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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사람들
김흥숙 2009년 08월 07일 (금) 03:41:21
이명박 대통령이 여름휴가를 가기 전 청와대 직원들에게 책을 선물했다는 얘길 들으니 올해 첫날 신문에서 본 ‘부시는 독서광’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생각납니다. 칼 로브(Karl Rove) 전 백악관 부실장의 말을 인용한 그 기사에는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2006년에 95권, 2007년에 51권, 2008년에 40권의 책을 읽었다고 나와 있었습니다. 로브와 알고 지낸 35년 동안 부시 옆엔 항상 책이 있었다고 합니다.

책 좋아하는 사람에게 일종의 동지애를 느끼는 제게 부시가 책을 좋아한다는 얘긴 좀 당혹스러웠습니다. 부시 대통령을 만나본 적은 없지만 재임기간에 한 일들로 미루어 책은 통 안 읽는, 단순한 사람일 거라고 짐작했었으니까요. 부시가 독서광이라는 게 아무래도 석연찮아 지난 연말 월스트리트저널에 실렸던 로브의 글과 나흘 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리처드 코언(Richard Cohen)이 그 글에 대해 쓴 칼럼을 찾아보았습니다. 코언의 칼럼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카뮈의 ‘이방인’처럼, 내가 문학소녀들을 쫓아다니던 젊은 시절에 읽은 책을 60넘은 대통령이 읽는다는 게 뜻밖이다. 조깅을 포기하게 되면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건지도 모른다. 부시가 읽은 책은 주로, 인기 없는 일을 했지만 훗날 좋은 평가를 받은 위대한 인물들의 전기와, 경고가 가득한 역사서들이다. 부시와 로브는 이제야 역사의 뜨거운 숨결을 느끼며 지적인 대통령으로서의 부시의 이미지를 주장하려고 하나 본데 그건 너무 때늦은 일이다. 부시가 읽었다는 책의 목록은 로브의 의도와는 달리 한 가지 사실을 확인하게 해준다. 그건 부시가 폭넓은 독서를 하는 사람이 아니고 자신이 옳음을 증명해줄 책만을 구해 읽는 사람이라는 거다.

부시는 언제나 고정관념의 포로였는데, 그가 읽었다는 책들은 그 사실을 입증한다. 로브가 내놓은 부시의 독서목록은 길지만 편협하다. 거기엔 왜 이라크 전쟁이 잘못된 것이었는지, 왜 완전한 실패를 가져올 수밖에 없었는지를 얘기해주는 수많은 책들이 없다. 나는 부시가 읽은 책의 수엔 경의를 표한다. 하지만 그가 읽은 책들은 그가 이미 아는 걸 확인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는 걸 보여줄 뿐이다.”

워싱턴포스트 인터넷판 코언의 칼럼에는 무수한 댓글이 붙었습니다. 거의 모두 부시와 로브를 비난하며 냉소를 보내지만 욕설은 찾기 힘들고 유머로 일침을 놓는 글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여러 사람의 호응을 얻은 ‘AlanGoldberg54’의 글이 재미있습니다. “바로 이래서 나라꼴이 엉망이 되었나보다. 부시가 2006년에 될 대로 되어라, 나는 남은 임기동안 책이나 읽어야지 하고 마음먹은 게 틀림없다. 그래서 그가 금융 위기에 대해 전혀 몰랐던 거다. 그가 대통령이 되기 전에 이 책들을 읽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인생은 “B-C-D"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B(birth)에서 시작하여 D(death)로 끝나는데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C(choice)뿐이라는 겁니다. 그러나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인생은 “B(birth)-BC(book choice)-D(death)”일지 모릅니다. 세상엔 사람만큼이나 많은 책이 있고 책을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도 많습니다. 세상엔 또 책의 주제가 될 수 있는 일들이 사람만큼 많습니다. 그러니 무슨 책을 쓰느냐 어떤 책을 읽느냐는 선택의 문제입니다. 공직자가 된다는 것, 그 중에서도 대통령이 된다는 건, 책조차 편식할 자유가 없음을 뜻합니다. 자신이 옳음을 확인해주는 책만 읽는 것은 아부하는 사람들로 주변을 채우는 것과 같으니까요.

높은 직책에 있는 사람의 선물은 종종 낮은 사람의 의무가 됩니다. 때로는 동감(同感)으로 위로를 주고 때로는 이견(異見)으로 성찰을 돕는 게 책이니 책을 선물하는 건 좋지만 시선의 강요는 피해야 합니다. 대통령이 특정한 책을 선물했다는 소식이 매스컴에 보도되어 그 책의 판매에 영향을 주는 건 공정하지 않습니다. 더구나 그 책이 남의 나라 베스트셀러를 번역한 책이어서 열심히 쓴 책의 판매 부진으로 풀 죽은 우리나라 저자들을 우울하게 한다면 미안한 일입니다. 대통령이 또 선물을 하시게 되면 그땐 특정한 책 대신 어떤 책이든 살 수 있는 문화상품권을 주시면 어떨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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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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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옥 (210.XXX.XXX.102)
그건 선물이 아니라 압력이 되겠지요. 더우기 대다수의 사람들이 아니라!!! 하는데도 홀로 자기주장에 같혀서 꿋꿋하게 우기기만 한다면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역이 될 것입니다. 열린 사고, 유연한 태도와 폭넓은 독서로 타인의 주장도 수용 할 능력을 키웠으면 좋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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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08 01:3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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