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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라이트 삼국지(3)
김창식 2009년 06월 27일 (토) 08:12:21
관공의 죽음과 제갈량의 역할

삼국지를 읽을 때마다 떠나지 않은 의문은 관우가 죽음을 맞이할 즈음의 제갈량의 애매한 태도와 역할입니다. 관우의 외로운 싸움과 패퇴, 그리고 죽음에 이르도록 제갈량의 역할은 숨은 듯 드러나지 않습니다. 천기(天機)를 헤아린다는 제갈량이 어찌하여 이 대목에선 유독 신통력을 발휘하지 못한 것일까요?

관우가 죽임을 당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제갈량의 역할은 전무할 뿐 아니라 관공의 죽음을 미리 알고도 유비에게 직보(直報)하지 않습니다. 요충지 형주를 책임지던 관우의 죽음은 전략실리적인 면에 있어서는 물론이고 상징적인 측면에서도 국가 사회전반에 집단 패닉 현상을 일으킬 수도 있는 중차대한 사건이었습니다.

관우는 무부(武夫)이지만 군후의 지위에 오르고 천신(天神)의 반열에 선 불패 장군으로서 그의 신상변동은 일반국민의 정서와 사기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너무나 지대하였던 때문이지요. 공명은 꿈속에서 죽은 관우의 혼령을 보고 재차 추궁하는 유비에게 애써 사실을 감추기까지 합니다. 유현덕의 마음을 상하려 하지 않은 배려일 수도 있으나 병력운용에 관한 실권을 쥔 군사(軍師)로서 시급히 대책을 강구하여야 하는 위기상황에서 사실을 얼버무리려 한 것은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태도입니다.

상황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조조와 손권이 결탁하여 형주를 합공하려 한다는 소문을 접한 유현덕이 공명을 청하여 의논함에, 그는 오히려 관운장에게 관곡을 내리도록 하여(이로써 관운장의 자긍심을 한껏 드높여주고) 오히려 위(魏)국의 번성을 선공케 합니다. 두 나라 군대가 호시탐탐 노리는데 야전사령관에게 본거지를 떠나 다른 곳을 공략케 지시한 것은 공명과 같은 일대종사(一大宗師)가 취할 계책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 뿐아니라 그는 동오(東吳)의 여몽이 육손의 계교에 따라 칭병하고 육구(陸口)의 책임을 무명의 육손에게 위임하여 관우의 경계심을 누그러뜨리려 한 책략을 꿰뚫어 보고서도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이로써 공명이 관우의 죽음을 바라지는 않았다 할지라도 최소한 수수방관하였음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왜 공명은 이처럼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 입장을 견지한 것일까요?

잠시 여기서 서촉(西蜀) 군의 '최고임원전략회의'를 엿봅니다. 영입사장이자 브리핑의 귀재인 공명은 브리핑 차트 겸 여기저기 전략 요충지마다 깃발이 꽂힌 대형지도를 놓고 세밀한 지침을 내립니다. 노장 황충은 가장 나이가 많아 말을 아끼고, 마초는 명문세가 출신이기는 하나 관우의 눈치를 보며 감히 나서지 못합니다(관우는 마초와 동렬에 놓임을 무척 자존심 상해했음). 조자룡은 사려가 깊고 비교적 공명을 이해하는 편이지만 그 역시 무장이고 '가재는 게 편'이라 선뜻 공명을 편들지 못합니다. 아마 성미 급한 장비가 이렇게 말문을 열었을 것입니다. "군사, 똑똑한 놈으로 수천기만 내어주시오. 내가 가서 대충 쓸어버리리다." 내심 불만스러웠던 관우가 점잖게 한마디 거듭니다. "군사는 왜 그리 소심하시오?"

갑론을박하던 중 현덕이 최종적으로 공명을 지지하고 나섬으로서 회의는 공명의 뜻대로 끝나기는 하지만 토종가신들은 앙앙불락, 제갈량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며 못마땅해 할 것입니다. "뭐 그리 골치 아프게?", "나이도 어린 것이!", "어따 대고?", "지가 잘나 봤자지!" 등 등... 사람 사는 곳이면 예나 지금이나, 그리고 어디에서나(시장 저잣거리나 최고 권력의 핵심 내부에서나!) 다를 바 없이 이러한 패거리 다툼이 있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그들이 내세운 명분은 이념 차이에서 비롯한 보,혁 갈등일 터이며 그럴 듯하게 포장하였겠지요. 누가 옳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원로가신들과 무장 중심 보수 세력 중 가장 말발이 센 우두머리가 관우였습니다. 게다가 관우는 로열패밀리의 일원이었지요. 개혁세력을 대변하는 제갈량이 나름의 충정을 갖고 소신껏 정국을 요리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최대 라이벌인 관우를 잠재울 필요가 있었을 것입니다. 이에 덧붙여, 관우의 번성공략 초기의 눈부신 성과(양양성 점거와 위 칠지군 격파)에 따른 관우의 영향력 증가를 내심 달가워하지 않은 인간적인 측면에서의 질투심이 발동하여 관우의 패사(敗死)를 방관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입니다.

관우의 죽음과 공명의 도덕적 책임론은 저의 독창적 견해는 아닙니다. 이를테면 이문열 편역 삼국지(민음사 간)에도 공명에 대한 비판적 언급이 눈에 띕니다. "공명이 관공의 참혹한 최후를 바라지는 않았다 할지라도 냉담한 태도로 일관 하지 않았나 하는..." 그러나 이러한 의구심과 몇 가지 전략적 패착(다음 칼럼에서 소개)을 이유로 제갈량의 충정과 천재전략가로서의 면모가 폄하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다음 칼럼에서는 제갈량의 일생과 공적을 집중 조명합니다.

   




  김창식 nixland@naver.com
경복고, 한국외국어대학 독어과 졸업
재학중 독일어로 쓴 소설, 수필, 논문집 간행
대한항공 프랑크푸르트 공항지점장 역임
외대문학상(단편), 2008 '한국수필' 신인상 수상
음악, 영화, 문학, 철학적 관점을 감성적 문체로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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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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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옥 (210.XXX.XXX.26)
워낙 삼국지에 대해선 아는 바가 없는데 김창식님이 제갈량의 어떤 면을 이해하기 어렵다 하시기에 좀 도와보려고 인터넷을 뒤져봤지만 신통한 결과를 얻지못했습니다.

어제 같은 방향의 사람들을 만난 자리에서 * 다소간 인간적 약점을 가진 사람* 이 두고두고 情이 간다는 얘기를 듣고 제갈량도 그런 정스러운 사람(人) 으로 때로는 기대고 싶어지는 그냥 사람인 때도 있었겠지,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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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30 13:28:38
0 0
김창식 (222.XXX.XXX.44)
다비님, 한창호님, 제 글을 관심있게 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관우의 죽음은 삼국지 최대의 미스테리로서 다음 기회에 좀더
심도있게 다루고 싶습니다.
중국에 유비를 기리는 사당은 없으나 관제묘가 곳곳에 산재하여
민간 신앙의 대상이 되고 있음은 시사하는 바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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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29 16:24:30
0 0
한창호 (115.XXX.XXX.3)
세계의 많은 삼국지 연구가들이 관공의 죽음을 안타까와하면서 그의 죽음의 遠因괴 近因을 열심히 다루고들 있는데 정말로 불가사의합니다. 제 생각에도 김 작가께서 지적하신대로 근인으로는 제갈량이 유방에게 보고하고 관우로 하여금 위의 번성 공격을 명한 것(당시 형주를 벗어나서는 절대로 안되는 상황임에도 불구)입니다. 제갈량은 그의 죽음까지는 당연히 예상하지는 않았겠지만, 유방과의 관계에서 그와의 미묘한 갈등을 겪고있던 차에,무장의 선봉이었던 그를 의도적?으로 곤경에 처해지게하여 그의 자부심(형주는 당연히 안뺏길것으로보고)에 상처가 나도록 해주려고?, 많은 공을 세운 제갈량 전략 중에 패착 중의 하나로 보고있는 제 생각의 over 인가?)은 분명히 예상했을것임. 원인으로는 오의 손권의 자존심을 완전히 뭉게버린 사건(호랑이의 새끼가 어떻게 개의 새끼한테 시집을 보낼손가?라며 사돈 관계 거절)을 소홀히 생각한 것, 여기에 당시 제갈량 편에 약간 기울어져있었던 출세지향형의 기회주의자라고도 볼수있는 상용 태수 맹달이 위기에 빠진 관우를 여러가지 구실을 들어 지원군을 보내주지 않은 그의 두 마음도 일부 작용한 것(구원군이 왔더라면 형주는 빼앗겼어도 관공의 목숨만은 건졌을 것으로 생각되는데...)같은데, 와! 하여튼간에 김 작가님은 대단한 분석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4편 와룡봉추편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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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29 10:5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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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비 (210.XXX.XXX.178)
제갈공명, 제가 책 속에서 사랑한 첫사랑 제갈공명도 별 수 없이 그 많은 강변의 자갈
처럼, 인간의 속성을 가질 수 밖에 없는 것은 신의 섭리이십니다. 제갈이라고 자갈 같은 질투나, 욕심이 없었겠씁니까? 그런 인간사, 인간의 약점을 보여주는 삼국지 이니까 역시 오늘 까지 잃히고 사랑받는 고전이 된 것 아닐까요?

그래도 제갈의 그런 부분이 제 사랑에 찬물을 끼엊는 거 같아 씁쓸하고 재밌습니다.
다음 제갈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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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28 04:0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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