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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랑 이야기
임철순 2009년 09월 08일 (화) 01:42:38
위암에 걸려 겨우 37세의 나이로 9월 1일 이승을 떠난 탤런트 장진영씨와 그 남편의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안타까움과 감동을 안겨 주었습니다. 함께한 시간은 겨우 608일, 그러나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6,000일보다 더 진하고 여운이 짙은 사랑이야기를 만들었습니다. 특히 장씨 사망 나흘 전에 혼인신고를 마친 김영균씨는 많은 여성들의 마음을 울렸습니다.

연예인들의 죽음은 아무리 애도와 조의로 포장해도 흥미와 호기심의 대상이 되고 마는데, 이번 경우는 좀 달랐던 것 같습니다. 유족측과 장씨가 소속된 연예기획사의 당부 때문이기도 하지만, 꼴 사나운 취재경쟁과 분별없는 보도가 적어 참 다행이었습니다.

인터뷰를 고사하던 김씨는 고교 동창인 기자에게 그들의 사랑이야기를 들려 주었습니다. 지난해 1월 장씨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이미 42세였는데, 결혼을 전제로 여성을 사귄 것은 처음이었다니 놀랍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사랑에 대한 그의 생각입니다.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 운명적인 사람을 찾는다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그런 사랑이 분명히 있다고 믿고 기다려 왔다는 것입니다. 그는 운명적인 사랑을 찾지 못하고 결혼해 버려 행복하지 못한 사람들도 많은 것 같다는 말도 했습니다.

만나자마자 ‘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김씨는 교제한 지 9개월 만에 장씨가 위암 진단을 받았는데도 곁을 떠나지 않았고, 회복하지 못할 줄 알면서도 올해 7월 26일 미국에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진영이만 살려 주면 나랑 안 살아도 좋다, 다른 사람과 사는 걸 봐도 좋고, 인연이 끊어져도 좋다. 진영이가 살 수 있게만 해 달라”고 수없이 기도했다고 합니다. 김씨는 "내가 곧 그녀이고, 그녀가 곧 나였다”는 말도 했습니다.

장진영씨의 이야기를 읽는 동안 이경남(李敬南) 시인의 사랑 이야기가 겹쳐 떠올랐습니다. 그가 <월간문학> 7월호에 발표한 시 '장일숙, 그대 있으매’라는 시가 저절로 생각났습니다. 읽은 지 두 달 정도 됩니다.

물새 두 마리 짝지어 종알대며 날아가는/아침 강 언덕에 나 홀로 앉아/풀잎에 지는 이슬방울 약손가락으로 받아 찍어/그 이름을 손바닥에 그려 본다. 장일숙.//그대 잃은 지 60성상이런가/강산은 바뀌어 여섯 번 회돌았어도/손금처럼 새겨진 그 이름 세 글자는/황혼을 살라먹고 더 선연히 떠오르는구나.//장일숙 그대 있으매/내 심장은 세월을 거슬러 아직도 뛰고/밤 하늘 별 밭에서 그리움의 눈시울을 적시며/두 여인을 사랑할 줄 아는 슬기도 익혔으니/그대여, 지금은 어느 영마루에서/꽃수 놓은 손수건을 흔들고 계시는가//

장일숙은 그의 첫사랑입니다. 이씨는 시에 붙인 해설성 글에서 그녀가 6ㆍ25때 구월산 반공유격전에서 함께 싸우다 혼전 중에 실종됐다고 했습니다. 1929년 황해도 안악에서 태어난 이씨의 운명은 참 기구합니다. 북한 소위였다가 남한 소위로, 이어 북한 속의 남한 유격대로, 그리고 남한으로 와 육군 중위로 군 생활을 마친 그는 첫사랑을 잃은 월남시인입니다. 북으로 가지 못한 공산계열이 지리산 빨치산이 된 것과 반대로, 그는 구월산 반공유격대가 되어 북에서 공산군과 싸웠습니다. 1953년 7월 휴전에 맞춰 게릴라 대원들과 함께 남한으로 철수, 나중에 금성충무무공훈장도 받았지만, 그의 삶은 ‘장일숙 찾기’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씨는 서울에서 월간 <현대문학> 창간호(1955년)를 사 들고 가 전선 막사에서 읽다가 ‘북창(北窓)’이라는 시를 이 잡지에 투고해 1957년에 시인 추천을 받았습니다. 이때 그는 보고 싶고 찾고 싶은 사람, 장일숙이라는 이름으로 투고를 했습니다. 그녀가 반드시 남한으로 내려왔으리라고 믿었던 이씨는 시가 실린 뒤 현대문학사에 편지를 보내 “장일숙이라는 여자가 연락해 온 게 없느냐”고 물었지만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그는 그녀를 찾을 수 없다는 절망감에서 술을 배우고, 제대한 뒤에는 출판사에 취직해 북쪽으로 창이 있는 하숙을 얻어 북창으로 북을 보며 장일숙을 그리워하며 살았습니다.

참 묘하게도 그의 부인은 같은 고향 출신이지만 월남한 다음에 만난 사람입니다. 앞서 인용한 시에 ‘두 여인을 사랑할 줄 아는 슬기’라는 말이 나오는데, 지금의 부인과 오랫동안 함께 살면서도 장일숙에 대한 그리움은 세월이 갈수록 더 짙어져 가고 있나 봅니다.

40년 전에 시집 <북창(北窓)에 어리는 빛>을 냈고, 다큐멘터리 실록물이나 현대 한국사 관련 저서 15권 정도를 출판한 이씨는 이산가족이 되어 만날 수 없게 된 그리운 사람들을 추모하는 책과 자전적 소설 등을 내는 것이 마지막 꿈이라고 합니다. 역시 장일숙 이야기가 큰 비중을 차지할 것입니다.

대체 사랑이 무엇이기에 저토록 오래 가고 질긴 것일까? 사랑이 뭐기에 팔순에도 여전히 심장이 뛰게 만들까 하는 생각을 저절로 하게 됩니다. 상실과 부재, 별리와 돈절은 사랑을 더 크고 간절하게 만드는가 봅니다. 사람들이 하늘의 별을 올려다 보는 것은 그것이 사랑의 표상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문정희 시인의 '부부'라는 시에는 '결혼은 사랑을 무효화시키는 긴 과정이지만/결혼한 사랑은 사랑이 아니지만'이라는 말이 나오지만, 장진영 부부나 이경남 시인의 간절한 바람 그대로 현실에서 못 다한 운명적인 사랑, 그 사랑이 하늘에서나마 아름답게 이루어지고 완성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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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1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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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길순 (211.XXX.XXX.129)
초가을에 이런 가슴 더운 이야기를 만나다니요. 건강하세요. 채길순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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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09 08:57:51
0 0
서화숙 (211.XXX.XXX.129)
자기소개가 바뀌었군요.^^ 재미있기도 하고, 여러 가지 생각이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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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09 08:57:19
0 0
정경선 (211.XXX.XXX.129)
이편지를 보고 알게 된 내용이지만 젊은 시절의 사랑을 평생 애틋하게 간직한게 감동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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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09 08:5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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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장춘 (211.XXX.XXX.129)
여전히 건강하면서 담담한 필치로 재미있게 써 보여줍니다 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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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09 08:55:55
0 0
임철순 (211.XXX.XXX.129)
요즘도 시를 쓰고 계시겠지요? 국화는 문득 저 혼자 피어야 하는 줄 알고는 참았던 향기를 터뜨린다, 이 대목이 특히 인상적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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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09 08:5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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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수 테리 (211.XXX.XXX.129)
임회장님의 칼럼을 일고 무척 울었읍니다. 제가 잘 울지않는데요.
좋은 칼럼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임회장님의 칼럼 항상 공평하시고 배울것이 많읍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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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08 17:5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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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임 (121.XXX.XXX.170)
회장님 김명임입니다. 항상 보내주시는 글 잘 보고 있습니다. 맨날 읽기만 하고 답글도 잘 안달아 죄송합니다. 잘 지내시죠? 연우오프모임 해주세요 ㅋ.회원들 얼굴도 생각 안날려고 해요 ㅎㅎㅎ 존글 계속계속 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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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08 17:23:32
0 0
김윤옥 (210.XXX.XXX.102)
국화

늦가을 햇볕은 아직도 따가운데
국화꽃 한 아름 안고
낯익은 들길을 간다.

세월은 아주 오래전 멈춘 채
투명한 허공에 가만히 채워져 흐르지 못하는데
가을 햇볕은 조금씩 조금씩 해사한 빛으로
그 모든 것 사르고 있다.

황망히 떠났던 그대
변변히 비문 한 귀절 새기지 못한
작고 쓸쓸한 묘비에
국화꽃 한 아름 놓는다.

새삼 슬플 것도 없는
만나고 헤어짐의 이치도 다 깨치지 못한
이승의 이만치서
아주 먼 그대를 생각 한다.

이 쓸쓸한 정적
산새 한 마리 울지 못하는
절벽 같은 무덤가에서
국화는 문득
저 혼자 피어야 하는 줄 알고는
참았던 향기를 터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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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08 15:02:01
0 0
김종완 (211.XXX.XXX.129)
잘 읽었어요. 역시 임논객에게 가장 잘 맞는 소재의 글인 것 같고,
그만큼 감동을 느끼며 정독하듯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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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08 13:21:17
0 0
임철순 (211.XXX.XXX.129)
고교 동창인 기자에게, 이 대목이 오해를 부른 모양인데 그 기자는 제가 아니라 중앙일보 기자입니다. 설마 제가 43세밖에 안 됐을라구요? 글을 분명하게 쓰지 못한 제 잘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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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08 13:19:53
0 0
김영수 (118.XXX.XXX.39)
정말 잘 읽었습니다. 눈물이 흐르네요.
멋진 고교 동문을 두신 주필님이 부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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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08 12:58:54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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