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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어 사는 보람
이상대 2009년 08월 31일 (월) 02:33:32
무주 시골에서 농사지은 것을 서울 명일동 집으로 조금 많이 가져왔더니 집사람이 넣을 냉장고 공간이 부족하다고 하였습니다. 십중팔구 아들집에 가자는 신호. 전날 돋보기를 찾는다고 잠을 설쳤고 짧은 기간에 많은 일을 하여 피곤하였지만 손자도 볼 겸 늦은 시간에 집을 나섰습니다. 가면서 손자가 자고 있으면 어쩌나 걱정하였습니다.

오후 9시 30분이 되어 등촌동 아들집에 도착하니 문을 열기도 전에 손자 녀석이 뭐라고 떠드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자지 않고 있는 것이 다행이었습니다.

지난 7월 하순에 보았으니 근 보름 만인데 몰라보게 큰 것 같았습니다. 불안하던 걸음걸이가 아주 시원스럽게 변하였고, 먹는 것도 아무거나 잘 먹었습니다. 재롱을 떨며 하는 짓도 새로운 것이 많았습니다.

배꼽인사는 일품이고, “잘했어요, 축하 합니다” 하면서 치는 손뼉도 걸작이었습니다. 으쓱으쓱하고 엉덩이를 움직이면서 몸을 올렸다 내렸다 하기도 하고, “호랑이!” 하면 “어흥!” 하고 대꾸하는 것이 대견하였습니다. 아니, 또 있었습니다, “뽀뽀!” 하면 다가와 먼저 “쪽!” 하는 것이 참으로 귀여웠습니다. 생후 15개월이니 말귀는 다 알아듣는 듯하였습니다.

아들 녀석은 아직 귀가 전인데 어느 술자리에 있다가 전화를 받았던지 통닭 1마리를 가지고 왔습니다. “아버지 오신다 해서 동석했던 직원들이 싸 준 것”이라며.

잘 되었다 싶어 오랜만에 아들과 같이 시원한 맥주를 하였습니다. 꽤나 많이 마셨는데 취하지 않았습니다. 피곤하여 많이 취할 것 같았는데… 하긴 그건 내 생각이고 마누라나 며느리가 봤을 때는 많이 취한 것으로 보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들 녀석도 취기가 돌아선지, 아님 평소에 느낀 것인지, 애비에 대한 얘기를 꺼냈습니다. 제가 육군대학 다닐 때의 일을 되새기면서. 당시 녀석은 유치원생이었습니다. 저는 아들 녀석에게 모범을 보여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피교육자 시절이라 공부에 매달리면서도 아이들을 좋아하여 저는 저녁 후에는 일과처럼 두 아들과 딸 등 셋을 모두 데리고 산책을 나가곤 했습니다. 그들에게 이러저런 얘기를 하는 틈틈이 메모한 것을 뒤져 보고 머리에 새기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아이들에게도 공부는 짬 시간을 잘 이용하여야 함을 강조하곤 하였습니다.

또 일요일에는 꽤 먼 거리에 있는 도불장(진해에 있던 육군대학의 별장으로 취수장과 약수터가 있는데 약수터는 꽤 알려져 상당한 거리의 시내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음)까지 함께 오르내리면서 건강과 기초질서의 중요함을 일깨우기도 했습니다. 특히 누구에게든 먼저 인사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아들 녀석은 불그레해진 얼굴로 “아버지의 그런 모든 가르침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며 고마워했습니다. 자식들의 올바른 성장과 발전을 위해 모범을 보였던 것을 지금껏 새기고 있다니 매우 흐뭇하였습니다. 마누라도 곁에서 거들었습니다. “아이들을 참으로 좋아했었지. 덕분에 나도 많은 부담을 덜었고.” 혹 며느리 들으라고 한 말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다음날 새벽 4시경에 손자 녀석이 울어대는 바람에 잠을 깼지만 아들과의 푸근했던 술자리 덕분에 느긋해진 마음으로 푹 자서 그런지 아주 개운하였습니다. 집에 돌아오니 아직도 이른 8시경이었습니다. 같은 서울이라도 1시간 반이나 걸리니 꽤 먼 거리였지만 조금도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글쓴이 이상대님은 경북 영주 태생의 농업인입니다. 육군 장교 출신으로 1988년 가을부터 전북 무주에 터를 잡아 자연 속에서 자연인으로 마음 편하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답니다. 처음엔 가축, 주로 염소를 방목 사육하다가 정리한 후 지금은 소규모 영농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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