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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잔별만큼 걱정도 많아라 - 『데르수 우잘라』
김이경 2009년 08월 18일 (화) 01:23:34
소심한 사람이 대개 그렇듯 저는 걱정이 많은 편입니다. 출판 일을 할 때는 책이 나올 때까지 편한 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기획을 하면 누가 금방 같은 기획을 해서 책을 내놓을 것 같고, 교정을 보고 나면 오자(誤字)들이 천장을 오락가락하는 바람에 밤잠을 설치곤 했지요. 일을 그만둔 뒤에도 걱정거리는 끝이 없어서, 집을 나서면 가스불이 불안하고, 바람이 심하면 머리 위에 매달린 간판이 걱정이고, 높은 빌딩에 올라가면 9ㆍ11테러가 떠오르고, 거리를 걸을 때는 누가 황산을 붓지나 않을까 종종걸음을 칩니다.

타고난 성격 탓도 있지만, 세상이 걱정을 부추기는 것도 사실입니다. 밥 한 끼 물 한 모금도 맘 편히 먹기가 힘드니 말이지요. 몸은 편하지만 마음은 점점 불편해지는 세상을 살자니, 몸은 좀 고단해도 마음은 편한 세상에서 살았으면 싶습니다. 시베리아의 숲에서 평생을 보낸 자연인 데르수 우잘라처럼 단순하게 사는 거지요.

『데르수 우잘라』는 러시아의 탐험가이자 지리학자인 블라디미르 클라우디에비치 아르세니예프가 1923년에 펴낸 시베리아 탐사기록입니다. 아르세니예프는 1902년부터 20여 년간 수 차례에 걸쳐서 지도에도 드러나 있지 않은 우수리 지방과 시호테 알린 산맥 일대를 탐사하고 그 기록을 여러 권의 책으로 펴냈습니다.

『데르수 우잘라』는 그 중 한 권으로, 1907년 시호테 알린 산맥의 중부지대를 탐사하고 쓴 것인데 출간과 동시에 작가 고리키를 비롯해 노르웨이 탐험가 난센 등의 찬사를 받으며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1975년에는 일본의 유명한 영화감독 구로사와 아키라가 영화로 만들어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과 모스크바 국제영화제 그랑프리를 수상하기도 했고요.

언뜻 건조해 보이는 탐사기록이 책으로 영화로 이렇게 사랑을 받은 것은 저자 아르세니예프의 담백하면서도 깊이 있는 글쓰기 덕분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데르수 우잘라’라는 인간 자체가 주는 감동이 남다르기 때문입니다. 탐사대의 길잡이로 참여한 데르수 우잘라는 현대인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인간성의 한 진경(眞境)을 보여주는데, 그 울림이 참으로 오래 마음에 남습니다.

1907년 4월 아르세니예프는 탐사대가 얼추 꾸려지자마자 예전의 동료 데르수 우잘라를 찾습니다. 러시아어도 서툴고 나이도 예순에 가까운 노인이지만 이 고리드 족(북만주에서 동시베리아 일대에 살던 남방 퉁구스 일족) 원주민만큼 원시림에 익숙하고 믿음직한 길잡이를 본 적이 없기 때문이지요.

병사와 학자들로 이루어진 십여 명의 대원들은 문무를 겸비한 탐사대장 아르세니예프를 믿고 따르지만, 사실 그가 마음속으로 믿고 의지한 것은 그들 눈에는 어리석게만 보이는 원주민 데르수였습니다. 그는 데르수가 있으니 이번 모험도 성공할 거라고 믿고 편한 잠을 잡니다. 자연에서는 자신의 지식보다도 자연과 하나가 되는 데르수의 능력이 더 큰 힘이 된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과 함께 사는 데르수에게는 자연의 모든 것이 인간과 똑같은 존재입니다. 호랑이도 벌레도 물고기도 심지어는 하늘의 별과 안개까지도 그에게는 말이 통하고 감정이 통하는 ‘사람’입니다. 아니, 자연만이 아닙니다. 탐사대가 탄 수뢰정이 거센 파도를 헤치고 온 날, 데르수는 “그거(수뢰정) 오늘 힘들었어.” 하고 그 무생물의 수고를 새깁니다.

자신과 관계된 모든 것들을 산 것처럼 여기는 이런 애니미즘을 현대인들은 원시적 믿음이라고 일축합니다만, 책을 읽다보면 과연 문명인의 종교가 원시신앙보다 나은 점이 있는지 의심스러워집니다. 데르수처럼 주위의 사물들을 나와 같은 존재로 받아들여 삼가고 연민할 줄 안다면 종교를 필요로 하는 많은 일들이 애당초 일어나지도 않을 테니까 말입니다.

한 가지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데르수가 뭇 사물들을 사람처럼 여긴다 해서 자연현상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거나 종교적인 해석을 가하는 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수평선에서 혜성이 긴 꼬리를 늘어뜨린 채 바다 속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병사들은 텐트 밖으로 나와 이 천체의 방랑자가 무엇을 예언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데르수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병사들이 그의 생각을 물었다. ‘저건 언제나 하늘을 간다. 사람들, 방해하지 않는다.’ 데르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심드렁하게 중얼거렸다. 자연을 인격으로 보는 데르수가 이해되지 않을 때도 많지만 그의 말이 논리적으로 오류인 적도 없었다. 그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판단했고, 또 인정할 줄 알았다.… 무한에 대한 공포나 완전한 허무의식, 이것은 어쩌면 문명인만이 품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쓸데없는 의미 부여로 마음을 어지럽히는 대신 데르수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봅니다. 자연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정확히 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니까요. 땅 위의 발자국만 보고도 앞서 간 사람이 한 명인지 두 명인지, 젊은지 늙은지, 성한지 아픈지를 단번에 아는 그를 두고 병사들은 마법사라며 호들갑을 떨지만, 오히려 그는 눈앞의 흔적조차 놓치는 문명인들이 답답할 뿐입니다.

데르수의 섬세한 관찰력은 사람의 마음을 읽을 때도 드러납니다. 어느 날 탐사대는 숲에서 홀로 30여 년을 살아온 중국인 노인을 만납니다. 오랜만에 사람을 만난 노인은 자신의 고독한 삶을 이야기하다가 회한에 젖습니다. 아르세니예프는 쓸쓸한 그 모습에 마음이 쓰여 노인을 오두막으로 부르려고 합니다. 하지만 데르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젓습니다. 사람이 자기 생애를 되돌아보는 것은 아무 때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니 방해하지 말라는 것이었지요.

“이번에도 고리드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진정한 고독은 자신의 삶을 되짚어보는 순간에야 가장 절절한 것 같다. 누구나 고독한 때에야 지나온 모든 일들이 천천히 떠오르기 시작한다. 오래도록 팽개쳐둔 자신의 실체가 기억 저편에서 가만히 다가오는 것이다.”

야만인 데르수 덕분에 문명인 아르세니예프는 자신의 삶과 자신이 살아온 세계를 되돌아보고, 문명이 잃어버린 지혜를 새삼 깨닫게 됩니다. 먹다 남은 고기조각을 불에 던져버린 아르세니예프에게 데르수는 아까운 고기를 버렸다고 나무랍니다. 아르세니예프는 올 사람도 없는데 왜 그러냐고 투덜대지요. 그러자 데르수가 깜짝 놀라며 말합니다.

“‘누구 오는지 모르나, 대장?’ ‘너구리 와, 오소리 와. 까마귀도 와. 까마귀 없으면 쥐 와. 쥐 없으면 개미 와. 타이가엔 ‘사람’ 많이 산다.’
나는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잘 알았다. 데르수는 개미 같은 작은 곤충도 늘 염려했다. 그는 타이가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주민들을 친구로서 사랑했다.”

그렇게 모든 존재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고 믿으며 숲에서 평생을 살아왔지만 무심한 세월은 늙은 데르수를 숲에 살도록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눈이 어두워져 더 이상은 사냥을 할 수 없게 된 것이지요. 아르세니예프는 갈 곳 없는 데르수를 선뜻 집으로 데려옵니다. 깊은 우정에서 나온 결정이었지요. 하지만 도시에서의 삶은 오히려 데르수를 위협하고, 선의의 우정은 끔찍한 비극으로 끝을 맺습니다.

지금으로부터 백 년 전, 시베리아 숲에서 숲이 되어 살았던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쓸데없는 근심으로 잠을 설치지도 않았고, 앞날을 걱정하며 미리 곳간을 채우지도 않았습니다. 대신, 오래 전에 죽인 호랑이 때문에 마음 아파하고, 가난한 이웃을 위해 고기를 나눠주었지요. 오로지 숲에 사는 모든 존재만을 염려했던 사람, 데르수 우잘라. 그가 묻습니다. 무슨 걱정이 그리 많으냐고, 정말 걱정해야 할 것을 걱정하고 있느냐고, 네 이웃들은 다 잘살고 있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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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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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객 (211.XXX.XXX.56)
데르수는 숲 사람...샤냥을 할 수 없게 되었다 해도 숲이 그의 집...
우정과 사랑은 때로 무관심과 미움보다 큰 실수를 저지릅니다.
자기다운 삶 뒤의 자기다운 죽음... 모든 생명체의 꿈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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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24 08:5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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