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까치 일본 상륙 5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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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까치 일본 상륙 500년

박시룡

2009년 09월 17일 (목) 00:58:57

한국의 까치가 일본에 상륙한 지 500년이 다 됐지만 지금 일본의 까치는 약 1만여 마리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제주도는 상륙 20여 년 만에 1만 5,000여 마리나 됩니다. 두 곳 모두 까치 스스로 날아간 것이 아니라 사람이 이주시킨 지역입니다.

까치는 우리나라에선 매우 흔한 새이지만, 일본에서는 천연기념물입니다. 까치가 일본의 천연기념물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나도 근래에 알았으니까요. 3년 전 한국의 황새를 취재하기 위해 일본기자들이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교원대 내에 있는 황새장을 둘러보던 한 기자가 갑자기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까치를 보고 소리를 질렀던 것입니다. 일본에서는 까치가 매우 희귀한 새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흔한 까치가 일본에서는 왜 천연기념물일까? 일본의 까치는 사가현(佐賀縣) 남부 사가평야와 후쿠오카현(福岡縣) 중서부의 치쿠고(筑後)평야를 중심으로 약 1만3,000마리 정도 서식하고 있습니다. 그 정도라면 100만 마리쯤 되는 우리나라에 비해 아주 적은 숫자이고, 그것도 한 지역에 서식하고 있기 때문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될 만합니다. 일본은 1924년에 까치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했다고 합니다.

어째서 이 새가 일본에 살게 됐으며 우리나라에는 흔한데 일본에서는 그렇지 않은지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일본의 새를 잘 아는 역사학자에게 여쭈어 보니, 원래 일본에는 까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16세기 임진왜란 때 사가성 성주인 나베시마 나오시게(鍋島直茂)가 일본으로 가져간 이후 번식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몇 마리를 가져갔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때 가져간 까치가 일본에서 서식하는 까치의 조상인 것은 확실합니다. 그런데 왜 일본 전역으로 퍼지지 않았을까? 까치는 번식력이 아주 뛰어난 새인데….

까치가 새로운 장소에서 뛰어난 번식력 적응력을 보여준 예가 바로 우리나라에 있습니다. 지금부터 20년 전인 1989년, 국내 모 항공사와 모 스포츠신문이 주관하여 그 항공사 제주 취항 기념으로 까치 53마리를 제주도로 수송해 방사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제주도에는 까치가 없었으나 지금은 무려 1만5,000여 마리나 됩니다. 그것도 제주 전 지역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가장 큰 피해는 생태계 교란입니다. 까치는 다른 새들의 둥지를 털어 새끼를 잡아먹습니다. 그리고 항공기 조류충돌 사고를 일으키는 주범입니다. 과수원에 피해를 주는 것은 물론 전신주에 둥지를 틀어 전기사고를 자주 일으켜 한전에서 매년 4,000~5,000마리씩 잡는데도 줄어들지 않고 있습니다. 한 조류전문가와 홍보성 이벤트만을 생각하는 기업이 합작해 만든 우리 생태계 교란의 첫 사례입니다.

나는 그때 왜 그것을 지적하지 못했나 하고 매우 후회하고 있습니다. 원래 한 장소에 살던 종(種)이 사라졌을 경우, 이를 되살리는 것을 복원생태학에서는 재도입(혹은 복원)이라고 부릅니다. 그 지역에 원래 없었던 종을 방생하는 것은 이입(移入)이라고 하는데, 이입은 보다 신중해야 합니다. 자칫 생태계 교란을 부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이런 일이 또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한 번 교란된 생태계를 되돌리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우리 땅에 없던 생물을 이입할 때는 이것을 교훈 삼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부터 7년 전, 일본 니가타현(新潟縣)과 홋카이도(北海道)에서 까치가 발견돼 일본 조류학계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어디서 왔을까? 사가현에서 온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거리가 멀기도 하지만 사가현에서 왔다면 그 중간지역에 까치 서식지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도 없는 것으로 미루어 한국과 일본을 오가는 배를 타고 왔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멋 훗날 한국에서처럼 일본에서도 까치가 계속 번식하여 숫자가 늘어날까? 까치가 최근에 나타난 니가타현과 홋카이도에서는 어느 정도 증가가 가능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와 같이 일본에서 까치가 터를 잡을지는 의문입니다. 일본에서는 까마귀가 우점종(優占種)입니다. 일본을 방문한 사람은 누구나 까마귀가 참 많다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일본에서는 까마귀가 농작물에 큰 피해를 주고 전신주 사고를 내거나 쓰레기통을 뒤져 환경 위생에 큰 문제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까치 때문에 피해를 당하듯이 일본은 까마귀에 의한 피해를 입고 있습니다.

까치와 까마귀는 닮은 점이 많습니다. 번식력과 적응력이 뛰어난 점, 조류 중에서 지능이 가장 높은 점, 후각이 아주 발달한 점에서 비슷합니다. 그래서 그 두 종이 경쟁하면 서로 한 치의 양보도 하지 않습니다. 일본에서 까치가 터를 잡으려면 까마귀를 몰아내야 하는데, 후발 주자인 까치가 그것을 해낼 수 있을까? 일본에 까마귀가 있는 한 까치의 이주 정착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벌써 이주역사가 500년 가까운데도 아직 일본 본토를 점령하지 못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