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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초
김덕기 2009년 09월 17일 (목) 01:03:19
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8월 첫 주말, 올 들어 세 번째 벌초를 했습니다. 처서를 전후한 8월 말께 벌초를 하는 게 옳지만, 조상의 묘가 마을 가까이 있어 오가는 이들로부터 게으른 후손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서라도 자주 풀을 깎고 잡초를 뽑아야 합니다. 특히 증조부모 산소는 내 집 바로 곁에 있어 더욱 신경을 써서 관리합니다. 한번쯤은 더 벌초를 해야 올 한해가 갈 것 같습니다.

양손잡이인 나는 글씨는 오른손으로 쓰고 젓가락질과 칼, 낫질 등은 왼손으로 합니다. 낫으로 벌초를 하던 예전에는 워낙 서툰 낫질에다 오른손잡이용 낫을 사용하기 때문에 남들보다 시간이 배나 들어도 깎고 나면 언제나 쥐가 머리를 뜯어 놓은 것 같이 보기 흉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작은아버지들이 깎아 놓은 풀을 갈퀴로 긁어모아 갖다 버리는 일을 주로 했습니다.

요즘은 낫 대신 예초기로 풀을 깎는 데다 잔디 깎는 기계까지 동원되고 보니 나 같이 어설픈 사람들도 하는 일이 많이 늘었습니다. 내 몫이 늘어난 또 다른 이유는 이런 저런 사정으로 작은아버지와 사촌들의 벌초 참여가 예전만 못하기 때문입니다.

부모들이 자녀들의 효도할 날을 기다리지 않고 세월의 흐름에 따라 늙고, 병들고, 돌아가시듯 산소에 난 풀도 가족들이 다 모이기를 기다리지 않고 무성하게 자랍니다. 발목이 빠질 만큼 자란 풀을 그냥 놔두고 볼 수 없어 효심 깊은 서울의 막내 작은아버지와 장손인 내가 풀을 깎을 수밖에 없습니다.

막내 작은아버지와 나는 네 곳에 흩어져 있는 산소를 한 곳으로 모으고, 봉분도 아주 작게 해야 한다는 의견입니다. 아버지의 다섯 형제 가운데 살아 있는 세 분 중 넷째 작은아버지만 유독 “조상의 묘를 함부로 손대면 안 된다”며 반대하고 있습니다.

친척 모두가 한 뜻이 될 때까지 막내 작은아버지와 함께 이리저리 오가며 벌초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누가 한들 어떻습니까. 다 조상을 위한 일인데.

벌초를 할 때면 생전에 효도를 다하지 못한데 대한 깊은 회한에 빠지곤 합니다. 돌아가신 뒤 산소에 풀을 자주 깎는 것보다 살아 계실 때 한번이라도 더 찾아뵈었어야 했는데 라는 생각에 이르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르 흐릅니다.

6,25 전쟁으로 아버지를 여의었지만 장손인 덕분에 조부모님 품에서 귀여움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비교적 여유 있는 지금의 삶도 조부모님이 기반을 마련해 주신 덕분입니다.

할머니는 87세에 돌아가셨고 할아버지는 9년 뒤 아흔넷 되시던 해에 세상을 뜨셨습니다. 결혼을 하고 십년을 모시다가 1983년 서울로 이사한 뒤에는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찾아뵙지 못했습니다.

아내는 매주 한번은 조부모님이 계시는 시골집에 갔지만 나는 두 주에 한 번도 가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근력이 좋으셨던 할아버지가 버스를 타고 백리나 떨어진 내 집을 찾아오실 때가 더 많았습니다.

할아버지는 기력이 쇠진하여 바깥출입이 어려워지자 사람들이 찾아오는 것을 무척이나 반겼습니다. 녹음테이프를 틀어 놓은 것 같이 반복되는 당신의 살아온 이야기를 손님에게 하시는 것을 좋아 하셨습니다.

애지중지 키운 장손과 한 번이라도 더 이야기 하고 싶어 하며 나를 기다렸을 할아버지를 생각하면 목이 메고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는 늘어난 녹음테이프처럼 듣기 어려울 정도로 목소리도 작고 두서가 없어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조차 어려웠습니다.

그 즈음 나를 부르는 손짓이 잦아 졌습니다. 시작도 끝도 없는 불분명한 말씀을 하시더라도 자리를 끝까지 지켜야 했는데 잠시 눈을 감으시면 뒷걸음으로 슬금슬금 도망 나오곤 했습니다.

할아버지 묘에 난 잡초를 뽑을 때면 그 때의 부끄러운 기억이 떠올라 송구함으로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할아버지 그때 무슨 말을 하려고 하셨나요, 지금은 무슨 말을 하실 건가요’ 라며 할아버지 품에 안기기라도 하듯 봉분에 얼굴을 묻어 봅니다. 송장메뚜기 한 마리가 뿌연 시야를 가르며 푸드덕 날아오릅니다.

김덕기
경기도 동두천 출생. 한국경제신문, 스포츠서울에서 체육기자, 부장으로 근무하며 많은 국내외 스포츠행사를 취재했으며, 스포츠투데이 축구전문 대기자, 한국축구연구소 사무총장을 역임. 현재 고향 가까운 양주시 남면 한산리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영농의 재미에 흠뻑 빠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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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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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211.XXX.XXX.56)
할머니가 87세에 돌아가시고 할아버지가 9년 뒤에 돌아가셨으면 96세지요? 94세가 아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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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13 19: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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