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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가 진보다워야…
2018년 07월 03일 (화) 00:08:58 이성낙

돌이켜보면 1950년대 중후반 우리나라는 전쟁의 상처에서 회복하지 못한 채, 경제적으로는 참으로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사회 분위기도 크게 어수선하였습니다. 남북 대립이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고등학교 학생들은 군사훈련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중고등학교 남학생들은 두발(頭髮)을 ‘까까머리’로 삭발해야 했고, 교복 상의 주머니 위쪽에는 예외 없이 이름표를 붙였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영화관에는 대개 ‘학생출입불가’ 푯말이 붙어 있었습니다.

그런 엄혹한 상황에서도 필자가 다닌 고등학교는 두발을 비롯해 이름표 달기, 극장 출입 등을 비교적 학생 자율에 맡겼습니다. 머리는 너무 길지 않은 선에서 각자의 취향에 따라 관리하도록 했으며 학생지도의 편의라는 미명하에 달아야 했던 이름표는 학생을 예비 범죄자 취급하는 것이라며 달지 말도록 했습니다. 게다가 영화가 문화예술의 한 장르라면, 금지할 이유가 없다며 자유롭게 영화예술을 즐기도록 허용했습니다. 이 모든 자유가 교장선생님의 철학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당시의 국내 사회상에 비추어볼 때 교장선생님의 방침이 참으로 엄청난 ‘발상의 전환’이었음을 인지하면서 훗날, 우리는 ‘진보교육’을 몸으로 터득한 것임을 차츰 알게 되었습니다.

시대를 앞서간 진보교육의 표상이었던 교장선생님의 존함, 서원출(徐元出, 1900~1966)이 많은 사람의 마음에 깊이 새겨진 이유이기도 합니다.

한국전쟁의 그늘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닌 필자는 진보사상이 무엇인지 모른 채 학창시절을 보냈습니다. 사회에 ‘보수사상’만이 득세하던 시절이니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필자는 유럽, 특히 분단된 나라 서독에서 젊은 시절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당시 서독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공산주의를 표방하는 정당을 법으로 금지했습니다. 그러나 각종 언론 매체에서는 공산주의를 비롯해 다양한 사상을 자유롭게 논의했는데, 그런 분위기가 낯설어 초창기에는 많이 불편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 무렵 서독의 이웃 나라 프랑스나 이탈리아에서 ‘공산당’이 특정 이슈에 대해 아주 다른 정책적 의견을 발표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곤 했습니다. 그런 소식을 접하면서 필자는 이따금 그들의 주장에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결코 경험하지 못한 작은 깨우침을 얻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진보와 보수가 공존하고 서로 견제함으로써 사회를 긍정적으로 이끌어간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때부터 필자의 뇌리에는 좌파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이나 집단은 외롭게 자신의 주장을 외치면서도 ‘할 말’은 다하는 부류로 각인되었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론 타협 정신이 부족한 단점이 있으나 용기 있고 상대적으로 ‘정직한 사람들’이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필자는 국내 진보세력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을 유지해왔습니다. 가령 대학생 신분으로 산업 현장에 ‘위장 취업’해 노동운동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나도 모르게 ‘연민’을 느끼곤 했습니다.

아울러 이처럼 진보사상을 주창하는 그룹이 건재하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긍정적으로 발전하는 증거라는 생각도 하였습니다.

문재인 정부 들어 국회의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몇 번인가 ‘부적합한 인물이다’라는 의견이 나온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정의당에서도 부정적 기류가 있다”는 보도가 나오면 영락없이 후보자가 낙방하곤 했습니다. 이런 상황을 보면서 필자는 진보세력의 존재감과 저력을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좌파 ‘감시자’의 긍정적 역할을 보았던 것입니다.

지난 인사청문회에서 가장 뜨거운 논쟁을 일으킨 당사자는 아마도 ‘교육부 장관 겸 사회부총리’에 지명된 김상곤 후보였을 것입니다. 잘 알려졌다시피 후보자가 박사학위 논문을 표절(剽竊)했다는 논란 때문이었습니다.

표절(Plagiat)은 다른 사람의 정신적 재산(Geistiges Eigentum)을 도적(盜賊)질하는 것이라 중하게 여기며, ‘남의 것을 포악스럽게 빼앗은 행위’를 뜻합니다. “표절의 표(剽)는 훔치는 표 자이고, 표절의 절(竊)은 도적질하다의 절 자이다. ...곧 훔치고 도적질하는 일이다.”(송복, 2018.1.25.)라는 지적은 무척이나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박사학위 논문을 표절한 사람이 다른 곳도 아닌 교육 문제를 담당하는 부서의 수장이 된다는 사실이 필자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했습니다. 그러나 실망스럽게도, 정권 차원에서 임명 절차를 강행하고 말았습니다.

이와 관련해 우리 사회는 헝가리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2012년 슈미트(Pal Schmitt) 헝가리 대통령은 박사학위 논문 표절 사건이 불거지자 즉시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헝가리의 도덕적 잣대와 우리의 기준이 이처럼 다른 현실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정작 필자를 한없는 실망의 늪으로 몰아붙인 것은 진보세력의 무거운 침묵이었습니다. 그들은 심지어 정부의 임명 절차를 정당화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들 역시 ‘내 편, 네 편’ 하며 ‘편 가르기’라는 모순적인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입니다.

즉, 진보는 특정 집단의 이익보다는 사회 정의를 우선시하기에 그만큼 고도의 도덕성이 요구되는데도 말입니다.

이런 현실을 생각하니 “학생은 자기 몸가짐을 책임져야 하며, 문화예술을 소화해내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라며 제자들에게 올곧은 진보정신을 깨우치던 큰어른이 더욱더 그리워지는 오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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