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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는 칭찬하면서
신아연 2009년 06월 30일 (화) 01:54:28

제 남편은 옷을 정갈하게 입는 편입니다. 특히 세탁을 맡길 때까지 처음 잡아놓은 바지주름이 그냥 그대로 있는 것이 제 맘에 제일 듭니다. 실은 제가 다림질을 잘 못하기 때문에 더 그렇습니다.
하기사 한국처럼 양반다리를 하고 앉을 곳도, 기회도 없이 의자생활만 하는 환경이니 일상에서 바지가 심하게 구겨질 일도 없지만 말입니다.

한국에 사는 친구 남편은 이따금 밤새 고스톱을 치고 들어온다는데, 자기 남편이 돈까지 잃고 온 날이면 사타구니 부분이며 오금이 꼬깃꼬깃 구겨진 바지 꼴이 유난히 보기 싫어 더 구박을 하게 된다는 겁니다. 거기 비하면 몇날 며칠이고 고스란히 바지 모양을 유지하고 다니는 제 남편이 고마울 밖에요.

제 일을 줄여주는 남편이 새삼 대견해서 어느 날은 아침 출근길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살림 중에서 제일 자신없는 게 다림질인데, 당신이 바지를 항상 곱게 입어줘서 다림질을 자주 할 필요가 없는 게 늘 고마워요."

"당신은 할 줄 아는 게 뭐예요? 바지주름도 제대로 못잡지, 바지 길이도 직접 못 줄이지, 남들은 방석커버나 커튼도 만든다는데 당신은 겨우 겨드랑이 터진 셔츠나 꿰매고 단추 떨어진 거나 달 줄 알잖아요."

순간 어리둥절했습니다. 살림이 어디 다림질이나 재봉질뿐이랍니까. 하지만 그렇게 말하니 20년 주부 경력이 영판 무색해질 밖에요. 알뜰살뜰 요모조모, 유능하고 탁월한 살림꾼이라는 찬란한 저의 자부심이 남편의 말 한마디에 무참하고 처절하게 무지러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웃는 낯에 침뱉기도 유만부동이지, 어이없고 기막힌 얼굴로 남편을 쳐다보니 “ 지금 나처럼 말하면 세상 누구도 인정받을 사람이 없을 거예요. 부정적 관점이나 단점을 확대하는 시각에서 보면 단 한 사람도 만족할 수준에 있을 수 없죠. 있는 99는 접어두고, 없는 1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으면 그 사람은 항상 틀렸고 항상 책잡힐 일만 하는 걸로 보이잖아요. 당신이 잘하는 대부분의 것은 다 외면하고 좀 부족한 다림질이나 재봉 솜씨를 가지고 시비를 걸려고 들면 아무리 살림을 야무지게 한다 한들 일순간 칠칠치 못한 여편네로 인식되고 말잖아요. 장점보다는 단점을 지적하는 애들에 대한 부모의 태도나 사회 리더들에 대한 평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부정적인 렌즈로 포착하느냐, 긍정적인 면에 초점을 맞추느냐에 따라 사람이 죽기도 하고 살기도 하는 법이죠. ” 애초 남편은 이런 멋진 결론을 맺기 위해 초반에는 짐짓 저를 깎아 내렸던가 봅니다. 그러면 그렇지!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지만 정작 고래는 칭찬할망정 사람끼리는 인정하고 칭찬하는 일에 매우 인색한 것이 요즘 세태입니다. 언제부턴가 서로 헐뜯고 비방하는 일에 익숙하다보니 칭찬을 하거나 들어도 스스로 진의가 의심스럽고 어쩐지 아부를 하는 것 같아 떠름한 경계심이 들 때도 있습니다.

대학 다닐 때 어떤 교수님이 농담삼아 “나에 대한 달콤한 평가는 솔직히 아분 줄 알면서도 여전히 듣기 좋다”고 하신 말씀이 이따금 생각납니다. 하지만 요즘은 아부조차 ‘품격을 갖춘 수준높은 칭찬 기법’으로 격상되었다니 진심을 담은 격려와 지지의 효과는 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아무리 아둔하고 미련한 ‘화상’일지라도 칭찬하고 격려하면 반 발짝이라도 앞으로 나가지만 비난하고 야단치면 응당 퇴보요, 최상의 결과라 해봤자 제자리걸음이라고 합니다. 대부분 잘 되라고 혼을 내지만 실은 본전도 못 건진다는 결론입니다. 어떤 행동에 대해 칭찬도 그 행동을 강화하는 것이요, 꾸중도 강화이기 때문에 그렇답니다.

칭찬과 격려는 달리는 말에 채찍을 가하는 것과 같다고 하지요. 그렇다면 비난과 질책은 모처럼 잘 달려보고자 하는 말의 고삐를 나꿔채 자신감과 의지를 꺾어버리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혹자는 “무조건 칭찬만 할 수 있나, 입에 쓴 약이 몸에 좋은 법이거늘...”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부모들이 아이들 대하는 태도도 그렇고, 사회의 지도층을 평가할 때도 그렇듯이, 입에 쓴 약을 준답시고 마치 ‘독약’을 처방하는 느낌이 들 때가 많습니다. 입에 쓰기로 치면 독약만한 것이 없을테지만 독약을 먹으면 몸에 좋기는 고사하고 대번에 죽지 않습니까. 그래가지고야 쓴 약의 효험이 제대로 날리가 없지요.

이렇게 말하는 저도 사실 매사 장점보다는 단점을, 긍정적인 것보다 부정적인 면에 확대경을 들이대는 고약한 마음보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을 합니다. 방법은 있습니다. 믿고 기다려주는 것입니다. 모든 노력이 그렇듯이 믿음으로 인내하는 것은 상당한 훈련을 요하는 일이지만 그 결과는 사람을 살릴 뿐 아니라 나라와 인류를 살리는 진정 몸에 좋은 약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신 아연 :ayounshin@hotmail.com
신 아연은 1963년 대구에서 태어나 이화여자대학교 철학과를 나왔다.
16년째 호주에 살면서 <호주 동아일보> 기자를 거쳐 지금은 한국의 신문, 잡지, 인터넷 사이트, 방송 등에 호주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저서로는 이민 생활 칼럼집 <심심한 천국 재밌는 지옥> 과 <아버지는 판사 아들은 주방보조>, 공저 <자식으로 산다는 것>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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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3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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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echang lee (123.XXX.XXX.28)
16년째 외국생활하시면 한국어가 녹쓸수도 있건만 더욱 반짝이는 글입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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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30 15:3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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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옥 (210.XXX.XXX.26)
결혼 하고 19 년 동안 바지를 다려보고 그 뒤 18년 동안 한 번도 바지주름 걱정을 않해봤네요.
이렇게 새로운 환경에 서로 익숙해져간 뒤 *우연히 만나면, 무슨말을 할까요? * 유행가 가사를 가끔 생각합니다.....요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神 이란 소설을 읽으면서 죽음 뒤에 또다른 세상에서 만나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해보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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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30 13:4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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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us (121.XXX.XXX.247)
저 친구 부인이 귀에 싹 들어오는 말을 했습니다,"잘이 문제죠." 무슨 말이냐 하면 자식도 너무 잘 키우려고 하면 그게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지나침이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관심이 지나치면 기대가 너무 크면 그게 다 욕심이죠.
자기 높낮이를 아는 현명함을 인간은 왜 모르는지. 그리고 상대로 부터 위안을 얻으려는 것은 좀 포기하고 자기 세계를 넓히고 찾고 하는 일에 더 몰입하는 것이 타자를 원망하지 않는 것이 되지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할 수있는 글을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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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30 09:3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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