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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 코드, 국민 코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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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시내 창광거리의 고려호텔 지하에 술과 음료를 파는 조그마한 바가 하나 있었습니다. 며칠 묵는 동안 우리는 무료한 저녁시간을 보낼 겸 거의 매일 그곳에 내려가곤 했습니다. 바의 여종업원은 20대 중반에 얼굴과 눈이 동그란, 북쪽에서 말하는 미인형이었습니다. 그녀와 얘기하면서 오래전에 본 영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에 출연했던 최은희씨 말투와 똑 같다고 느꼈습니다. 말은 학문이기 전에 생활이요 습관입니다. 시속이 변하듯 말도 때와 곳에 따라 달라지게 마련입니다. 그러니 언어학자들이 기준을 잡는데 갈팡질팡할 수밖에 없겠다 싶기도 합니다. 예전 소녀들은 가까이 있는 친구를 “얘”, 멀리 있는 친구를 “쟤”하고 불렀습니다. 요즘 여학생들은 곁에 있는 친구를 “야!”하고 부릅니다. “얘”는 손에 잡힌 물건을, “쟤”는 조금 떨어져 있는 물건을 부를 때 쓰는 호칭이 돼버렸습니다. 그런 걸 보면 변한 건 그쪽이 아니라 이쪽이로구나, 새삼 느끼게 됩니다. 어느 날 버스 뒷자리에 젊은 남녀 둘이 나란히 앉아 얘기하고 있었습니다. 여자의 말은 얼마나 빠른지 알아듣기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건 문장 한 구절마다 ‘졸라’라는 야릇한 부사가 어김없이 한 번 이상씩 들어간다는 것이었습니다. 남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과연 그들이 그 말의 어원이나 뜻을 제대로 알고나 쓰는 걸까요. 노무현 대통령 당선 직후 어느 개그맨이 당선자가 즐겨 쓰던 말투 ‘맞습니다. 맞고요’를 흉내내 한동안 유행어가 됐습니다. ‘맞다’는 특히 부산 경남 지방에서 즐겨 쓰는 말투입니다. (1) “니(너), 아래(그제) 세야(형, 성) 하고 깨구리(개구리) 잡으러 수원지 갔었재(갔었지)?” “그래 맞다. 니(네)가 우예(어떻게) 아노(아느냐)?” (2) “야, 내일 공일(공휴일)인데 우리 해운대라도 가야 안 되겠나?” “맞다. 거서(거기서) 단합대회도 하고 재밌게 노는 기라(것이라).” 대략 쓰임새가 이러합니다. (2)번의 경우엔 ‘옳다’는 표현이 더 적절한데도 어김없이 ‘맞다’는 표현을 씁니다. 이런 경우 ‘맞다’의 의미를 국어사전에선 ‘틀리거나 어긋남이 없이 일치하다’로 풀이하고 있습니다. 반대말은 ‘틀리다’ 또는 ‘어긋나다’입니다. ‘맞다’의 사고방식으로는 정(正)과 부정(不正)이 있을 뿐입니다. 세모꼴의 요지부동, 타협이 없는 사고에 어울리는 말입니다. 그에 비해 ‘옳다’는 ‘사리에 맞아서 정당하다’는 말입니다. 반대말은 ‘그르다’입니다. ‘맞습니다맞고요’가 청와대 홈페이지 한글주소로 등록돼 있다는 걸 알고서 또 한 번 놀랐습니다. 노 대통령의 말투로 비롯된 건 아니겠지만 최근 정치에도 사회에도 언론에도 ‘맞다, 틀리다’만 있을 뿐 “옳다, 그르다”는 표현이나 사고는 없는 듯합니다. ‘코드’와 ‘로드맵’은 현 정부가 히트시킨 대표적 단어가 아닐까 싶습니다. 코드는 사고뿐만 아니라 표현방식도 지배합니다. 그러니 상이한 코드를 고집하는 자들이 마주치면 외계인 만나듯 서로를 오해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김영삼 대통령이 문민정치를 한다고 활갯짓하던 무렵 웃어넘겼던 개그 한토막이 생각납니다. 만약 대통령의 코드와 국민의 코드가 서로 다르다면… 하는 생각에 지금은 섬뜩한 기분마저 듭니다. “YS가 부대를 이끌고 가던 중 적을 만났다. YS는 ‘마카(모두) 수그리(수그려)!’하고 외쳤다. 많은 부대원들이 그 말뜻을 몰라 그냥 서 있다가 적탄에 맞아죽었다. 또 다시 적이 나타났다. YS는 ‘아까 맨치로(처럼)’하고 외쳤다. 그러나 이번에도 많은 부대원들이 그 말뜻을 알아듣지 못해 적탄에 맞아죽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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