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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긋기
임철순 2007년 02월 07일 (수) 16:03:31

책에 관한 이야기를 더 하겠습니다. 누구에게나 ‘내 삶의 이 한 권’으로 꼽을 만한 책이 있을 것입니다. 특히 어려서 감명 깊게 읽은 책은 그 영향이 일생동안 계속됩니다. 사람이 책을 만들고 책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은 만고의 진리입니다.

그런 책을 하나만 꼽으라면 나는 로망 롤랑(1866~1944)의 <장 크리스토프>를 들겠습니다. 불멸의 인간상 베토벤을 모델 삼아 고난과 절망을 이겨내는 영혼의 힘을 알려주면서 이상사회를 지향한 교양소설, 20세기 대하소설의 선구적 작품으로 평가 받는 소설입니다. 로망 롤랑은 이 작품으로 1915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았습니다.

너무 길고 줄기와 가지가 많아 지리한 점도 있지만 이 소설은 나에게 영혼의 성서와도 같습니다. 처음 읽은 지 40년이 돼가는 책에는 여기저기 밑줄이 많이 그어져 있습니다. 그 밑줄은 곧 젊은 날의 영혼의 기록입니다. 그런 문장 몇 개를 옮겨 보겠습니다.

-일어나라 일어나라! 그대의 고통과 고뇌에 이별을 고하라! 마음을 혼란케 하고 슬프게 하는 것들을 떠나게 하라!
-생명은 세련된 것이 아니다. 생명은 장갑 낀 손으로 붙잡을 수 있는 그런 것은 아니다.
-예술, 그것은 독수리가 먹이를 채가듯 인생을 낚아채어 공중으로 실어 나르고 이와 더불어 맑게 갠 창공으로 드높이 오르는 일이다.
-위대한 영혼은 결코 고독하지 않다. 언젠가는 반드시 벗을 찾아내게 된다. 그 영혼은 자기 속에 충만한 사랑을 주위에 뿌려준다.
-모든 것은 지나가 버린다. 말의 추억도, 입맞춤의 추억도, 서로 사랑하는 육체의 포옹의 추억도. 하지만 숱한 가상의 형태가 무리지은 가운데 한 번 접촉하고 서로를 인정한 영혼과 영혼의 접촉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밑줄을 그으며 책을 읽다 보면 감동적인 문장을 더러는 외우게 되고, 나중에 글을 쓸 때 그 문장이 살아나 내 생각인지 남의 글인지 모르게 되는 경우도 생깁니다. 책의 밑줄은 마음 속의 밑줄입니다.

하지만 나의 밑줄이 남에게는 상처가 되는 일도 있습니다. 성경의 창세기 2장 24절에는 결혼에 대해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라고 씌어 있습니다. 결혼을 앞두고 가톨릭 영세를 받기 위해 교리서를 읽으면서 이 문장에 밑줄을 그었던 일이 있습니다. 부모를 떠난다는 것은 정서적 경제적 의미에서의 독립을 말합니다.

그런데 어쩌다 어머니가 그 책을 들춰 보시고 ‘부모를 떠나는 것을 즐거워한’ 나에 대해 섭섭해 하면서 슬퍼하신 일이 있습니다. 그런 뜻이 아니라고 변명했지만 젊은 시절에 어머니의 ‘맹목적인 애정’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했던 건 사실이었나 봅니다. <장 크리스토프>의 이런 문장에 밑줄이 쳐져 있습니다.

-그녀(크리스토프의 어머니 루이자)는 그를 거의 이해하지 못했다. 이해하려고 애쓰지도 않았다. 다만 그를 사랑하려고만 했다.
-그녀는 “가고 싶은 데로 가려무나” 하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는 “어머니 곁을 떠나지 않겠어요” 하고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 말을 할 수 없었다.
-이리하여 그는 어머니를 혼자 두고 나온 것이다-한평생.
-크리스토프는 가방 위에 걸터 앉았다. 그리고 울었다.

음악과 예술을 찾아 큰 곳(파리)으로 나가려 하는 아들과, 아들을 보내지 않으려는 외로운 어머니의 갈등이 드러나는 문장들입니다. 이런 문장에 왜 밑줄을 그었을까요? 어머니의 끝없고 한없는 애정이 젊은 시절에는 부담스러웠던 것이겠지요.

밑줄을 치지 않고도 책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사람도 있습니다.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은 어느 글에서 케인즈의 <고용ㆍ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을 읽을 것을 권하면서, 자신은 너무 아까워 밑줄도 긋지 않고 그 책을 읽었다고 말했습니다. 밑줄도 긋지 않았다니! 나 같은 사람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독서의 경지입니다.

젊어서 친 밑줄과 나이 들어 치는 밑줄은 같지 않습니다. 문화평론가 진중권은 읽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데 마르세아 엘리아데의 <신화와 현실>에 여기저기 밑줄이 그어져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처음 읽었을 때는 예술의 기원을 밝히는 맥락에서 신화의 문제를 접근했지만, 10여년 만에 다시 읽으니 그 책이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하더라는 것입니다.  

나도 <장 크리스토프>를 다시 읽다가 그런 경험을 했습니다. 젊어서는 무심하게 지나쳤던 아래의 문장에 이번엔 밑줄을 쳤습니다.

-청년이 무감각해 보이는 것은 마비되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정열이나 야심이나 욕망이나 고정관념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기 때문이다. 육체가 시들고 삶에서 이젠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게 되면 비로소 사심이 없는 인간적인 감동이 다시 활동을 시작한다. 그리고 천진스런 눈물의 샘이 열리는 것이다.

사실 요즘엔 걸핏하면 목이 메이고 콧날이 시큰해집니다. 열심히 자기 일을 하는 사람들을 보거나, 삶의 기적과 아름다움에 관한 글을 읽다 보면 그런 경험을 하게 됩니다. 눈물의 샘이 열린 모양입니다.

그러니 지금 읽는 그 책은 옛날의 그 책이 아닙니다. 내가 지금 쳐놓은 밑줄이 다음 10년 후에는 또 어떤 의미를 갖게 될지 생각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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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te (211.XXX.XXX.44)
눈물의 샘... 이제 막 그 샘물이 제게로 흘러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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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2-08 18:0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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