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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영어' 하지 말았으면
신아연 2009년 10월 13일 (화) 01:01:44
우리 칼럼 필자들이 이미 여러 번 다뤘지만 오늘은 저도 비슷한 주제로 글을 써볼까 합니다. 유치원 때부터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서 자다가도 눈이 확 떠지는 ‘영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기능적 관점에서 본다면 일상 중의 언어는 의사소통 수단입니다. 영어도 그 중의 하나이되 우리말과 좀 다른 점이 있다면 여러 나라 사람들이 할 줄 아는지라 어디를 가도 ‘ 잘 통한다’는 것입니다.

저희 가족과 절친하게 지내는 친구 중에 말레이시아 사람들이 있습니다. 만나면 그들의 중국말, 우리의 한국말로는 서로 통할 수가 없으니 영어로 이야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쩌다 부부끼리 각각 자기네 말로 소곤댈라치면 금방 분위기가 어색해지다가 서로 미안한 맘에 얼른 영어로 돌아오면 곧바로 다시 화기애애 왁자하니 떠듭니다. 엊그제는 노래방을 함께 갔습니다. 한국 노래, 중국 노래를 돌아가며 부를 때는 피차간에 멀뚱히 있다가도 팝송을 선곡하면 모두 따라 부를 수 있어 흥이 났습니다.

보시다시피 영어가 뭐 별겁니까, 일차적으로 의사소통 수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지 않습니까. 지난 달, 발리 여행을 갔을 때도 새삼 같은 경험을 했습니다. 관광지가 아닌 현지 마을을 돌아보는데 인도네시아어를 전혀 모르는 저는 “이게 뭔가요?” “ 얼마인가요?” 라는 간단한 말도 할 수 없어서 ‘여기 누구 영어할 줄 아는 사람 없나’ 하는 생각이 절로 났습니다.

살면서 만나는 영어란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겐 영어가 왜 그리 어렵게 느껴지는 것일까요. 뭣 때문에 무슨 괴물이라도 되는 듯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으로 다가오는 걸까요. 손짓발짓 섞어 겨우 말이나 하는 정도가 아니라 고급 표현을 유창하게 할 수 있는 단계를 목표로 하려니 그렇다고 하겠지만, 누구나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꼭 있을까요? 목표를 그렇게 높게 잡으니 첫 걸음부터 질리는 것은 아닐까요. 모국어인 우리 말도 세련되게 하기가 어려운 마당에 말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언어 습득력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어느 나라 말이든 익히기만 하면 기본적인 수준은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마치 피아노를 ‘배우고’, 재봉질을 ‘익히고’, 수영 ‘연습’을 하고, 요리를 ‘실습’하는 것처럼 언어도 익숙하게 될 때까지 ‘훈련’을 하면 됩니다. 물론 남보다 피아노를 더 잘치고, 요리나 바느질 감각이 더 뛰어나고, 수영을 더 잘 하는 사람이 있지만 우리 모두가 피아니스트나 수영선수, 전문 요리사가 될 필요는 없듯이, 영어도 어느 정도까지만 하면 ‘그럭저럭 꾸역꾸역’ 살아집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에게 영어는 의사소통의 수단이 아니라는 데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 사람끼리 살아가는 데 영어가 필요치는 않으니까요. 그러다 보니 우리 나라 사람들은 영어를 ‘공부’합니다. 마치 고등 수학을 풀고, 법률 지식이나 의학 등 전문 기술을 획득하기 위해 죽기살기로 공부를 하듯이 ‘영어 공부’를 하기 때문에 ‘공부를 잘 못하는 사람들, 소위 공부에 소질이 없는 사람들’은 지레 좌절하게 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공부가 그러하듯이 일껏 ‘영어 공부’를 해봐야 일상 중에 별로 쓸 일도 없고, 그저 영어를 위한 영어에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공부는 뭐든지 재미없지 않습니까. 그리고 공부는 사실 아무나 하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공부로서의 영어는 영어학자들이나 자기 전문 분야에서 필요한 사람들의 몫으로 남겨두고 보통 사람들은 그저 영어를 ‘배우면’ 좋겠습니다.

뜻도 출처도 알 수 없는 무분별한 영어 범람을 걱정하는 목소리에, ‘무슨 소리, 국제화 시대에 응당 그래야 하고 말고’라는 엉뚱한 대응에 이르기까지, 온 나라가 영어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여기에 저까지 어쭙잖게 끼어들어 말마디를 보태는 것 같아 송구하지만 우리 모두는 그만하면 영어를 잘 하는 편입니다. 잘 하는데도 자꾸 못한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문제이고, 영어가 필요없는 곳에까지 영어를 끌어오고 한술 더 떠 이상한 조어를 만들어내는 강박증이 장애일 뿐입니다.

너무 ‘영어, 영어’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영어를 잘 하면 정말 좋겠지만, 아니 영어를 잘 하기 위해서라도 영어를 무슨 대단한 실체로 생각하지는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럴수록 상대는 공포스러운 괴물로 다가올 테니까요.

   




신 아연 :ayounshin@hotmail.com
신 아연은 1963년 대구에서 태어나 이화여자대학교 철학과를 나왔다.
16년째 호주에 살면서 <호주 동아일보> 기자를 거쳐 지금은 한국의 신문, 잡지, 인터넷 사이트, 방송 등에 호주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저서로는 이민 생활 칼럼집 <심심한 천국 재밌는 지옥> 과 <아버지는 판사 아들은 주방보조>, 공저 <자식으로 산다는 것>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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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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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티로 (212.XXX.XXX.116)
공감가는 글 잘 읽었습니다. ^^
저는 독일에서 유학중인데, 학생 기숙사에 살고 있어 여러 외국인들이 섞여 영어로 대화할 기회를 가끔 가지게 되는데, 종종 느끼는 것이, 한국 학생들 한국 어디서 무엇을 공부했건간에 영어로 하는 일상대화는 세계 다른 나라 학생들에 비해서도 뒤쳐지지 않는다는 인상을 늘 받습니다. 그러면서도 '미안하지만 난 영어 잘 못해' 이런 말들을 상대방과 대화중에 양념간장으로 치는 걸 잊지 않아요. 그런것 보면 지난날 한국에서 영어 '공부'때문에 받은 스트레스, 열등감 이런 것들이 몸에 베여 있구나 느끼게 돼요. 그러고 시간이 지나면서 여기 한국학생들이 영어를 위해 영어를 말하는 게 아니라 의사소통을 위해 자꾸 쓰면서 그런 자의식도 잊게 되는 거 보면 기분 좋구요... 신아연 선배님 말씀대로 영어를 공부로 전공하는 게 아니면 소통과 이해를 위한 도구로 자연스럽게 영어를 배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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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18 23: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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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훈 (220.XXX.XXX.226)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녀들에게 영어를 잘하게 하고 싶은 부모의 마음은 끝이 없는 것 같습니다. 짧은 영어로 외국인과 소통하려니 불편한게 만크든요. 그나마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은 덜하지만 소통이 어려운 분들은 더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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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13 22:4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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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천 (112.XXX.XXX.244)
어쨌던 세계 공통어 이기에
가벼운 대화 정도의 영어는 할 줄 알았음 좋겠습니다~
몇년전 스위스 여행중 친해진 가이드와 메일교환을 하는데 영어실력이 짧아 타인을 통해 영역,번역을 의뢰해서 해결하며 2년을 끌어 왔는데 요즘 자꾸 교환 기간이 길어집니다
이를 악물고 실력을 쌓을려고 하는데도 쉬이 늘지 않아 거의 포기했는데 다시 한번 도전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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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13 11:0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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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us (121.XXX.XXX.54)
영어든 무엇이든 잘 하는 거야 나쁠 것은 없다싶습니다. 다만 태도 문제라 봅니다. 저 아는 분은 지금 그 나이에도 영어 원서만 읽습니다. 그게 편하답니다. 그래도 만나서 대화할 때 영어 단어 하나 안씁니다.잘 난체를 하면서 씨부랑 거리지는 않습니다. 외교관이야 외국어를 못하면 안되죠. 근데 일반 평민들이 왜 외국어를 밥먹듯이 잘해야 하는지 이유가 없습니다. 자기 나라 말이라도 잘 해야 될텐데 걱정입니다. 또 말만 잘 하면 뭐 해요. 그 알량한 언변이 무슨 열량이 있다고. 컨텐츠가 아니라 '내용'이 있어야죠. 말에 담긴 씨앗이 좋아야죠. 그저 겉이 뻔지르 한것만 좋아하고. 이렇게 말하면 구새대라 하겠지만 그건 그대의 잘못된 생각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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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13 08:3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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