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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난 작가 최인호
임철순 2009년 07월 14일 (화) 04:28:48
소설가 최인호 씨가 최근 <가족 앞모습>과 <가족 뒷모습>이라는 책을 냈습니다. <가족>은 그가 1975년 9월부터 34년간 월간 <샘터>에 연재해온 연작소설의 제목입니다. 2009년 8월호로 400회를 맞는데, 320회까지의 연재분을 7권의 단행본으로 낸 데 이어 이번에 8, 9권째를 냈습니다. 고교 2학년이던 1963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벽 구멍으로>가 당선작 없는 가작 입선함으로써 작가로 데뷔한 그의 작품 중 가장 긴 대하소설이 <가족>입니다. 이미 원고지 8,000장 분량으로 국내 잡지 최장 연재 기록을 세운 이 소설은 언제까지 계속될까요? 가족이 있는 한 쓸 이야기는 많습니다. 아마도 최씨 자신의 말처럼 작가가 죽는 날까지 소설은 계속될 것입니다.

단행본의 머리말에는 “400회의 인생행로를 통해서 만나고 스쳐갔던 사람들, 함께 걷고 있는 수많은 이웃들, 앞으로도 만나게 될 나그네들 모두가 한 가족임을 깨달은 요즘 나는 그 모든 소중한 인연들과 삼라와 만상을 향해 고맙다는 사랑의 말을 전하고 싶다”고 씌어 있습니다. 이 글을 좀 더 인용하면 “그 어떤 큰일도 원고지 20매 분량을 넘을 수 없고, 하찮은 사소한 얘기도 정량을 차지하는 이 평균율의 연작소설은 내가 매달 한 장씩 붙여가는 가족앨범과 같은 것”입니다. “이 낡은 앨범에 나오는 아내를 비롯한 나의 가족들은 이웃에 함께 사는 여러분 모두의 가족이며, 그러므로 이 이야기는 단순히 내 가족의 개인사가 아니라 여러분 모두의 가족사일 것”이라는 말도 했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라는 제목의 400회 글에는 “400회를 쓰는 동안 내 인생에서 만난 가족들과 그대들은 인생의 꽃밭에서 만난 소중한 꽃들과 나비인 것이니, 숨은 꽃보다 아름다운 그대들이여, 피어나라.”는 말이 나옵니다. 한 개인의 가족사가 독자 모두의 가족사라거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말은 누구나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삶의 중요한 고비를 넘긴 작가의 말이어서 더 의미가 깊습니다.

잘 알려져 있듯이 침샘암에 걸린 최씨는 수술과 투병으로 2008년 8월부터 2009년 2월까지 7개월 동안 연재를 중단한 바 있습니다. 지난해 7월, 두 번째로 병원에 입원했을 때 김수환 추기경이 같은 병동에 누워 있는 것을 알고 많은 용기와 위안을 얻었다고 합니다. 올해 2월 김 추기경 선종 소식을 들었을 때는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1주일 내내 울었다고 합니다. 새로 생을 얻은 사람의 눈에 이 세상과 가족이 어떻게 보이겠습니까? 1994년에도 교통사고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난 일이 있지만, 49세에 마주친 죽음과 환갑도 지나 마주친 죽음은 그 깊이와 의미가 많이 다를 것입니다.

최씨는 1987년 가톨릭에 귀의해 베드로를 본명으로 받았으나 스스로 불교적 가톨릭 신자라고 말하는 사람입니다. <가족> 397회 ‘나의 게쎄마니 동산’이라는 글에서 “80년대 후반 가톨릭에 입교해 영세 받고 한 2년간 붓을 놓은 적이 있는데 鏡虛(경허)의 선시 중 ‘일 없음이 오히려 내가 할 일(無事猶成事)’이라는 구절에서 한 방망이 후려 맞고 불교에 심취하게 됐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수상록 <나는 아직도 스님이 되고 싶다>, 구도소설 <길 없는 길> 등을 쓴 것도 불교의 영향입니다. “내 정신의 아버지가 가톨릭이라면 내 영혼의 어머니는 불교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불교적 가톨릭 신자’라고 자신을 부르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가 2001년에 낸 단편소설집 <달콤한 인생>의 ‘작가의 말’에는 조선시대 喚醒(환성) 스님의 선시 <春吟(춘음)>이 실려 있습니다. 緤杖尋幽逕 徘徊獨賞春 歸來香滿袖 蝴蝶遠隨人(설장심유경 배회독상춘 귀래향만수 호접원수인), 지팡이를 끌고 이슥한 길을 따라 홀로 배회하며 봄을 즐긴다, 돌아올 때 꽃 향기 옷깃에 스며 나비가 멀리 사람을 따라오네, 이런 뜻입니다. 그가 경허의 말에 한 방망이 맞은 것 같다고 말했듯이, 나는 이 글을 읽었을 때 한 방 맞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나는 작가가 아니지만 그가 말한 대로 문학의 향기가 저절로 옷깃에 스며 너울너울 사람을 따라오는 나비, 그런 호접과 같은 글을 쓰고 싶다는 말에 완전 공감했습니다.

그를 만나서 안 것은 15년쯤 됩니다. 만날 때마다 유쾌했고, 그가 귀엽다는 생각을 늘 했습니다. 귀엽다는 느낌은 나이가 많고 적음과 관계없는 감정이니 그렇게 말해도 괜찮을 것입니다. 젊은 시절의 실수나 방황에 대해 화제가 미치면 “전생의 일은 이야기하지 맙시다. 하하하” 하고 웃는 것도 좋아 보였고, 키가 작은 사람이 굵은 시가를 입에 물고 폼을 잡는 것도 그럴 듯했습니다. 특히 40여년 간 글을 쓰면서 문단이나 문단의 일은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는 자세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는 세상이 다 알아주는 악필입니다. 신문에 소설을 연재할 때는 교열부에 먼저 찾아가 폐를 끼치겠다는 인사를 할 만큼 그의 글씨는 알아보기가 어렵습니다. 몇 번 책을 받은 일이 있는데, 그가 책에 써 준 글씨는 아무리 뜯어 봐도 ‘임철순님’이 아니라 ‘임철순놈’입니다. 그것도 재미있습니다. 이 컴퓨터와 인터넷시대에도 여전히 육필을 고집하는 것은 남들에게 불편한 일이지만, 컴퓨터로 자판을 두드려 써낸 원고는 왠지 독창적이지 않고 성형수술을 한 느낌이 들어서 싫다니 그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가 앞으로 자신의 죽음까지도 잘 기록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인간이 글을 쓰면서 어느 정도까지 솔직하고 정직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자신의 죽음을 냉정하게 쓸 수 있다면, 바꿔 말해 자기 삶의 완성을 냉철하게 기록해 남길 수 있다면 무엇보다 더 행복한 일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원로 평론가는 최인호와 유명작가 L씨를 비교하면서 “최인호는 본 라이터(born writer)야”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L씨가 노력에 의해 만들어진 작가인 것과 달리 최인호는 본 라이터, 타고난 작가라는 것입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 타고난 작가의 건필을, 문자 그대로 건필(健筆)을 기원합니다. 그의 글의 향기가 저절로 사람들의 옷깃에 스며 너울너울 나비처럼 따라가게 만들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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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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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옥 (210.XXX.XXX.182)
내 언니가 이화여고 시절 문예반 친구들과 가끔 서울 고등학교 문예반 친구들과의 교류를 하던 때 최인호씨가 서울고등학교 1학년이었던가, 서울고등학교에서 발간하는 교지에서 받은 *경희문학상* 당선작을 보았습니다.
그 후 그분은 우리문단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작가로 많은 작품을 썼습니다.
말씀 하신대로 그분은 타고난 작가입니다.
건강을 회복하셔서 더 많은, 더 좋은 글, 쓸 수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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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19 00: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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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완 (211.XXX.XXX.129)
최인호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그는 'Born Writer' 라는 것에 동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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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14 09:5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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