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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의 베갯자국
신아연 2009년 06월 01일 (월) 04:00:24
지난 일요일 아침이었습니다. 교회 갈 준비를 하느라 거울을 보니 얼굴에 베갯자국이 선명하게 나 있었습니다. 당황스러웠지만 곧 없어지겠지 하고 준비를 마치고 차에 올랐는데 그 때까지도 그대로 있는 게 아닙니까.

제 일은 아침 일찍 어디로 출근해서 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평소에는 얼굴 상태가 어떤지 별 신경을 안 쓰지만 교회에 가는 날은 사정이 다릅니다. 자칫하면 뺨에 한 줄기 내지 두 줄기 베갯자국을 새긴 채 그대로 나다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지금까지는 한 시간 정도만 지나면 회복이 되었기 때문에 아직 큰 우세를 당한 적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잠자리에서 일어난 지 두 시간이 넘었는데도 없어지질 않으니 당황할 밖에요. 하긴 작년 어느날도 베개에 눌린 얼굴을 하고 교회에 갔더니 누군가가 “ 지금은 그래도 괜찮지. 더 나이 들어봐. 반나절 지나도 원래대로 안 돌아올걸.”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사이 1년이란 세월이 지났으니 그만큼 얼굴 탄력이 더 떨어졌나 봅니다. 남 앞에 드러나는 곳이다 보니 온신경이 얼굴로 뻗치지만 얼굴이 그 모양인 날은 사실 팔다리에도 마치 문신을 하려고 본을 떠놓은 것처럼 이부자리에 눌린 자국이 어지럽습니다.

아침 첫 뉴스를 위해 새벽에 방송국에 나가는 아나운서들 사이에서 ‘베갯자국 에피소드’가 있다는 소리는 더러 들었지만 요즘 제게 그 일이 노상 벌어질 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나이 들어가는 서글픈 흔적들은 복병처럼 수시로 나타나 사람을 당황하게 합니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처음 자리를 양보받던 날, 갑자기 눈 앞이 흐려지는 통에 팔을 뻗어 읽던 책을 멀리하니 오히려 초점이 맞던 순간, 스스로도 더이상 흰머리를 새치라고 우기기에는 염치가 없어지는 때, ‘아니 내가 벌써!’ 하는 충격과 함께 저마다 늙어감의 징후와 ‘외로운 독대’를 한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어떤 이는 어느날 ‘나이’가 ‘연세’로 불리는 것에 스산함을 느꼈다는데 그 정도는 애교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40살도 되기 전에 돋보기를 쓴 데다 흰머리 염색을 시작한 지도 벌써 7년째입니다. 제 아무리 가꾸어도 속일 수 없다는 목과 손의 주름살도 나이에 비해 많은 편입니다.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라더니 유난히 목이 길고 가늘어 주름이 더 많이 잡히는 데다 땅덩이 넓은 나라에 살다보니 정원일을 하지 않을 재간이 없어 손도 농가 아낙네의 것처럼 마디가 굵고 거칩니다. 웃기도 잘하고 찡그리기도 잘하는 탓에 이마와 입가의 표정주름도 심란합니다.

굳이 감출 것도 없지만 묻지도 않은 것을 발설하는 이유는 제 나름으로는 나이들어감에 정직하게 반응하고 세월에 순응하며 살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한 살이라도 젊어 보이고 싶어 ‘발악’을 하는 부류는 애초 못될 뿐더러 누구보다도 저항없이 수굿하게 늙어가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럼에도 요즘처럼 아침마다 ‘베갯자국의 공포’에 시달릴 때면‘주여, 언제까지이니까!’ 하는 앓는 소리가 나오게 됩니다.

별 수 없이 수시로 얼굴에 ‘줄을 긋고’ 간간이 젊은 시절을 되돌아봅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을 들라면 좋은 나이였을 때 한번쯤 짧은 치마를 입어보았더라면 하는 것입니다. 굵은 종아리가 드러나는 게 싫어서 주로 바지를 입고 다닌 것이 지금 이 나이가 되고 보니 후회스럽다고 했더니 옆에서 또 누군가가 거들고 나섭니다. ‘지금이 바로 적기’라고. 왜냐면 아무도 안 보니까 그렇답니다.

외출하려던 어느 중년 부인이 거울 앞에서 이옷 저옷을 입어보며 어떤 게 어울리는지 옆에 있던 아들한테 물었다지요. 아들 대답이 “ 아무거나 입으세요, 어차피 아무도 안 봐요.” 였다는데 제게도 같은 대답이 돌아온 것입니다.

물론 제 나이는 ‘아주 늙었다’고 할 정도는 아니라는 걸 모르지 않지요. 하지만 늙어서 서러운 게 아니라 안 예뻐서 서러운 나이라는 것에 서글픔의 초점이 있습니다. 우스갯소리도 있듯이 더 늙으면 ‘인물의 평준화’가 와서 건강에만 신경을 쓰고 살면 되지만 중년을 통과하고 있을 때는 아무리 가꾸어도 봐줄 사람이 없다는 비애감에 가슴이 쓰라린 법이지요.

요즘 저는 아침에 일어나기만 하면 거울 앞으로 달려가는 새 버릇이 생겼습니다. 간밤에 또 베갯자국이 생겼나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중요한 외출이 있는 날은 염려가 되어 평소보다 한 시간은 더 일찍 일어납니다. 숫제 노이로제 증상입니다.

이러다 세월이 많이많이 흘러 얼굴에 주름이 왕창 잡히면 베갯자국이고 뭐고 구분이 안 될 때가 올 테지요. 그 때는 어쩌면 ‘공포의 베갯자국’을 그리워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신 아연 :ayounshin@hotmail.com
신 아연은 1963년 대구에서 태어나 이화여자대학교 철학과를 나왔다.
16년째 호주에 살면서 <호주 동아일보> 기자를 거쳐 지금은 한국의 신문, 잡지, 인터넷 사이트, 방송 등에 호주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저서로는 이민 생활 칼럼집 <심심한 천국 재밌는 지옥> 과 <아버지는 판사 아들은 주방보조>, 공저 <자식으로 산다는 것>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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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8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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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머리오목눈이 (61.XXX.XXX.136)
가학성 변태 심리는 범죄자만 지니고 있는게 아닙니다. 오늘 통화내용.."야! 내 목소리 좀 봐라..못 나가겠다...노무현 대통령 가시는 날 몸져 누워서 장례식도 못 가고...아직 감기가 떠나기 싫댄다".."아니 왜 또 노무현은...정나미 뚝 떨어지려고 하네..."ㅋㅋ 신학대 교수 부부에다 다른 동창들 모두 목사 아님 교회에 헌금 1 억을 한 것을 자랑하는 명박교 신자들이라... ( 신아연님에게서도 강한 믿음을 느낍니다만ㅋ) 만날 때 마다 되풀이 되는 약간의 설전이 기다리고 있어 저도 절대 지지 않고 한 마디 하였죠.."그래 잘 되었구나..정나미 확실히 떨어버려라.ㅋㅋ"하고 답하려는데 "에고...야! 야~~그래 그래...함 와서 네 그 노무현에 대한 인물평이나 다시 한 번 들어보자...꼭 나와야한다...꼬옥.." 그러고 보니 저만 가학성 변태인게 아니라 친구들도 심리학자들이 보면 일종의 변태들이 아닐까 생각이 드네요..만나면 18 번 지긋지긋하게 듣기 싫은 소리 들을게 뻔한데도 기어이 만나려는 그 묘한 심리...ㅋ 무슨 변태들인지.....제 짹짹거림에 대한 답은 사양하겠니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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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02 17: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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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123.XXX.XXX.28)
그렇다면 오톨도톨 요철 무늬가 났겠군요.^^ 마치 곰보처럼요. 그렇다고 어떻게 똑바로 누워서 잘 수 있나요? 몸을 침대에 꽁꽁 묶을 수도 없고요. ㅎㅎ 제가 이렇게 싱거운 글을 써도 또 나름으로 즐거울 수 있다는 것, 그런 여유가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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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02 14: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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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123.XXX.XXX.28)
어떤 사람이 텔레비전 리모컨이 전화기 인줄 알고 번호를 막 눌렀답니다. 옆에서 티비를 보고 있던 아들이 "엄마, 채널 좀 그만 돌려요, 나 보고 싶은 것 좀 보게요." 이랬다는 거죠.

정말 선생님은 저보다 훨씬 생기발랄(?)하게 사시는 분입니다. 그런 분은 옆에서 보는 사람이 더 즐겁죠. 삶의 에너지를 느끼기 때문이죠. 저도 그렇게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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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02 14:0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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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123.XXX.XXX.28)
맞습니다. 사람의 정신이나 영혼은 마치 암세포처럼 계속해서 자라게 할 수 있지요. 육체는 성장이 끝나는 지점이 있고 그 다음부터는 쇠락하게 되지만, 내면의 성숙은 죽는 날까지 계속되는 법이니 내면에 초점을 두는 삶의 전환을 자꾸만 훈련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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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02 13:5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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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us (121.XXX.XXX.189)
저도 그런 경험이 있답니다. 아내가 갖어다준 배개, 작은 자갈이 든 ,를 베고 잤는데 그만 왼쪽 뺨에 훈장 하나가. 첨엔 이유도 모르고 피부가 왜 이래 하고 괜히 좋은 살갗만 원망을 했습니다. 사람들이 배갯자국이라 했습니다. 찬찬히 생각을 뒤져보니 새 배개에 옆으로 누워잤다는 사실을 알고 혼자 웃었습니다. 그 담부터는 꼭 천장을 바라보고 반듯하게 잠을 잡니다. 지금까지 한번도 그런 일은 없습니다. 오늘 신아연님의 글이 그 생각을 하게하는군요.즐겁습니다. 옆으로 잠을 자지마라는 경고 정도로 받아드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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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02 11: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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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옥 (210.XXX.XXX.198)
염장을 지르다

빨간 립스틱
새 외출복에
좀 높다 싶은 하이힐을 신고
집을 나섰다.

이렇게 차려입으면
사 십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게 없지 싶기만 하다.

지하철을 타고
차창에 비쳐진 내 모습을 살펴보는데

나 보다 십 여 년 쯤 연상의
말쑥하게 차려입은 남정네가
자꾸만 쳐다본다

나도 모르게 발끝에 힘을 주고
입 꼬리를 올려 꼭 다문다

그 때
그 영감님이 앞에 앉아 졸고 있는 청년에게
호통을 쳤다
“일어나슈”
“이 할머니 앉으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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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01 22:2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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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머리오목눈이 (61.XXX.XXX.136)
저는 신아연씨와 달리 언제나 청춘입니다. 적어도 마음만은 그렇단 말이죠...그러나 지하철을 거꾸로 타는 일은 항다반사요 몇 정거장 더 지나서야 "엥? 또~~~?" 내리는 일은 보통이요 휴대 전화를 찾기 위하여 집에서도 몇 번이나 전화를 울리고 마루로 급히 뛰어 와서 어디서 소리가 들리나 귀를 기울이다 냉장고에서 찾아 낸 일도 허다합니다. ㅋㅋ 그래도 영국의 질녀가 꽃 피는 5 월이 되니 이모...미모 관리의 계절이 왔네요...ㅋㅋ"하며 메일을 보내야할만큼 미모관리를 스스로 떠벌리며 다니는 후안무치범이기도 하죠..ㅋ 다만 설흔이 훨씬 넘은 아들 놈이 수시로 "엄마 왜 이리 팍팍 늙어가는거야? 엄마를 생각하면 하도 가슴이 아파서 시험에 꼭 합격해야겠다고 이를 악물었었다니까"...어렵다는 시험에 합격한 아들 놈의 기분 팍 상하게(?)하는 말에 어이가 없는 철부지이기도 하구요..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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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01 19: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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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완 (123.XXX.XXX.28)
선생님의 글을 너무너무 재미 있게 읽었습니다. 베겟 자욱을 염려하시는 지금이 좋은 때입니다. 저는 하루 종일 가도 거울을 한번도 보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을의 말대로 "우리의 겉 사람은 늙어가나 속 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는도다" 라는 말을 기억합니다. 저는 매일 학생들 앞에 서야 하기 때문에 옷차림에 신경을 씁니다. 중국말로 스승을 라오스 (老師) 늙은 스승이라고 합니다. 젊은 스승도 늙었다고 부르니 나는 老老師입니다. 과연 인생이 짧음을 실감합니다. 좋은 글 계속해 많이 쓰세요. 감사합니다.

이종완

연변 과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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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01 18: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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