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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전 대통령님께
임철순 2009년 08월 25일 (화) 08:04:48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은 경건하고 엄숙하게 잘 치러졌습니다. 뙤약볕 아래 장시간 고생한 영결식 참석자들이 존경스럽고, 고맙기까지 했습니다. 왜 하필 햇볕이 가장 뜨거운 시간에 영결식을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모든 게 여법(如法)하게 잘 치러져 다행입니다.

김 전 대통령의 장례기간에 가장 주목하게 된 분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었습니다. 이 두 전직 대통령의 관계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표현대로 “가장 오래된 경쟁자이고 협력자”였으며,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유례없는 특수한 관계”였습니다. 그런 분들 중 한 분이 세상을 떠났으니 자연히 다른 한 분에게 눈길이 쏠리게 됩니다. 이제부터는 편하게 DJ, YS로 부르겠습니다.

YS는 DJ 문병을 가서 화해를 선언했고 DJ가 끝내 서거하자 “나라의 거목이 쓰러졌다”고 애도했습니다. 국장 기간에 자택에 조기를 달았던 YS는 이웃집들이 조기를 게양하지 않은 것을 서운해했다고 합니다. 특히 장례를 치른 다음 날에는 이희호 여사에게 전화를 걸어 “국민이 많이 기도하고 있으니 영부인께서 위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라며 “건강하셔야 합니다”라고 위로했습니다. 국민이 기도하고 있으니 위로를 받으라는 위로는 아무나 쉽게 할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사려와 분별이 담긴 인사라고 생각됩니다. 모처럼 보기 좋고 흐뭇한 일입니다.

YS의 이런 행동은 종전의 그와 사뭇 다릅니다. YS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입만 열면 거짓말한다”고 DJ를 비난했고, 노벨평화상 수상에 대해서도 “노벨상의 가치가 떨어졌다”, “여기저기 로비를 했다”고 평가절하한 분입니다. 특히 1999년 10월 16일 부마(釜馬)민주항쟁 20주년에 문을 연 부산 민주공원 개원식에서는 당시 대통령이었던 DJ의 면전에서 독재정권이라고 비난하는 연설을 했습니다.

이렇게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YS에 대해 DJ는 한마디도 대꾸한 바가 없습니다. 도량이 넓기 때문인지, 일각의 추측대로 YS에게 단단히 약점을 잡힌 게 있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YS가 입을 열면 열수록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품위와 금도는 망가졌고, 듣는 사람들은 민망해 하거나 창피스러워 했습니다. ‘제발 입 좀 다물고 가만히 계시지’ 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YS가 이렇게 DJ를 미워하게 된 것은 아들 현철씨 문제 때문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은데, 나이 들어서도 여전한 승부욕 때문이라는 분석도 가능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이 되기 이전 40~50대의 그들 사이는 이렇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1971년 제 7대 대선 신민당 후보경선에서 예상과 달리 DJ에게 역전패한 YS는 깨끗이 패배에 승복하고 적극적으로 DJ 지원유세를 하고 다녔습니다. 1984년 5월 결성된 민주화추진협의회를 함께 이끌 때, YS는 누구 이름을 먼저 쓰느냐로 고심하는 기자들에게 “DJ를 먼저 쓰라”고 말하는 여유도 보였습니다. 그랬던 분들이 갈라진 것은 결국 대통령이라는 자리 때문이지만, DJ 서거는 20여 년 만에 두 분을 화해하게 만들었습니다.

세간의 관심은 이제 YS에게 다시 쏠리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 DJ를 국장으로 모셨으니 YS도 그래야 될 것 아니냐, DJ와 YS는 다르다, 민주화 인권 남북관계 개선 등에 기여한 정도를 냉철하게 파악해야 한다…이런 이야기들입니다. 또 국장과 국민장을 굳이 구분할 필요가 없다, 법적 자격에 문제만 없다면 전직 대통령은 모두 국장으로 모시는 게 좋겠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면서 YS는 어떻게 생각할까를 궁금해하고 있습니다. 저도 알고 싶습니다.

그러나 YS는 국장에 집착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그런 걸로 DJ와 다투지 않았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사실 DJ국장에 대해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DJ는 분명 우리나라 현대 정치사의 거목이며 역사에 길이 기록될 위인이지만, 생전에도 호오와 포폄이 극단적으로 엇갈리던 분이었으니 평가나 예우에 대한 의견도 갈릴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유족 측과 DJ사람들이 국장을 요구함으로써 정부에 큰 부담을 안긴 것을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국민장이면 충분하다는 생각이지요.

이번에 제가 놀란 것은 DJ에게 죽음에 대한 준비가 안돼 있는 것처럼 보인 점이었습니다. 서거 이후 공개된 일기에서는 건강과 행복에 대한 의지, 가족(특히 아내) 사랑, 최근 시국에 대한 분노와 다짐 등을 읽을 수 있었지만 자신의 삶과 죽음에 대한 언급은 없었습니다. 7월 13일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할 때도 DJ는 “중간에 일어서거나 퇴원할 때 사용하려고”(비서관의 말) 지팡이를 가져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투병 의지를 보였습니다.

그것이 나쁘다거나 우습다는 게 아닙니다. 퇴원할 수 있으면 그야 가장 좋지만 이미 우리 나이 86세인 분이라면 죽음에 대비하는 게 마땅했을 것입니다. 장례 때는 이희호 여사가 준비한 수의를 썼다는데, 수의는 미리 마련하면서 유서나 그와 비슷한 마지막 메시지는 준비하지 않았다는 것, 이게 저는 좀 안타깝고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자신의 사후 문제에 대해 YS는 남은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지 말고 맡기거나 아주 소박한 장례를 준비토록 하거나 드골처럼 향리로 돌아가면 좋겠습니다.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재가 되어 국토에 뿌려진 중국의 저우언라이(周恩來)나 덩샤오핑(鄧小平)처럼 할 수는 아마 없겠지만, 나라와 민족을 사랑했던 마음이 충분히 드러나도록 검소하고 조촐한 장례를 치른다면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더 존경할 것입니다.

평생 다퉈온 라이벌이 없어지자 그에 대한 적대감과 미움도 함께 사라져 말과 행동이 순해진 사람을 저는 보았습니다. 편해진 마음이 자연히 얼굴에 나타나 나이가 많으신데도 보기가 좋았습니다. 반면 평생의 라이벌이 없어지면 경쟁의 에너지가 빠져나간 듯 갑자기 더 늙거나 쇠약해지는 분도 있습니다. YS는 어느 쪽일까, 전적으로 본인에게 달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DJ 서거 이후 화해와 통합이라는 그 분의 유지를 몸소 실천하고 있는 YS는 할 일이 아직도 많습니다. 우리 나이로 이미 83세(1927년생), DJ보다 세 살 적으니 평생 자신감을 보여온 건강에도 더 신경을 써야 할 고령입니다. 멋지고 존경 받는 마지막 삶을 잘 설계하고 실천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리고 정말 거북한 말씀이지만 혹시 쓰지 않으셨다면 지금부터라도 유서를 써 놓으십시오. 국민들에게 좋은 본보기를 만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국가원수의 죽음은 사회발전에 기여하는 공공재산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설령 아직도 DJ를 이기려는 마음이 있다 해도 이것이 그를 진정으로, 최종적으로 이기는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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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3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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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성민 (211.XXX.XXX.129)
dj와는 정반대의 마지막을 ys가 장식하는게 더오래 기억될 것으로 보네
그것을위해 남은 여생을 얼마나 잘 가꾸는가가 중요하고
지방색을 없애는데 노력을 하는것이 가장큰 업적이 되지 않을 가 생각되네 손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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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31 17:5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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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길순 (211.XXX.XXX.129)
정말 전직대통령의 죽음이 국민이 공유할 재산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은 너무도 좋은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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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25 15:18:58
0 0
imjk (121.XXX.XXX.250)
YS한테 기대하기에는 벅찬 감이 들고, 오히려 전통이라면 그럴 가능성이 있을법 하다는 생각. 재를 뿌릴 곳 중에 백담사와 망월동이 들어가면 좋으련만 망월동은 성역훼손이라고 난리가 날테고.
답변달기
2009-08-25 10:4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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