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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하세요?

김수종

2009년 08월 12일 (수) 01:11:46

‘블로그’, ‘트위터’, ‘포스팅’, ‘업로드’, ‘리플’.
이런 말들은 오늘을 사는 20대나 30대 젊은이들이면 꿈속에서도 쓰는 용어들입니다.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32년 전에 작고한 ‘양주동 박사’는 40대 중반 이상이면 기억에 남을 만한 저명한 국문학자였습니다. 그는 자신을 ‘국보1호’라고 말하고 다녔습니다. 그의 학문적 깊이와 위트감각을 인정했기 때문에 아무도 그에 시비하지 않았습니다. 일정 시대에 와세다 대학 영문학부를 다녔으니 그는 영어에도 능통했을 겁니다.

양주동 박사가 다시 살아나 컴퓨터 모니터라는 희한한 스크린에 형식도 없이 마구 올라오는 블로그를 보고 어떤 표정을 지을까요? 너무 좋아서 “나도 블로그 한번 날려보자”며 키보드 앞에 앉을까요? 아니면 너무 충격을 받은 나머지 고개를 저으며 돌아서 버릴까요?

생각의 속도가 인터넷 문화의 빠르기에 적응이 되지 않는 기성세대는 살기가 점점 혼란스럽고 불편해지는 것 같습니다. 젊은이처럼 디지털 문화에 익숙해지지도 않고, 그렇다고 인터넷에 빠진 그들과의 속 깊은 대화도 할 수 없게 됐으니 말입니다. 사실 기성세대도 부모와 같이 앉았어도 텔레비전 화면만 보며 대화를 하지 않았던 것은 마찬가지였다고 생각하기는 합니다만.

요즘 가장 큰 변화를 겪고 있는 것이 미디어의 세계입니다. 과거에는 통상 언론이라고 칭해왔는데, 언론이란 말속에는 신문 방송 잡지 통신 등 큰 회사가 많은 기자들을 거느린 거대한 조직의 의미가 있습니다. 인터넷이 보편화하면서 매체의 종류가 다양해지고, 거대 자본의 필요 없이 자기의 생각을 펴고 전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즉 뉴미디어가 등장한 것입니다.

뉴미디어 중에서도 요즘 세상의 흐름을 타는 것이 블로그입니다. 개인이 블로그 사이트를 개설해서 자신의 의견을 펴는 일종의 ‘1인 미디어’개념입니다. 블로그라는 말은 인터넷을 의미하는 web과 일지를 뜻하는 'log'의 합성어 weblog의 줄임말입니다. 인터넷에 자기의 글을 올리는 것이 바로 블로그입니다. 그리고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사람을 ‘블로거’라고 합니다. 블로거의 원조국가인 미국에서는 1997년에 첫 블로그가 등장했고, 한국에서는 2001년에 나타났습니다.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몰라도 현재는 이게 확산일로입니다. 이렇게 되니 인터넷 포털마다 블로그에 상당한 신경을 씁니다. 포털 사이트 ‘다음’의 경우만 보아도 작년 10월 블로거 기자로 등록된 사람이 9만여 명이었으나 올해 8월 초 현재 13만 명이 넘었습니다. 인터넷 포털들이 모두 블로그에 덤벼들었으니 그 네트워크는 대단한 규모가 될 것입니다.

이명박 대통령도 블로거로서 글을 올리고, 시민운동가도 블로그를 만들어 자신의 주장을 펴며, 주부가 자신의 음식솜씨를 자랑하는 블로그도 만듭니다. 기자들도 블로그를 만들어 취재하면서 지면사정이나 회사방침 때문에 못 다한 이야기를 씁니다. 미국에서도 블로그의 위력은 대단해지고 있습니다. 지난해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선보인 허핑턴포스트(Huffington Post)도 2005년에 나타난 일종의 블로그 뉴스 사이트입니다. 바야흐로 블로그 전성기입니다. 우리나라의 기성세대가 이제 블로그에 관심을 보이는 것을 보면, 젊은 세대에게 블로그는 일상의 한부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얼마 전 ‘파워 블로거’로 알려진 김주환 씨(경남도민일보 기자)의 강연을 들었습니다. ‘파워 블로거’란 수만 명 또는 수십만 명에 이르는 개인 독자를 가진 블로그 글쟁이를 말합니다. 김 씨는 매우 진보적인 주장을 펴는 사람으로 보수 진영의 조갑제 씨에 대응하는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의 주장을 떠나서, 그가 블로거의 미래를 바라보는 관점이 흥미로웠습니다.

“나는 블로그를 통한 영향력에서 조선일보 기자 3명과 맞먹을 자신이 있습니다.”
“종이 신문이 어떻게 되냐고요. 나는 5년~10년이면 종이신문은 얼마 남지 않을 것으로 봅니다.”
그는 이런 말을 거침없이 쏟아놓았습니다. 블로그에 완전히 매료되어 있지 않고는 감히 하기 어려운 말입니다.

김 씨는 블로그 문장론에 대해서도 경험을 제시하며 기존의 틀을 깨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신문 기자들이 노상 사용하는 딱딱한 문체로 쓰면 블로그를 읽을 독자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한마디로 감성을 자극하는 문장을 강조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는 실제로 해고 노동자의 글을 신문 스트레이트 기사처럼 썼을 때 며칠이 지나도 수백 명의 방문자만 기록했으나, 꼭 같은 내용의 기사를 자신의 충고를 받아들여 감성적으로 수정해서 썼을 때 수만 건의 클릭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김씨 같은 파워블로거가 많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현역기자나 기자 경력을 가진 사람들이 많지만 순수하게 블로거로 출발한 사람들도 파워블로거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수입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김씨도 블로그에 붙는 광고로 월 70만~100만원의 수입이 들어온다고 합니다.

그러나 시사성 블로그에는 광고가 잘 붙지 않는다고 합니다. 미국에서는 수만 명이 블로그 광고로 먹고 산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세상이 많이 변해간다고, 또 변해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블로그는 정치나 사회문제의 소통 공간만은 아닙니다. 요리관련 블로그를 운영하여 굉장한 수입을 올리는 사람도 우리나라에 생겼다고 합니다. 세상 모든 일이 블로그의 글 소재가 될 수 있습니다. 신문 뉴스가 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별의 별 얘기들이 블로그에 쏟아집니다. 그런 면에서 선택된 사람만이 글을 쓰던 과거와는 패러다임이 완전히 달라진 세상입니다.

‘심은경의 한국 이야기’란 블로그 사이트가 있습니다. 영화배우 신은경의 블로그로 오인할 수 있습니만, 그게 아니라 주한미국 대사 캐슬린 스티븐스의 공식 카페입니다. 이 블로그에서 스티븐스 대사는 그의 공식 또는 비공식 생활을 적어 놓고 있습니다. 블로그가 아니면 그의 생활의 단편을 그렇게 쉽게 접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맛보기로 지난 7월 8일 블로그에 올린 그의 글을 소개합니다.

<저는 한국에 와서, 지방으로 자전거 여행가기를 좋아하는 몇몇 분들을 만났습니다. 최근 어느 주말에 서울에서 남서쪽으로 2~3시간 떨어진 전라북도로 자전거 여행을 떠났습니다. 진안에서는 그곳의 최고 명소,두 개의 암봉을 가진 “말의 귀”라고 불리는 마이산(馬耳山)을 지나갔습니다. 멀리서 암봉을 바라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고, 얼마후 이틀간의 자전거 여행의 기지가 될 작은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잠시 한국을 들린 아들 제임스도 같이 자전거 여행을 할 수 있게 되어 무척 좋아했습니다. 예전부터 미국에서나 해외에서나, 여행을 간 곳이거나 사는 곳이거나, 제임스와 저는 산악자전거를 함께 탔습니다. 시골을 둘러보며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 지 배울 수 있는 좋은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산악자전거”하면 어떤 분들은 젊고 건장한 남자들이 경사지고 돌로 가득찬 산길을 내려가는 모습을 연상할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시골 뒷길을 다니기에도 튼튼한 타이어를 사용하며 농촌지역에서 자전거를 탑니다. 저는 한국이 여전히 이런 여행을 하기 좋은 장소로 남아 있어서 기쁘고, 동시에 이런 곳을 여행하기 좋아하는 분들을 만난 것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블로그는 집단지성이 형성되는 특징을 가집니다. 글의 주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수없이 자신의 생각을 쏟아 넣습니다. 어떤 여성이 외국에서 아이를 교육시키면서 한국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하면 신문에 게재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설령 게재한다 해도 신문에서는 단발의 기사로 끝납니다. 그러나 블로그에서는 지구촌 곳곳에서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 의견을 제시하고 토론이 벌어지면서 많은 정보와 지식이 모입니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그렇게 모이는 정보를 확인할 방도가 없다는 것입니다. 진위를 확인할 수 없고 일방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펴는 블로그가 세상 민심을 만들어가게 됩니다. 자유스럽기도 하지만 불안하기도 합니다. 블로그는 이중의 얼굴을 가진 미디어입니다.

블로그는 진보적인 사람들의 미디어로서 더 각광을 받는 것 같습니다. 그건 젊은 사람들의 취향에 더 맞아서 그렇기도 하고, 거대 매스 미디어에 잘 접근하기 어려운 ‘사소한 다수’의 미디어로서 더 편리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것은 기득권층 사람들이 방송과 같은 거대 미디어 진출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과 대칭을 이루는 현상입니다. 그러나 블로거들이 글의 품위만 유지한다면 블로그는 이념을 떠나 사회를 활성화하는 미디어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