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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살고 나 살려면?
신아연 2009년 08월 11일 (화) 08:29:50
제 또래나 그 이상 되는 주변 지인 중에 전문 체육인들이 더러 있습니다. 주로 합기도나 검도, 태권도 유단자들입니다. 특히 호주에는 태권도 사범 자격으로 이민 온 분들이 많은데 소위 왕년에 날렸든 못날렸든 이 분들은 공통적으로 외양상 곱상하고 얌전하기조차 합니다.

‘운동하는 사람’ 하면 왠지 우락부락하고 툭박질 것 같은 생각이 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선입견이고 막상 만나보면 ‘보통 사람들’보다 오히려 ‘맥아리’가 없어 보일 때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인상은 아무리 그래도 주먹이야 범상할 리 없지 싶어 그런 분들과 함께할 기회가 있으면 한번쯤은 주먹 쥔 손을 흘낏거리게 됩니다.

오래 전에 그 중 한 분이 자기들은 어쩌다 싸움이 붙거나 억울한 일을 당해도 맞받는 주먹질을 해서는 안되게 되어 있다는 뜻의 말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제 표현으로 골자만 엉성하게 옮기자면 프로급인 자기들이 제대로 한대 팼다가는 보통 사람들은 그야말로 ‘뼈도 못 추릴’ 상황이 벌어지게 될 터이니 그래서 방어는 할망정 공격은 허락되지 않는다는 뜻이었습니다.

힘있는 자일수록 함부로 그 힘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한 약자에 대한 아름다운 배려라는 감동과 함께, 마땅히 그 힘을 써야 할 때는 마치 슈퍼맨이나 배트맨처럼 공동의 선과 의를 위해서라야만 하지 않을까 하는 낭만스런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어찌 신체적 물리적 힘 뿐이겠습니까. 사람은 누구나 나름대로 힘을 가지고 있으니 우선 가정에서 각자의 힘을 악랄하고 치사하게 행사하는 것으로는 얄밉게 구는 아내에게 남편들의 생활비 안 주기라든가, 반대 펀치로는 아내들의 밥 안해주기, 더 안달구는 데는 잠자리 거부가 있다고 하더군요.

부모라는 권위를 내세워 수동 의존적일 수밖에 없는 어린 자녀들을 윽박지르고 함부로 대하는 것도 가정에서 일어나는 잘못된 힘 사용의 흔한 예입니다. 그렇다고 자식들은 뭐 가만 있으란 법이 있나요? 가지가지로 부모 속 썩이는 것으로 그 ‘보답’을 충분히 하려고 들지 않습니까.

그런가 하면 “곤조 부리는 주방장 때문에 식당 못해 먹겠다”는 분들도 있고, 명분만 그럴듯하면 파업이나 시위를 일삼는 것도 말하기는 조심스럽지만 ‘사회적 약자라는 이름의 힘’을 행사하는 것처럼 비칠 때도 있습니다.

이따금 저도 글을 쓸 줄 안다는 것이 무슨 무기라도 되는 것처럼 ‘휘두르고‘ 싶어지는 유혹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상점 주인이 터무니없이 불친절하게 군다거나 서비스 요금 따위가 바가지라는 낌새가 있을 때, 어디에 문의 전화를 했는데 퉁명스럽고 기분나쁘게 받을 때면 ‘내가 누군 줄 알고.., 그냥 확 써버릴까부다’하는 매우 치졸한 생각이 순간적으로 드는 것입니다.

어떤 소설가는 세상의 이런저런 상채기로 마음이 스산하고 심란할 때 글을 한 편 쓰고 나면 스스로 위안도 되고 자기치유가 일어난다는데, 그런 문학적 승화는커녕 기껏 이웃에 대한 앙갚음 수단으로 알량한 펜의 힘을 남용하고 싶어지니 저의 인간됨의 저급함을 짐작하실 수 있을 겁니다.

성자의 반열에 오르거나 거기까지는 아니라 해도 자신의 안위를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을 거슬러 남을 위해 일생을 헌신코자 결심한 경우가 아닌 바에야 사람들은 저마다 할 수만 있다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식으로든 영향력을 끼치고 돈이나 권력, 지위나 명예 따위로 유세를 부리고 싶어합니다. 그러다보니 승자독식과 적자생존, 무한경쟁 등을 마치 생명유지의 기본원칙처럼 고수하면서 저마다 고단한 생을 꾸려가는 것이 현대사회의 본질처럼 되어버렸습니다.

‘너 죽고 나 죽자’에서 ‘너 죽고 나 살자’는 우스개가 만들어질 수는 있어도, ‘너 살고 나 살자’는 소리는 농담으로라도 여간해서 들어보기 힘듭니다. 극도의 이기주의가 만연하는 곳일수록 구성원 각자의 내면은 두려움과 허상으로 채워지고 그것은 곧 ‘나 자신밖에는 믿을 구석이 없다’는 무지막지한 힘의 논리를 불러들이게 됩니다.

날선 대립과 각자의 아집이 옹벽처럼 요지부동인 요즘 같은 때에 ‘힘을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상대방을 해칠 수 있으므로’라는 체육인들의 우직하고도 단순한 원칙을 상기해 봅니다.

남에게 읽힐 목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저 또한 펜대를 함부로 놀려서는 안되는 것처럼 우리 모두는 남을 해코지하는 일에 자신의 힘을 사용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 원칙만 지켜진다면 사람 사는 일의 많은 문제가 저절로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조물주가 각자에게 다른 재주를 주셨을 때는 그것으로 서로 도와가며 오손도손 정답게 살라는 뜻이었을 테니까요.

   




신 아연 :ayounshin@hotmail.com
신 아연은 1963년 대구에서 태어나 이화여자대학교 철학과를 나왔다.
16년째 호주에 살면서 <호주 동아일보> 기자를 거쳐 지금은 한국의 신문, 잡지, 인터넷 사이트, 방송 등에 호주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저서로는 이민 생활 칼럼집 <심심한 천국 재밌는 지옥> 과 <아버지는 판사 아들은 주방보조>, 공저 <자식으로 산다는 것>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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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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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us (121.XXX.XXX.105)
사람과 사람간의 거리가 문제입니다. 너무 가까워도, 너무 멀어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타산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이 거리를 잘 유지를 못하면 서로가 마음에 상처를 주고받기가 쉽지않을까 합니다."우리는 무엇이라도 다 말할 수 있는 사이"라는 것이 따지고 보면 무서운 말입니다. 일생 내내 신부님 처럼 고해성사 내용을 다 가슴에 담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 어디 세속의 우리들이 지킬 수 있는 말입니까. 할 말 안할 말을 가려서 하는 것이 좋은 것이지 못 할 말도 해놓고 상대방에게 평생 수절을 강요하는 것은 무리하다 생각도됩니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 안전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특히 한국사람들이 생각해볼 인간관계의 기본 수칙같은 것이 아닌가 합니다. 미국 카우보이도 등 뒤에서 일방적으로 총을 안 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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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13 08:5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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