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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막힌 눈과 귀
2018년 06월 27일 (수) 00:29:15 선년규

“우리 발목을 잡는 과오가 있고 그릇된 관행이 우리의 눈과 귀를 가렸는데, 모든 것을 이겨내고 이 자리에 왔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기억할, 지난 6월 12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한 모두발언입니다. 

누가 한 번 뱉은 말을 놓고 해석이 분분할 때가 많습니다. 세계적 관심사인 이번 회담 역시 예외가 아닙니다. 우선 김 위원장이 발언한 ‘과오’ ‘관행’이 북한 강경파의 노선을 지적하는 반성의 의미를 담았다는 해석이 있습니다. 반면 ‘우리’가 북한 내부가 아닌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을 지칭함으로써 북·미 사이의 높다란 오해의 담장을 에둘러 표현했다고 분석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하여튼 트럼프 대통령은 이 말을 통역으로 전해 듣고 엄지를 ‘척’ 치켜세웠습니다. 이어 손을 내밀어 김 위원장과 악수하면서 격한 공감을 표했습니다. 

김 위원장의 취지는 무엇이었을까요? 대화 당사자인 트럼프 대통령은 어떻게 이해했길래 정상회담에 걸맞지 않은 제스처까지 취했을까요? 우리끼리 논의해봐야 국민 모두가 정치‘썰’에 일가견이 있는 현실에서 결론은 결코 나지 않을 겁니다. 당시 두 사람이 만난 것에 더 큰 의미가 있기에 이 부분은 이 정도로 접어두고자 합니다. 

이번 회담을 계기로 김 위원장을 다시 보았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폐쇄 국가에서 세계의 이목을 받으며 단번에 국제무대에 데뷔한 셈이니 그럴 만도 합니다. 34세에 배짱이 만만치 않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저 역시 김 위원장에 대한 평가를 예전 수준보다 한 단계 높였는데, 순전히 ‘관행이 눈과 귀를 가렸다’라는 표현 때문입니다. 이 말을 들으면서 우선 불통·고집·고립·편견·소외라는 단어가 슬그머니 꼬리를 물고 떠올랐습니다. 동굴·어둠이라는 고전적·문학적 표현을 연상하는 이도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인간의 속성’을 들여다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면 비단 김 위원장만 눈과 귀가 막히고 가려졌다고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이번 회담의 또 다른 주인공 트럼프 대통령도 마찬가지라는 점에서 젊은 김 위원장의 외교적 발언은 상당히 성공적이었다고 봅니다.  
 
그들뿐일까요? 얼마 전 치른 6·13 지방선거에서도 그런 인물이 있습니다.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는 선거 전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어떤 식으로 평가했던가요? 본인 생각과 다른 것은 무조건 잘못되고 조작됐다며 스스로 성벽을 쌓는 극단적인 성향까지 보였습니다. 감탄고토(甘呑苦吐)로 동조하는 당직자들의 집단심리도 홍 전 대표 이목(耳目)의 올바른 작동을 방해하는 데 한몫 보탰을 거구요. 홍 전 대표의 집회 현장마다 나타나 태극기와 미국 국기를 마구 흔들어댄 극성 팬(?)들은 외부 민심 파악을 가로막는 차단막 역할을 했을 터입니다. 

‘갑질’의 대명사가 된 한진그룹 일가도 눈과 귀를 가린 대표 주자입니다. 조현아·현민 자매는 어려서부터 ‘돈’의 보호막 아래 소통하고 배려하는 것을 아예 배우지 못했을 수 있습니다. 사회는 남과 함께 사는 곳이라는 인식을 배양할 기회조차 없었을지 모릅니다. 그들의 어머니 행태를 보면 조양호·이명희 부부에게 고용된 어느 누구도 감히 이들 자매에게 “그것은 잘못된 행동”이라는 지적을 했을 리 없다고 유추할 수 있습니다. 조현아·현민 자매에겐 그렇게 그들만의 신분·계급의식이 굳어져 ‘관행’이 됐을 테고, 주변의 입은 철옹성처럼 굳게 닫혔을 겁니다. 

그렇다고 저라고 해서 그리 깔끔하지 않습니다. 정도의 차이만 있겠지요. 저 역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불편한 것은 외면하고 있습니다. 귀를 즐겁게 하는 것만 들었고 듣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그렇게 살겠죠. 이미 너저분해진 의식이 제 몸을 지배하는 한, 순수를 갈망한다고 바뀌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육체와 인식·마음은 그래서 비가역적이라고 합니다.

인지상정이라구요? 원래 인간이 그런 속성이라지만, 엄이도령(掩耳盜鈴)이라는 말이 있듯이 본인이 안 보고 안 듣는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함께 어울려 살아가려면 눈과 귀가 가려져 있었다는 점을 인정해야 북·미든, 인간관계든 올바른 관계로 시작할 수 있을 겁니다.

                                                                                                          

 
 
 

 

선년규

한국일보 기자로 사회생활 시작. 2000년 인터넷 매체 창간에 합류해 기자 생활을 더 한 뒤 미국으로 가 보스턴에서 8년을 지냄. 2013년 귀국 후 석간경제지 이투데이를 거쳐 지금은 온라인 뉴스사이트 아이뉴스24에서 정책·산업부문 에디터로 일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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