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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신아연 2009년 05월 19일 (화) 08:52:36
어머니의 전화 목소리는 한결같습니다. 장담하건대 아무리 노련한 형사라도 어머니의 전화 음성만으로는 당신이 편찮으신지, 집에 무슨 일이 있는지 '일말의 단서'도 찾아내지 못할 것입니다.
어머니와 전화로 소통할 수밖에 없는 저는 당신과의 대화 중에 '어떤 낌새'를 파악하려 애쓰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맙니다. 세상이 어머니를 아무리 흔들어도 꿋꿋하게 당신 몫의 삶을 오롯이 살아내는 무상함만 느껴질 뿐…

몇 년 전 아는 글쟁이들끼리 함께 낸 책 < 자식으로 산다는 것> 에 실린 제 글의 한 부분입니다.
암으로 세상을 뜬 아들의 유해를 봉안당에 두고 온 다음 날도 여느 날과 다름없이 아버지의 아침상을 차렸을 뿐 당신이 먼저 아들에 대해 입 밖에 내서 말씀하시는 법도 없었고, 아버지의 치매 수발로 5년을 고생하시는 동안에도 어머니의 목소리는 일 점 흔들림 없이 한결같기만 했습니다.

오래 전에는 팔이 부러져 깁스를 한 상태에서도 장사하러 나가신 일이 있었다는 데, 그것도 나중에 다 낫고 나서 제게는 무슨 에피소드처럼 전하셨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따지니’ "알면 뭐할 거라고.. 달려와 볼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공연히 걱정만 끼치지”라며 하도 무심히 말씀하셔서 어이가 없어 되레 약이 올랐습니다.

늙으면 애 된다고 이제는 당신도 80 노인인 마당에 한번쯤은 자식들에게 엄살이나 어리광을 부려 볼만도 하건만 정말이지 ‘지독한 노인네'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소연은커녕 아들을 잃고 난 이후론 당신이 먼저 자식들에게 전화하는 일을 아예 관두셨습니다. 처음에 저는 참척(慘慽)으로 망연자실하여 멀리 사는 저한테까지 안부를 물을 경황이 없어서겠거니 싶었는데, 어머니의 진짜 마음은 이제 상황이 달라진 당신으로 말미암아 남은 자식들에게 부담을 얹어주고 싶지 않아서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당신의 평소 언행에 비추어 전화상으로는 어머니의 일신상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 알래야 알 도리가 없다는 단정을 아예 내리고 삽니다. 어머니께는 그냥 안부만 여쭙고 나중에 언니들을 통해서 각자 온전치 못한 정보들을 끼워 맞춰 어머니의 상태를 짐작하곤 합니다.

며칠 전에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낮에 연락이 닿지 않아 저녁 무렵에야 통화를 했더니“척추에 주사를 맞느라 온종일 병원에 있다 지금 막 왔다”고 천연스레 말씀하시는 게 아닙니까. 아버지 병 간호 때 다친 허리가 많이 안 좋아 바깥 출입을 제대로 못하시는 것까진 알고 있었지만, 척추에 처치를 해야 할 정도로 악화된 줄은 모르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나한테는 말도 않고 그럴 수가 있냐”니까 "알아서 뭐하게, 오래 쓴 몸뚱이라 그런 걸 가지고. 늙은이 아픈 게 예사지.”하고 예의 남의 말하듯 하는 통에 더이상 말을 이어가지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 날은 어버이날이었습니다.
안 그래도 어머니만 생각하면 늘 맘이 아픈데 하필 그날 고통스런 시술을 받으셔서 더 안 좋은 맘을 주실 게 뭐란 말입니까. 하지만 그게 또 뭐 대수랍니까. 그 보다 더한 왕주사를 맞았다 해도 지금 당장 전화를 드리면 여전히 똑같은 목소리로 받으실 게 뻔합니다.

생각이 많은 저는 이런 겁이 날 때가 있습니다. 자식들이 걱정하고 놀랄까 봐 평소에 이렇게 ‘시치미’를 떼다가 아무런 기미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당신의 목소리가 전화통에서 사라져 버리는 날에는 천배나 만배나 더 놀랄 거라는 걸 정녕 모르시는 것일까 하고요. 하지만 어머니께는 그것도 무에 그리 대수일까요.
저세상에서 분명히 그러실 텐데요, 뭐. '늙어 죽은 걸 가지고 웬 호들갑이냐’.

우리 세대, 호강하고 산 부모들이 얼마나 되겠습니까만, 제 부모의 일생을 특별히 애달퍼 하는 자식의 마음이 흉은 아니겠기에 <자식으로 산다는 것>에 실린 제 글의 끝부분으로 이 칼럼을 마무리하겠습니다.

발원지를 떠나 여정을 마친 모든 물줄기는 바다로 모입니다. 일단 바다를 이루고 나면 그 자체로 거대한 존재를 이룰 뿐, 어디서 어떤 경로로 흘러든 물인지를 가리는 아우성은 더는 의미가 없습니다. 바다는 그저 의연히, 깊이를 알 수 없는 무한 심연을 품은 채 존재를 드러낼 뿐입니다. 제 어머니의 일생도 바다와 같았습니다. 왜 하필 내게, 왜 끊임없이 크고 작은 시련이 닥치는가를 한 번도 소리내어 원망한 적이 없이 당신은 바다처럼 모든 운명을 다 끌어안으셨습니다. 극복도, 체념도, 의미 부여의 몸짓도 아닌 그저 담담함으로 생애의 거친 물줄기를 한데 모아 큰 바다를 이루신 것입니다.
어머니의 바다가 일생 끌어안은 수없는 갈래의 신산의 물줄기는 이미 형태도 흔적도 없이 한 데 섞여 그저 말없이 깊어만 갈 뿐입니다.

   




신 아연 :ayounshin@hotmail.com
신 아연은 1963년 대구에서 태어나 이화여자대학교 철학과를 나왔다.
16년째 호주에 살면서 <호주 동아일보> 기자를 거쳐 지금은 한국의 신문, 잡지, 인터넷 사이트, 방송 등에 호주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저서로는 이민 생활 칼럼집 <심심한 천국 재밌는 지옥> 과 <아버지는 판사 아들은 주방보조>, 공저 <자식으로 산다는 것>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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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7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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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123.XXX.XXX.28)
'섬기는 마음'이라고 하신 말씀 속에서 크리스천이심을 느낍니다. 섬기는 자리, 늘 대기하고 있는 자리 그것이 어머니자리라고 한 크리스천 모임을 통해 저도 배웠습니다. 제 언니도 외손자를 키우고 있는데, 이따금 그럽니다. 내 인생이란 게 이젠 없다고, 신문도 제목만 겨우 보고 점점 세상과 단절되고 있다고, 그래도 이렇게 사는 것이 옳게 사는 것 같다고, 나 하나 죽으면 여러 사람이 행복하니까..., 전에는 또 그랬습니다. 아마 제 나이 정도였던 것 같아요, 이 때는 가정주부로만 살고 있는 자신에 대해 회의를 느끼게 되는 때잖아요. '대학 졸업장 하나 밖에 쥐고 있는 게 없다'고 쓸쓸해 했지요.
근데 지금은 필요한 자리에서 필요한 일을 하고 있는 자신이 좋다고 합니다. 저도 '순리'대로 나이들어 갔으면 하는 기도가 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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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20 08: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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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123.XXX.XXX.28)
저도 나이가 들고, 아이들을 키우다보니 이제서야 어머니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버지 살아 계실 때, 당신의 이야기를 쓰고 싶어하셨는데, 저는 그보다 어머니 이야기를 대신 써드리고 싶은 마음이 더 컸습니다. 제가 이렇게 작은 글재주라도 있어서 제 어머니를 '풀어내지만' 어머니가 아시면 뭐라 하실지 좀 겁도 납니다. 우리 어머니, 제가 <자식으로 산다는 것> 냈을 때, 그 책에 여러 어머니들 이야기가 있었는데, "에이, 내 이야기가 제일 남새스럽다" 이러셨거든요.^^ 어머니는 유머감각 또한 끝내주시죠. 저는 어머니의 유머감각만 닮았지 다른 성품은 전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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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20 08: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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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123.XXX.XXX.28)
당당하고 멋진 어머니를 두셨네요, 부럽습니다. 제 어머니도 그런 분이었으면 하는 생각을 늘 합니다. 그리고 서소영님은 어머니를 늘 만나뵐 수 있는 한 하늘 아래 사시는군요. 그래서 맛있는 것도 사드릴 수 있고 친구처럼 쇼핑도 함께 하는군요.. 저는 딸도 없지만, 그래서 늘 외롭지만 어머니와 그런 소소함을 함께 나눌 수 있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합니다. 옆에서 딸노릇을 하고 싶은 겁니다.. 기껏 할 수 있는 일은 '아, 저거 우리 엄마가 입으면 잘 어울리겠다'싶은 옷이 있으면 사다가 한국으로 보내드리는 것이 고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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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20 07:5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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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123.XXX.XXX.28)
바다는 가장 낮은 곳에 있기 때문에 모든 물줄기를 모여들게 한다고 합니다. 가장 낮은 자세로 살 수 있는 사람, 아니 살아야 하는 사람이 바로 어머니가 아닐까요. '어머니'라는 버거운 이름, 하지만 가장 큰 왕관을 그 머리에 쓸 수 있는, 어쩌면 그 자체가 천형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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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20 07:5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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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은 (123.XXX.XXX.28)
같은 연배가 아니더라도 너무도 공감이 가는 이야기에 무엇인가 울컥 올라오는 것을 애써 참았습니다.

참으로 위대한 이름, 어머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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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20 07:4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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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옥 (210.XXX.XXX.45)
딸아이가 직장에 다니기에 손녀를 돌보기위해서 딸네가족이 내집에 들어와 함께 삽니다.
자연히 힘든일, 어려운일에 부닥칠 때마다 서로 상처받지않도록 조심해야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섬기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접으면 다 괜찮아집니다.
요즘 토막시간을 이용해서 신경숙의 '어머니를 부탁해'를 읽으면서 나도 어느 덧 신경숙의 어머니가 되어있음을 느낍니다.
그렇게 살면서도 나름의 보람을 느끼면 그것으로 족한 것 같습니다.
참 세월이 빠르네요.
온통 나를 위해 열리던 세상 밖으로 이렇게 던져진지도 오래된 듯 이상황이 너무 익숙해져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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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20 00:2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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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us (121.XXX.XXX.245)
눈앞의 파도는 저 만 바다에서 옵니다. 바다 같은 어머니! 그 사랑을 더듬거려보지만 너무 먼 거라에 있습니다. 불러도 잡히지않기에 애절한 마음입니다. 신아연님의 글은 애절의 파도입니다. 아니 그 애절을 넘어선 고요의 바다입니다. 어머니의 바다를 그렇게 그리워 하십니다. 한구절한구절이 파도의 파편처럼 마음에 곶힙니다.그리고는 허공으로 날아가버립니다. 물보라가 되어! 잡을 수가 없기에 마음이 탑니다. 그 타내리는 아름다움을 선생님의 글에서 읽고 멍하니 시드니 하늘을 찾으려고 애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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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19 09: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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