞아 열린 전시회는 디지털영상시대에 붓과 손의 가치를 청명을 통해 새롭게 일깨우기 위해 마련됐다고 합니다. 글씨를 통해 인간 청명을 이야기하고, 청명의 기개 있는 삶을 통해 그의 글씨예술과 학문이 하나가 되었음을 보여주는 전시입니다.

예술의전당이 ‘글씨&사람’ 시리즈의 첫 전시로 청명의 작품 120여 점을 내건 것은 아주 훌륭한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한국학계의 거인이었고 서예사학자, 탁본 수집가, 문화재 감식안으로서 큰 자취를 남긴 분입니다. 내용보다는 겉 모습에만 치중하는 요즘 서예계에도 이 전시의 울림이 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청명이 놀라운 것은 그가 원칙주의자이면서도 자유주의자였다는 점입니다. 제도권 학교의 문턱에도 가 본 적이 없지만 독학으로 해방 후 중등교원 자격시험에 합격해 중ㆍ고교에서 교사로 일하다가 마흔 살에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로 임용됐습니다. 1960년 4ㆍ19 학생시위를 결정적으로 뒷받침한 4ㆍ25 교수단데모 당시, 청명은 ‘학생의 피에 보답하라’는 플래카드 붓글씨를 쓴 분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결국 그 다음 날, 유명한 "국민이 원한다면"이라는 하야성명을 발표하고 물러났습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청명은 이듬해 5ㆍ16 이후 군사정권에 의해 대학에서 쫓겨났습니다. 이와 같은 일에서 불의에 저항하는 원칙주의자의 면모와 기개를 알 수 있습니다. 청명은 1963년 서울 수표동에 태동고전연구소를 설립했고, 11년 뒤에는 남양주시에 한국학 연구자들의 요람인 지곡정사(芝谷精舍)를 세워 수많은 한학 제자들을 길러냈습니다. 대학을 떠난 것이 후학들에게는 오히려 다행인지도 모릅니다.

   
  청명의 낙관 '방랑연운'  
이런 모습과 달리 청명은 생전에 낙관으로 즐겨 썼다는 ‘放浪烟雲’이라는 말대로 거침과 얽매임 없게 살려고 했던 분입니다. 청명은 평생 이곳 저곳을 떠돌아다니며(放浪) 연기와 구름(烟雲)처럼 살았습니다. 아버지가 하도 옮겨 다니며 사는 바람에 아들 임세권 교수(안동대)는 고향이 대구인지 안동인지 서울인지 어딘지 잘 모르겠다고 말할 정도입니다.

청명은 바둑 마작 화투에도 능했습니다. 이기든 지든 아버지가 자꾸만 더 두자고 하는 바람에 질린 아들은 결국 바둑을 끊었다고 합니다. 청명의 烟에는 담배연기가 짙게 배어 있습니다. 85세로 타계할 때까지 한시도 입에서 담배가 떠났지 않았다니 대단한 골초였던 셈입니다.

개인적으로는 20년쯤 전에 豊川任氏(풍천임씨) 종친회의 회장이실 때 종친 모임에서 몇 번 뵌 적이 있는데, 항렬로 따지면 형님이 되시지만 너무 어려워 그저 먼 발치에서 지켜본 정도입니다. 그 때도 백발에 마른 몸매의 그 어른을 보며 鶴骨仙風(학골선풍)의 아름다운 모습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타계한 지 10년, 지금은 어디에서 거칠 것 없이 자유롭게 노니는지 몰라도, 청명의 삶은 원칙과 자유를 한 몸에 조화시킨 선비의 모습을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를 닮고 싶습니다. 큰 붓을 들어 온 몸의 기와 정신을 모으고 병에서 물이 쏟아지듯 시원하게 一筆揮之(일필휘지)하는 내 모습을 혼자 그려보고 있습니다. 물론 아무리 노력해도 “붓끝이 살아 있다. 그 안에 뼈가 있는 것처럼”, 이런 평을 들은 청명선생을 따라갈 수는 도저히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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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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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호 (211.XXX.XXX.129)
좋은 일 시작하신것에 대해 축하와 격려를 보냅니다. 열심히 읽겠습니다. 이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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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08 08:46:31
1 2
김창식 (222.XXX.XXX.24)
'금서기화' 다음엔 '酒'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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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05 16:20:30
2 1
다비 (124.XXX.XXX.179)
서예에 대한 글을 읽으니 제가 어려서 아버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서예를 공부했던 추억에 젖게 됩니다. 항상 아버지 서재에는 묵향이 가득했고, 그 묵향처럼 아버님 역시 조용하신 분으로 명주 바지 저고리를 입으시고 서재에 계신 모습이었습니다.

"어떤 것에 정신을 팔고 있느냐? 네 정신통일이 되지 않았다, 획이 틀렸느니라"

라고 하시던 아버님, 또한 책에 파묻혀 사셨는데 아마 학문과 예술과 또 애주와
같이 사시었던 것 같습니다......

요즈음 세상에 이런 청아한 분들이 몇분이나 계실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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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04 19:26:41
1 1
임철순 (211.XXX.XXX.129)
좌우명을 알려 주세요. 한 번 써볼팅게. ㅎㅎㅎ. 늘 댓글 달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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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04 09:25:10
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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