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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환과 송진우
임철순 2009년 07월 28일 (화) 09:18:17
박태환(20)의 예선 탈락은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2007 세계선수권ㆍ2008 베이징 올림픽 수영 남자 자유형 400m를 잇달아 제패했던 박태환은 26일 열린 2009 세계선수권(로마)의 같은 종목 경기에서 결선 진출자 8명에 끼지 못했습니다. 이어 28일 새벽에는 200m에서도 결승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400m 기록 3분 46초 04는 3년 전 수준이며, 베이징 올림픽 때의 아시아신기록 3분 41초86에 비해 4초 이상 뒤진다니 충격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나도 놀랐다”는 게 본인의 말인데, “박태환은 전혀 우승을 노리는 선수 같아 보이지 않았다”는 AFP통신의 논평은 한국인들을 기분 나쁘게 만들었습니다. 200m 기록 1분46초60도 베이징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땄을 때의 1분44초85에 훨씬 못 미치는 저조한 성적입니다.

박태환은 김연아와 함께 전 국민이 사랑하는 스포츠 스타입니다. 훤칠하고 잘 생긴 데다 하는 행동도 귀여워 흠 잡을 데가 없는 청년입니다. 축구 대표팀이 죽을 쑬 때 “상암 월드컵경기장에 물을 채워 여름엔 박태환의 풀장으로 쓰고 겨울엔 김연아의 링크로 만들어라”고 네티즌들이 비난한 적도 있을 만큼 두 남녀는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박태환은 무엇 때문에 실패했을까? 연습을 게을리하거나 훈련양이 부족했던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오히려 휴식이 필요했다니 안타까운 일입니다. “2005년부터 쉬지 않고 달려와 나 자신이 많이 힘든 상태였다”는 말도 했습니다. 작년 올림픽 이후 11개월 동안 사실상 실전 경험이 없었다는 지적도 나왔지만, 그것은 박태환만의 문제라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결국 피로감과 압박감이 문제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로마로 출국하기 전 기자회견에서는 종전에 볼 수 없었던 경직된 모습이었다는 보도도 있었습니다. 대표팀과 박태환의 후원사 SK텔레콤의 ‘박태환 전담팀’과의 부조화를 지적한 사람도 있습니다. 두 차례 미국 전지훈련을 기획한 전담팀은 장기적으로 박태환을 중거리 전문에서 장거리 전문으로 변신시킬 계획이었다는데, 그 과정에서의 적응 부족이 이런 결과를 빚었다는 주장입니다. 정확한 것은 본인만이 잘 알 것입니다.

박태환의 실패를 보면서 프로야구 투수 송진우(한화 이글스)를 생각하게 됐습니다. 1966년생인 송진우는 박태환이 태어나던 해인 1989년에 프로야구에 데뷔했으니 올해 21년째 프로선수로 활약 중인 사람입니다. 나이로는 박태환에게 아버지뻘이 됩니다. 실제 생년월일은 호적보다 1년 빠르다니 우리 나이로 벌써 45세인 셈입니다. 그는 올해 4월 9일 3,000이닝 투구라는, 아무도 따를 수 없는 대기록을 세웠습니다. 지금까지 거둔 성적은 210승 153패 103세이브. 근면과 성실, 끈기가 없으면 거두기 어려운 성적입니다.

그는 팔꿈치 통증으로 대학 2, 3학년 시절을 통째로 쉬어야 했고, 프로 데뷔 10년쯤 뒤부터는 성적이 부진해 내리막길을 가고 있었다고 합니다. 30대 중반에 더 이상 힘만으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 피칭 스타일을 바꾸고 강약과 완급을 조절하는 데 눈을 뜬 것이 최고령 최장수 기록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회복력이 빠르고 부드러운 근육, 살이 찌지 않는 체질, 철저한 자기관리 이런 것들이 장수비결로 꼽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한 월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야구를 즐기는 것’을 장수의 비결로 꼽았습니다. 즐겨야만 잘 할 수 있고 오래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목해야 할 것은 그가 최다승 투수이면서 동시에 최다패 투수이기도 하다는 점입니다. 이 점을 사람들은 잘 생각하지 않지만, 남들보다 훨씬 더 패배의 아픔을 겪어 본 사람이 야구에 대한 흥미와 애정을 넘어 즐기는 것을 강조하고 있어 인상적입니다.

사실 그런 말은 다른 스포츠 스타들에게서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LPGA에서 활약하는 박세리도, 김미현도 표현은 서로 약간 다르지만 “우리 한국골퍼들은 게임을 너무 열심히 한다, 너무 집착이 많은 것 같다”고 지적하면서, “게임 자체를 즐겨라, 편하게 쳐야만 골프가 즐거워진다”는 말을 했습니다.

논어에도 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지지자 불여호지자 호지자 불여낙지자), 알기만 하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느 분야든지 지극하면 서로 두루 다 통하는 것 같습니다. 그것이 통달이라는 것이겠지요.

박태환은 이번에 소중한 실패의 경험을 했습니다.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일찍 실패해 보지 않은 사람이나 늘 성공만 한 사람은 위험합니다. 그런 사람들일수록 겸손과 거리가 멀고, 독선에 빠질 우려가 큽니다. 정말로 위험하고 치명적인 상황에 닥치면 극복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아직 나이가 어린 박태환에게 무리한 주문일지 몰라도 수영과 승부를 즐기는 자세를 갖춰가기 바랍니다. 박태환의 경우를 보면서 인간의 삶, 세상살이 이런 것들을 다시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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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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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길순 (211.XXX.XXX.129)
여름입니다. 요즘은 무엇을 즐기시면서 사시나요?
이제는 술도 고통스럽게 마시지 말고 즐겨야겠습니다. ㅎㅎㅎ 골프두요.
이 여름, 내내 건강하세요. 언제 뵙는 날을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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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29 15:15:05
0 0
다비 (99.XXX.XXX.163)
세상을 살면서 실패해 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요?
공부에 실패했든, 사랑에 실패했든, 결혼에 실패했든, 자식교육에 실패했든,
그 많은 것 중에 실패를 한가지도 해 보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무섭지 않을까요?
답변달기
2009-07-29 10:55:13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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