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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 18세
신아연 2009년 07월 27일 (월) 09:12:18
<좌석 벨트 사인에 불이 켜지자 기내 방송이 나오기 시작했다. “ 7월 18일 겨울 날씨의 시드니 현재 기온은 섭씨 8도, 하늘은 맑고 쾌청하며 습도는…” 기장의 어나운스먼트가 계속되는 동안 앞으로 나와 가족들이 살아갈 낯선 땅 호주가 점점 가까워오고 있었다. 동그란 비행기 창을 통해 그림같은 시드니 시가지를 내려다보며, 떠나온 내 나라와는 다른 하늘 아래가 펼쳐져 있음을 비로소 실감한다. 나의 호주 이민 생활이 막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중략)

창문을 쪼아대는 새소리에 잠이 깨고 지천으로 피어나는 꽃향기에 혼곤히 취하는 나라, 아이들은 지치지도 않고 초록 잔디밭과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그림을 그리며, 바베큐 파티가 벌어지는 공원 한켠에는 책을 읽다 소르르 잠이 든 젊은이의 모습이 액자 속 그림인 양 평화로운 곳.., 하루일과를 마치고 귀가한 가장은 아내의 저녁 준비를 거들거나 정원을 손질하고, 주말이면 피크닉으로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

처음 호주 땅을 밟으며 기록한 이 나라의 정경과 사람살이가 지금도 달라진 것이 없음을 느낀다. 정물같이 평온하고 안정된 일상의 구도 속에 이방인인 우리도 천연스레 끼기 위해 영어를 익히고 이 나라 문화에 낯을 익혀온 지 어느새 8년이 흘렀다. 수면 위를 매끄럽게 헤엄치는 여유로운 몸짓의 오리도 실은 안간힘을 다해야 하는 갈퀴를 물밑에 감추고 있듯이, 겉으로는 제법 이 땅에 적응이 된 듯 하지만 속은 여전히 이방 정서에 낯설어 까무룩한 내 나라의 품속을 서성이는 세월이기도 했다. >

2000년에 낸 저의 첫 이민 칼럼집 <심심한 천국 재밌는 지옥> 서문의 일부입니다. 출간한 지 10년 가까이 된 책을 새삼 들춰보게 된 연유는 한 열흘 전 책방에서 걸려온 전화 때문이었습니다.
제 책을 찾는 사람이 있어서 대형 서점과 출판사에 문의했지만 구하기가 쉽지 않아 글을 쓴 저를 직접 수소문하게 되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책낸이 처지에서는 고맙고 기운나는 일이 아닐 수 없어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독자에게 부탁하지도 않은 사인까지 곁들여 책방으로 전달했습니다.
그리고는 잠시 그 때 그 시절을 되돌아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그 날은 저희 가족이 한국을 떠나 호주로 온 날짜와 한 주 정도 차이밖에 나지 않아 그 때의 정서를 더욱 자극했습니다.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 사람은 방황을 하게 마련입니다. 유치가 잘 빠져야 영구치가 무리없이 제자리를 잡듯이 자기를 찾아가는 내면 여정이 비교적 안정되어 있는 청소년들은 격동없이 순탄하게 성인기로 접어듭니다. 아이도 아니고 어른도 아닌 자신의 모습을 자각하는 순간부터 그 여정은 시작되지만 자신을 찾아가는 끝지점에서 덧니 없는 고른 치열처럼 반듯한 자아정체성을 정착시키기까지는 지난한 고통을 동반합니다.

이민의 과정도 그러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아이가 어른이 되려면 아잇적 모습과 습관, 성정을 벗어버려야 하듯이 이민의 첫 걸음은 지금껏 살아왔던 관성과 익숙한 것들과의 결별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리고는 떠나온 내 나라와 단절되는 아픔을 애잔한 그리움의 형태로 삭여야 합니다. 달리 말하자면 녹록치 않은 이국에서 겪는 삶의 애환을 스스로 달래야 한다는 뜻입니다.

높은 언어의 벽과 질곡을 묵묵히 감수하면서 낯선 문화 속에서도 삶의 고갱이를 지키며 새 땅에 내린 뿌리를 위한 자양분을 만들어 가는 중에도 능력과 함께 소신도 지켜야 하고 때로는 맹렬히, 때로는 고즈넉히 자신과의 싸움을 치러야 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민이라는 뿌리 옮겨심기는 청소년들이 이루어가는 정체성 확립과정과 매우 흡사합니다.

배움의 속도가 빠른 사람이 있고 더디 배우는 사람이 있으니 나이를 솔찮이 먹었다고 해서 무조건 어른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것처럼 ‘이민짬밥’이 제법 되어도 ‘이제 자리를 잡았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요. 그렇다고 먹고 살 만큼 돈을 벌었다는 것만 가지고도 정착의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자신을 잘 돌보면서 동시에 주변을 아우르며 균형을 잡을 줄 알아야 하는 것은 이민 생활에서 특히 중요하지만 누구에게도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실상 어느 곳, 누구의 삶인들 고달프지 않으리오마는 이민의 삶을 굳이 ‘사람이 되어가는’ 10대들과 비교하는 데는 절박함과 치열함이 칼날처럼 선연하기 때문입니다. 이민 8년째에 첫 책을 내고 10년이 흘렀지만, 그래서 얼추 18년의 세월을 외국에서 보냈지만 저는 아직도 철이 안 난 미성년자의 모습입니다. 물리적으로 성인 대접을 받는 ‘이민 18세’를 맞이하고도 이민자로서 정체성을 찾아가는 길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는 느낌입니다. 한마디로 말해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란 물음처럼 ‘이민자는 무엇으로 사는가’에 제 자신, 똑 부러지게 답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 아연 :ayounshin@hotmail.com
신 아연은 1963년 대구에서 태어나 이화여자대학교 철학과를 나왔다.
16년째 호주에 살면서 <호주 동아일보> 기자를 거쳐 지금은 한국의 신문, 잡지, 인터넷 사이트, 방송 등에 호주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저서로는 이민 생활 칼럼집 <심심한 천국 재밌는 지옥> 과 <아버지는 판사 아들은 주방보조>, 공저 <자식으로 산다는 것>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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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옥 (210.XXX.XXX.86)
숨소리


쌘프란시스코 트윈픽스 언덕에
처음 왔습니다
마을이 내려다보입니다

엷은 어둠에 잠긴 수많은 집들
방금 어느 집 현관 앞에
장난감 같은 차 한 대가 멈춰 섭니다.

하루 일을 마친 집주인이
돌아온 모양입니다.
이제 창문으로 불빛이 새어나오겠지요.

모든게
내가 사는 서울을 닮았습니다
이런 저녁 어스름 속에선
누구나 당신이 되는 걸까
거기, 당신의 숨소리가 들릴 것 같습니다.

한 번도 만난 적 없어
누구인지 알 수 없는 당신이
두고 온 피붙이처럼
자꾸만 그리워집니다

처음부터 내 안에 당신이,
아니 당신 안에 내가있어
끌리는 무엇이 되어
我, 他를 가리는 일이 어려운 것처럼

낯 선 곳에서 맞닥뜨리는
이렇게 못 견디게 안타까운 마음이
어디 여기뿐이겠습니까

아프리카 오지의 헐벗은 땅에도
당신은 계시겠기에
어디서나 끌리는 무엇에 흔들립니다

굶주린 커다란 검은 눈망울의 어린 것
내게 눈맞추면
기꺼이 내 두레상에 숟가락 하나
더 올려야하는 줄
이제 깨닫습니다
...........................................

여행하면서 낯선 곳에서도 사람의 숨결을 느끼며 어디나 사람 사는 곳이란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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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29 23:42:47
0 0
김명임 (59.XXX.XXX.54)
호주에 가신지 20년이 가까워오는군요?
저는 여행은 좋아하지만 남의 나라에 가서 사는 것은 엄두가 안나요.
지구촌 어디든 사람사는 곳이라면 살만하겠지 까지것 못살겠어 하다가도 그럼 가서 살까볼까하면 도저히 자신이 없어요.
아마도 가장 큰 문제가 언어때문일거예요. 말이 통하는 자기 나라에서도 의미가 잘못 전달되면 서로 오해하고 전혀 다른 결과를 낳기도 하는데 말이 안통하는 남의 나라에서야....
그래서 이민가서 잘 사시는 분들 보면 대단해 보여요.
잘 사시는 것같은 아연님도 철이 안난 미성년자의 모습이라니 정체성이라는 문제가
어렵긴 어려운가 봅니다.
주변에 나이들어 역이민 오시는 분들도 많이 있던데 그렇게 돌아오신 분들도
적응이 쉽지않아 보이더군요.
어디에 살든 너무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으며 단순하게 살면 좀 낫지않을까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땅에 살면서도 고민하는 건 비슷한거 같아요.
저는 머리보다 행동을 먼저 하며 가장 심플하게 살기위해 노력합니다.
자꾸 버리고 정리하는 습관을 기르려 하는데 그게 잘 안되지요.
모처럼 아연님 글보며 제 자신을 다시 한번 돌아봅니다.
아연님 그곳은 겨울이라 생각하니 더운 여름을 잠시 잊을 수 있네요.
항상 건강하시고 좋은 글 또 부탁합니다.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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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27 10:29:31
0 0
marius (121.XXX.XXX.193)
타향살이 몇해든가 지금 그 노래 부르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드물죠. 고향, 집 떠나면 다 타향인가 알 수가 없습니다. 고향에 대한 생각이 흐밋해져있습니다. 여러 곳을 전전하다 보니 그런지. 지금 사는 곳이 고형같기도 하고. 솔직히 말씀드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별로 없습니다. 그 필요성을 느끼지도 못하고 또 그런 애잔한 마음을 갖고 싶지도 않습니다.
한국으로 결혼이민온 동남아 여인들 이야기가 자주 언론방송에 오르내립니다. 말도 안통하지 우리 시골에서, 그 복잡한 우리 움식 만드느라 눈물밥을 얼마나 먹을까 이생각저생각 하면 가슴 아픕니다. 챙겨야할 친척들은 얼마나 많고 또 한사람한사람 그 까달스런 성질 비위 맞추느라 가슴에 멍이 얼마나 들었겠습니까. 그저 참고참고 넘기며서 사는 그들이 아닙니까.
남의 집으로 살로 들어간다는 것도 힘든데 딴 나라는 어떻겠습니까. 그래도 신아연님은 글 재주라도 있어 답답함을 쓸어내기가 얼마나 좋습니까. 만약 그 뛰어난 글재능이라도 없었다면 어찌 할 것이가 생각이 막막합니다. 어쩌면 그 글솜씨가 있기에 그곳 생활이 더 만만치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 모국어에 대한 애착이 사람을 더 답답하게 만들지도 모릅니다. 모국어로 글 쓰는 재능이 차라리 좀 부족했다면 시드니 생활도 더 탐탐했을지. 그게 글쟁이의 비애이면 비애이지만 어떻게 하겠습니까. 글을 다듬고 계시는 신아연님의 글 세상이 아름다워지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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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27 10:0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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