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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적인? 병역 거부자
2018년 12월 10일 (월) 00:11:42 박상도

얼마 전 대법원에서 종교적∙양심적 신념에 의해 병역을 회피한 사람들에게 무죄 확정 판결이 내려졌습니다. 하급심에서 종종 무죄 판결이 내려진 적은 있었으나 대법원에서 이렇게 확정 판결된 적은 없었습니다. 대법원의 이러한 판결은, 양심에 따른 이유로 병역을 거부하는 것이 처벌받는 이유는 대체복무제가 없기 때문이라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근거합니다. 이 말은 대체복무제를 만들어서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자는 취지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양심’이라는 말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법률적 관점에서 양심의 뜻을 살펴보기 위해 판결을 한 대법관들의 말을 인용하겠습니다. “어떤 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때, 그렇게 행동하지 않고서는 자신의 인격적 존재 가치가 파멸되고 말 것이라는 강력하고 진지한 마음의 소리로서 절박하고 구체적인 것”이라고 대법관은 양심을 정의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옳고 그름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판단입니다. 대법관들은 법률적 '양심'에 대해, "일상에서 쓰이는 착한 마음이나 올바른 생각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라고 얘기합니다. 따라서 헌법이 보장하는 양심의 자유는 그 양심의 내용이 옳고 그른지 판단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보통 사람들이 일상에서 쓰는 ‘양심’이라는 말과 법률적으로 쓰는 ‘양심’이라는 용어를 구분하면서 이해할까요? 대학원에서 프레임 이론을 공부했고 매일 뉴스를 전달하고 있는 필자도, 사실 이 둘을 일일이 구분하면서 살지 않습니다. 그저 양심이라는 말을 들으면 어질고 선한 이미지가 떠오르고 이를 지키려는 사람은 왠지 보호해줘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따라서 필자는 양심적 병역 거부자라는 말이 만들어진 것 자체에 질문을 던집니다. 이렇게 이름이 붙여짐으로 인해 사실 종교적 이유로 병역을 기피한 사람들이 면죄부를 얻게 되는 단초가 마련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1970년대 미국에서는 기이한 소문이 돌았습니다. 맥도날드 패티를 지렁이로 만든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연히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무게당 단가가 지렁이가 소고기보다 비싸기 때문입니다. 맥도날드는 즉각 반박 성명을 냈습니다. ‘Our hamburger meat does not contain earthworms(우리 햄버거 패티에는 지렁이가 들어 있지 않습니다)’라고 매장에 써 붙인 겁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맥도날드를 사먹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맥도날드가 ‘지렁이’라는 언어의 틀에 갇혔기 때문입니다. “우리 햄버거에는 지렁이가 없다니까요!”라고 말하는 순간 사람들은 지렁이를 떠올립니다. 맥도날드는 이 위기를 다른 방법으로 타개합니다. 바로 사람들에게 지렁이 패티를 잊게 하기 위해 감자튀김과 밀크 쉐이크를 공격적으로 마케팅 한 겁니다.

어떤 사안에 대해 인간이 합리적으로 인식을 할까요? 프레임 이론의 대가인 ‘인지언어학’의 창시자 조지 레이코프는 그렇지 않다고 단정합니다. 인간의 사고가 의식적이라는 가정은 틀렸다고 그는 주장합니다. 98%는 무의식적이라는 것입니다. 이성적으로 판단하면 맥도날드가 그램당 단가가 더 높은 지렁이를 햄버거 패티에 사용할 리가 없습니다. 그리고 사람들도 그 사실을 압니다. 하지만 왠지 먹기 싫은 겁니다. 그래서 맥도날드는 지렁이라는 말을 사람들 머리 속에서 빨리 없애는 방법으로 ‘지렁이=맥도날드 햄버거 패티’의 고리를 끊어 내는 밥법을 택한 겁니다.

언어에는 힘이 있습니다. 2000년도 미국 대선에서 조지 W 부시가 내건 공약 중 ‘세금구제(tax relief)’라는 말이 있습니다. 부시는 그전에 써왔던 `세금 감면(tax cutting)`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고 `세금 구제(tax relief)`라고 감세 정책을 표현한 겁니다. 그 당시 프레임 이론에 낯선 민주당은 감세를 비판하면서도 긍정적 의미를 지니는 `구제(relief)`라는 용어를 그대로 따라 썼는데, 결국 프레임 전쟁에서 부시 전 대통령이 승리해 감세 정책이 의회에서 통과된 것은 꽤 유명한 예입니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프레임 이론을 알게 되면서 우리나라도 비슷한 경우가 많이 생기고 있습니다. ‘청년배당’은 말 그대로 청년들에게 돈을 주는 겁니다. 지자체가 일정 기간 그 지역에서 살고 있는 특정 나이의 청년들에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돈을 주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에 ‘배당’이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배당은 말의 뜻에 ‘권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주주들에게 이익을 배당하는 것처럼 청년들은 당연하게 지자체에서 돈을 받을 권리가 부여된 것처럼 생각이 들게 만드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 결과 청년배당에 드는 돈이 어디서 나오는 지에 대해 살피기 보다는 이 사업이 정치인의 치적으로 포장되어 버렸습니다. ‘청년배당’이라는 말은 만든 사람 입장에서 볼 때는 참 잘 만든 용어인 겁니다.

양심적 병역 거부라는 말 역시 병역 거부자의 입장에서는 매우 잘 만든 용어입니다. 관련 뉴스가 나올 때마다 그들은 프레임 전쟁에서 매우 유리한 고지를 점령한 채, 시간이 지나면 이길 수밖에 없는 싸움을 한 것입니다. 만약에 ‘종교적 병역 기피자’, 또는 ‘반사회적 병역 거부자’라는 표현을 썼다면, 이들의 무죄 판결은 쉽지 않았거나 지금보다는 더 시간이 걸렸을 겁니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말은 아직도 유효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이 말 한 마다가 단지 돈을 버는 방법이 아닌 세상을 움직이는 기묘한 술수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교언영색(巧言令色)을 경계한 선조들의 뜻을 다시 새겨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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