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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 그의 삶은 허업이었나
2018년 06월 26일 (화) 00:22:14 임철순

“나는 이제 생로병(生老病)은 다 거쳤고 사(死)만 남은 사람”이라던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27일 충남 부여의 부인 묘에 합장됩니다. 지난 23일 92세로 타계한 그는 우리나라 정치 지도자로서는 보기 드물게 ‘준비된 죽음’을 거쳐 이승을 떠났습니다.

1961년 5·16 군사쿠데타 이후 그는 언제나 ‘현재의 인물’이었고, ‘풍운아’라는 말에 부합하는 격동의 삶을 살았습니다. JP라는 영문 이니셜로 호칭된 것도 그가 처음입니다. 그 뒤 DJ YS MB 등 정치인의 호칭이 많이 쓰였지만, 쿠데타 후 첫 중앙정보부장을 맡았던 그의 이니셜에는 일정한 은밀성 익명성에다 군에 대한 외포(畏怖)의 정서가 가미됐던 걸로 기억됩니다. 

그는 3년 전 부인 박영옥 여사와 사별했을 때 이미 써 놓은 묘비명을 통해 삶을 정리했습니다. “思無邪(사무사)를 인생의 도리로 삼고 한평생 어기지 않았으며 無恒産而無恒心(무항산이무항심)을 治國(치국)의 근본으로 삼아 國利民福(국리민복)과 國泰民安(국태민안)을 구현하기 위하여 獻身盡力(헌신진력)하였거늘 晩年(만년)에 이르러 年九十而知 八十九非(연구십이지 팔십구비)라고 嘆(탄)하며 數多(수다)한 물음에는 笑而不答(소이부답)하던 자”, 이게 그 자신이 정리한 JP의 모습입니다.

이 묘비명에는 논어, 맹자, 전국책과 회남자, 이백의 시 등 동양의 고전이 두루 등장합니다. 고전과 문예에 밝고 유머와 여유를 중시했던 사람다운 글입니다. 그 내용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이 정도의 글을 남길 만한 학식과 교양을 갖춘 사람도 이제는 보기 어렵습니다.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年九十而知 八十九非, 아흔이 되어 지난 여든아홉의 삶이 잘못임을 깨달았다는 말입니다. 아마도 ‘회남자(淮南子)’ 원도훈(原道訓)의 ‘遽伯玉年五十 而知四十九年非(거백옥연오십 이지사십구년비)’, “거백옥(위나라의 대부)은 나이 50이 되어서야 49년간의 잘못을 깨달았다”는 말에서 따온 것으로 보입니다. 줄여서 五十歲知非(오십세지비)'라고 하는 말입니다. 거백옥은 공자가 “군자로다. 거백옥이여. 나라에 도가 있으면 벼슬하고, 나라에 도가 없으면 거두어 감추었으니[君子哉 蘧伯玉 邦有道則仕 邦無道則可卷而懷之]”라고 칭찬했던 인물입니다(논어 위령공편).

‘전국책(戰國策)’의 진책(秦策)에 나오는 行百里者半於九十(행백리자반어구십), “백리를 가는 사람은 구십리를 가고서야 절반쯤 왔다고 여긴다”는 말과도 관련이 있어 보입니다. 다만 회남자의 말과는 강조점과 뉘앙스가 사뭇 다릅니다.  

JP의 말은 도연명 '귀거래사(歸去來辭)'의 한 대목에도 맥이 닿아 있습니다. “實迷塗其未遠 覺今是而昨非”, “실로 길을 잘못 들었으나 멀리 간 것은 아니니 이제야 지금의 생각이 맞고 어제까지는 잘못이었음을 깨달았다”는 말입니다. 벼슬을 버리고 전원으로 돌아간 도연명처럼 새로운 삶을 기약하는 상황은 아니지만 昨非(작비)에 대한 깨달음은 같아 보입니다.  

JP의 묘비명은 명나라 말기의 문인이자 서화가 진계유(陳繼儒)의 ‘연후(然後)’라는 시도 생각하게 합니다. “省事然後知平日之費閑 閉戶然後知平日之交濫 寡欲然後知平日之病多”, 일을 줄이고 보니 공연히 바빴음을 알았고, 문을 닫아건 뒤에야 사귐이 지나쳤음을 알았고, 욕심을 줄인 뒤에야 잘못이 많았음을 알았다는 내용입니다(부분 인용).

그러나 JP가 이런 말을 통해 자신의 삶과 일을 온통 부정하고 무의미하다고 평가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그 다음에 나오는 笑而不答(소이부답), 웃으면서 대답하지 않는다는 말을 통해 삶과 일에 의미와 정당성을 강하게 부여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는 전쟁으로 파괴된 나라를 산업화와 근대화로 이끈 혜안을 지닌 정치인이며 최초의 정권교체를 주도함으로써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반면 군사 쿠데타로 민주화를 저해하고 독재체제를 공고히 했으며, 3당 합당이라는 ‘야합’으로 정당정치를 후퇴시키고 지역감정을 조장한 ‘처세의 달인’이라는 평가도 받아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소 그가 보여준 여백의 미와 타협, 관용의 정신, 문화인으로서의 흥과 멋을 높이 평가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내각제를 무기로 정권 창출과 권력을 지향했다는 비판과 함께, 서로 작은 차이를 극복하고 큰 목표를 향해 힘을 합치는 타협의 정치인이었다는 찬사가 공존합니다. 그만한 크기와 품을 갖춘 인물은 다시 보기 어려울 것입니다.  

한동안 JP와 함께 일했던 분은 “벼슬도 미련도 가볍게 버리고 당신은 조각구름처럼 되돌아갔으니 텅 빈 뜨락에 오랫동안 공허만 가득하겠구나.”라고 애도했습니다. 그의 아호 雲庭(운정)의 의미를 담아서 쓴 글입니다.  

그는 “정치는 허업(虛業)”이라고 했지만 그의 삶이 허업인 것은 결코 아닙니다. 앞서 인용한 ‘회남자’의 그 다음 부분에는 “앞에 하는 사람은 깨닫기가 어렵지만[先者難爲知] 뒤에 하는 사람은 분간하기 쉽기 때문[而後者易爲攻]”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번역이 좀 어렵긴 한데, 앞에 가는 사람은 뒷사람의 과녁이 된다는 취지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후에도 그는 여러 각도의 과녁이 될 것입니다. “그분의 명복을 빌면서도 현대사의 짙은 그늘과도 작별하고자 하는 마음”이라는 한 정치인의 조문 인사가 인상적입니다. 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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