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와 도둑_(김홍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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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와 도둑

김홍묵

2009년 08월 05일 (수) 02:37:52

런던에는 세 가지 종류의 개가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자유는 가졌으나 볍률을 못 가진 개입니다. 이것은 일정한 집도 주인도 없이 제 마음대로 돌아다니는 들개들입니다. 자유로이 다닐 수 있으니 재미있는 일도 많고 즐거울 것 같지만 여차하면 경찰관에게 잡혀 죽음을 당하고 맙니다.

둘째는 법률은 가졌으나 자유는 없는 개입니다. 이 개는 항상 목에다 가죽 끈을 두르고 쇠고리에 끌려 다니는 개입니다. 다른 개를 보고 쫓아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고, 제 마음대로 달리고 싶어도 그때마다 뒤에서 쇠고리가 잡아당기고 있습니다.

셋째는 자유와 법률을 다 가지고 있는 개입니다. 주인이 고리를 풀어주면 제 갈 곳을 찾아 밖으로 뛰어 나갑니다. 공기처럼 자유롭게 뛰어 놀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은 이 개는 쇠고리보다 더 단단한 줄에 얽매여 있습니다. 주인의 사랑이라는 보이지 않는 줄로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사람으로 치면 첫째는 실업자와 같습니다. 얽매인 데는 없지만 직장도 수입도 없어 고달픈 신세입니다. 죽음의 공포까지는 아니지만 불안과 좌절의 연속입니다. 둘째는 열악한 일터에 목을 매고 있는 저소득 근로자, 셋째는 좋은 직장에서 보람과 희망을 가지고 일하는 고소득 샐러리맨쯤 되어 보입니다.

사람을 개 신세에 비유하는 것이 어불성설이긴 하지만 서양에서 개의 격은 인격에 못지않을 만큼 높은 것 같습니다. “유럽의 개는 이제 도둑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고독을 지킨다. 개는 애정의 대용물이 되어 인간을 고독으로부터 방어한다”고 할 정도니까요.

반면 동양의 개는 멸시ㆍ비하의 대명사가 될 만큼 천덕꾸러기입니다. ‘개발에 편자’ ‘개 대가리에 관’ ‘개 못된 것이 들판에 가 짖는다’ ‘개 귀의 비리를 털어 먹을 놈’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 ‘개가 겨를 먹다가 만경쌀을 먹는다’ 같은 속담들이 예증입니다.

그렇다고 마냥 개를 개 취급만 한 건 아닙니다. 근대 중국의 문호 루쉰의 작품 「개의 반박」에는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나는 꿈에서 좁은 길을 걷고 있었다. 남루한 옷에 다 떨어진 신발을 신은 거지꼴을 하고 있었다. 한 마리의 개가 뒤에서 짖었다. 나는 오연히 뒤를 돌아보고 꾸짖었다. “조용히 해, 이 권세에 아부하는 개새끼야!” 그러자 개는 싱글벙글 웃더니 대답했다. “사람들보다야 못하죠.” “뭐라고?” 나는 버럭 성을 냈다. 대단한 모욕이라고 생각했다. “부끄럽습니다. 나는 아직 구리와 은의 차이를 모릅니다. 무명과 비단의 차이도 모릅니다. 뿐만 아니라 관리와 평민의 구별도 못하며, 주인과 노예를 구별할 줄도 모릅니다. 게다가……” 나는 도망쳐 버렸다.

서양이나 동양이나 개에 대한 한 가지 공통점은 도둑을 지키는 속성입니다. 개가 인간과 가까이한 가장 오래된 동물이듯, 도둑의 역사도 궤가 비슷한 것 같습니다.

그리스 신화에는 태어나자마자 이복형 아폴로가 기르는 소 50마리를 훔치는 솜씨를 보여 준 ‘도둑의 신’ 헤르메스가 등장합니다. 기원 전의 중국 고서 「사기」(史記)에도 ‘비는 오지 않고 도둑은 온다’는 대목이 자주 나옵니다.

남의 물건을 훔치거나 빼앗는 행위 또는 그렇게 하는 사람을 도둑이라고 합니다. 단순히 물건만 훔치는 것을 도(盜), 사람을 공갈ㆍ협박하는 것을 적(賊)이라 구분하기도 합니다. 행위의 양상에 따라 절도ㆍ강도ㆍ산적ㆍ해적ㆍ의적 등의 말이 생겼습니다.

동방예의지국인 고대 우리나라는 도둑이 없는 평화로운 사회였다고 합니다. 「삼국사기」에는 BC 28년(혁거세 30년) 4월 낙랑군이 신라를 침범하였다가 이곳 사람들이 문을 닫지 않고 노적가리가 들판에 가득한 것을 보고 도둑이 없고 도(道)가 있는 나라라고 감탄하며 철수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259년(첨해왕 13년) 흉년이 들자 전국에 도둑이 많았다는 기록 이후 도둑이 끊일 날이 없어졌습니다. 조선조 들어 강절도나 와주(窩主:장물아비)는 얼굴에 먹물로 죄명을 새기는 자자(刺字) 또는 교수형에 처하거나, 처자를 노비로 삼는 가혹한 형벌까지 생겼지만 도둑이 자취를 감추었다는 말은 없습니다.

창고털이ㆍ열차강도ㆍ빌딩털이ㆍ금은방털이 수법은 신 고전에 속하고, 산업스파이ㆍ국가기밀 해킹에다 국회의 전자투표 시스템에 표 도둑까지 등장하는 판입니다. ‘피 다 뽑은 논 없고, 도둑 다 잡은 나라 없다’는 옛 말이 그럴싸 합니다.

복더위에 개들이 수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도둑 막기를 개한테 미룰 수도 없지만, 도둑을 맞으려면 개도 짖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도둑놈이 개를 꾸짖는 세태입니다. 개가 개값을 하지 못하면 도둑이 더욱 설칠 거라는 생각에 여름이 더 덥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