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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땀나게 말하는 사람들
신아연 2009년 07월 13일 (월) 00:58:17
“이면수 구이는 18불이시구요, 꽁치찌개는 15불이세요. 50불 받으셨구요, 거스름 돈 17불 되시네요. ”

며칠 전 남편과 한국 식당에서 저녁을 사먹고 셈을 치르는 중에 한국서 갓 왔다는 종업원한테 들은 소리입니다. 잠깐이지만 가시를 잘 발라먹었는데도 갑자기 목구멍이 까칠해지는 느낌입니다.

‘18불 되시고 15불 되시는 귀하신 몸들’을 죄다 뜯어먹고 끓여먹었으니 그 죄를 어찌 다 감당하리오. 뒤늦게 ‘17불 되시는’ 거스름돈이나마 고이 지갑에 모셔드렸지만 마음은 영 개운치가 않았습니다.

이제는 그러려니고 넘길 만도 한데, 저도 참 어지간합니다. 요즘 젊은 애들 엉터리 말법이 하루 이틀 일도 아니건만 들을 때마다 귀에 거슬리니 말입니다.

까짓 거, 뜻만 통하면 되지, 어법이고 문법이고 무슨 소용이며, 말이란 게 어차피 의사소통 기능이니 서로 알아들었으면 그만이지 그렇게 꼭 따져야겠냐며 스스로를 매번 야단칩니다. 그래놓고도 집에 돌아오면 그날 수집한 잘못된 표현을 잡기장에 적어두고 어느 정도 모이기를 기다려 ‘폭로하리라’ 벼르게 됩니다.

하기사 가만 들어보면 엉터리 말도 나름 법칙은 있습니다. 동사를 무조건 존대법으로 바꾸는 거지요. 그러다보니 자기도 올라가고 상대방도 올라가고 이면수도 꽁치도 죄다 품격이 높아집니다.

일전에는 “죄송하지만 표가 모두 매진되셨는데요. 그 디자인은 요즘은 안 나오시구요, 찾으시는 분도 별로 없으세요. “ 하는 말을 듣고 아연실색한 적도 있습니다. 게다가 어린애들은 ‘~한다요’ 라는 말이 높임말인 줄 알고 “ 저녁 먹었다요.” “이거 샀다요” 하는 식으로 저희들끼리 잘도 지어부릅니다.

예전에 앙드레 김이 어느 잡지사와 인터뷰를 하면서 “옷을 제대로 못 갖춰 입은 사람을 보면 진땀이 난다.”고 했다지요. ‘그 이는 내로라하는 패션 디자이너이니 누구를 만나도 그 사람이 옷을 잘 입었나 못 입었나가 제일 먼저 보이겠지만 그렇다고 진땀씩이나 흘릴 것까지야’ 하며 혼자 웃었습니다.

앙드레 김이 들으면 패션 감각 없는 저를 나무랐을 테지만 옷이란 벗은 몸을 가리고 추위와 더위, 그 밖에 외부환경에서 다치지 않도록 보호하는 기능 말고는 제 아무리 대단한 뭐가 있어도 본질적인 용도와는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저로서는 그 양반이 진땀을 흘리거나 말거나 상관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말을 엉터리로 하는 사람을 보면 ‘진땀 흘리는 앙드레 김’을 대번에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제가 글쟁이라 그렇겠지만 이런 사람을 만나면 정말이지 진땀이 나서 어서 자리를 뜨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특히 자기 아내를 남 앞에서 ‘부인’이라고 부르는 사람과 존경심이 지나쳐 자기 남편을 높여서 부르는 아내들을 만나면 아주 거북합니다.

“우리 부인은 살림을 잘 한다” 거나 “ 애들 아빠가 일찍 들어오셔서 가족들과 시간을 함께 보내주신다” 는 따위 말입니다.
같은 나라 사람끼리 ‘우리나라’를 ‘저희나라’로, 목사가 자기 성도들 앞에서 ‘우리교회’ 할 것을 ‘저희교회’ 하는 예는, 대부분은 본인들도 말하자마자 잘못 말했다는 것을 금방 깨닫지만 이미 버릇이 되어 다음에 또 그렇게 말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가하면 함께 글을 쓰시는 분 중에는“이 기회를 빌려 어머니께 감사드리고 싶어요.” 하는 표현을 지적하십니다. 하고 싶으면 그냥 하면 되지, 왜 ‘싶어요’를 붙이냐면서. 그러니까 ‘어머니께 감사드려요’ 가 맞습니다.

‘있어서’나 ‘있어서의’의 남발은 또 어떻습니까. 1997년에 타계한 월간지 <뿌리깊은 나무> 와 <샘이 깊은 물>의 발행인 겸 편집인이었던 한창기 선생은 ‘있어서’나 ‘있어서의’는 일본말 표현을 한국말로 직번역해서 만들어 놓은 언어의 사생아이자 밥 속에 섞인 뉘라고 했습니다.

선생은 ‘후진국에 있어서 자유란 무엇인가’나 ‘후진국에 있어서의 자유’라는 표현을 일례로 들면서 그냥 ‘후진국에서 자유란 무엇인가’와 ‘후진국의 자유’라고 하면 된다고 가르칩니다.
그 밖에도 영어식 표현 같은 잘못 쓰이는 우리말을 생각나는 대로만 열거해도 적잖은 시간이 걸릴 터이고, 꽤 아는 척 하고 있지만 사실 저도 일상 중에 엉터리 표현을 참 많이 하니 탄로나기 전에 이쯤에서 그만 마칠까 합니다.

제가 앙드레 김에게 그랬듯이 ‘말 좀 잘못하는 걸 가지고 뭘 그리 까탈을 부리고 진땀씩이나 흘리냐’며 탓하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옷을 세련되게 못 입는 것과 말을 제대로 못하는 것은 정말 다른 문제이니 앞으로는 누가 틀리게 말하는 걸 들으면 저처럼 진땀나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신 아연 :ayounshin@hotmail.com
신 아연은 1963년 대구에서 태어나 이화여자대학교 철학과를 나왔다.
16년째 호주에 살면서 <호주 동아일보> 기자를 거쳐 지금은 한국의 신문, 잡지, 인터넷 사이트, 방송 등에 호주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저서로는 이민 생활 칼럼집 <심심한 천국 재밌는 지옥> 과 <아버지는 판사 아들은 주방보조>, 공저 <자식으로 산다는 것>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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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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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세상 (119.XXX.XXX.235)
특히 방송하는 분들이 엉터리로 말하는 것을 듣고 있느라면 진땀이 납니다. 방송인 뽑을 때 제대로 말을 할 줄 아는지 확인은 않는 것인지...? 청소년들은 방송에서 흉내낸 탓도 많을 것 같습니다. 으 진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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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24 13: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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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 (59.XXX.XXX.100)
저희들끼리는 저희끼리로/ 때가 많습니다는 때가 잦습니다로/ 따져야겠냐며는 따져야겠느냐로~/ 스스로를 은 자신을 또는 스스로로/ 흘리냐 는 흘리느냐 로/ 띄어쓰기도 곳곳에 오류가 보이네요^^ 죄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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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13 16:28:25
0 0
김윤옥 (210.XXX.XXX.214)
60,70 년 대만 해도 대화중에 영어단어 한 두개 쯤 섞어 써야 그럴 듯 하다고 여기는 풍조가 있었지만 우리말을 결 곱게 잘 쓰는 것이야말로 듣는이를 편안하게 하는 것 입니다.
아무데나 높임말을 쓴다고 다 높아지는 것도 아닌데 무분별하게 존칭을 쓰거나 어법에 맞지않는 표현을 써서 '이게 아닌데'.... 하는 씁쓸함을 오래 남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TV 프로중에 우리말 바루기 같은 프로는 짧은 시간에 유익한 내용을 담고있어서 늘 놓치지않고 보곤합니다.
신아연님 같은 분들이 우리말 제대로 쓰기에 관심을 가진다면 조금이라도 국어순화에 도움이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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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13 11: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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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us (121.XXX.XXX.170)
무관심했던 부분에 정신이 바짝듭니다. 자기 남편을 직책으로 부르는 여인들의 말숩관은 정말..... 그냥 "자기 남편"이라면 될 것을 말입니다. 애정 부족인지요. 그리고 우리 말의 존칭어, 극존칭어는 권위주의를 더 부추길 소지가 많은 것이 아닐까요. 모든 이가 서로에게 존칭어를 사용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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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13 09: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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