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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 서현아!
최병상 2009년 11월 13일 (금) 00:51:35
"하버지~ 나, 하버지꺼야!"
몇 번이나 되풀이하며 할아버지 손을 꼭 잡고 행복하게 잠든 너를 아빠 집에 몰래 뉘어놓고 나오면서 할아버지 가슴은 찢어질 것 같았단다.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떼어 놓아야만 하는 할아버지 마음을 알겠니?

바보야! 할아버지하고 같이 살고 싶으면 할머니랑 삼촌하고도 어울려야지, 할아버지한테만 매달리며 "하~버지만 좋아! 나, 하버지꺼~" 수시로, 공개적으로 고백하면 어떡하라고 그러니, 이 바보야! "하~버지! 나, 하버지꺼~ 하버지만 좋아!" 를 연발하고 있으니 같이 간 할머닌 얼마나 서운했겠니? 할머니와 삼촌은 그렇다 해도 ‘엄마, 아빠 것’도 아니고 ‘하버지 것’이라고만 하니 어떻게 너를 데리고 있겠니? 사람들은 누구나 애들은 엄마 아빠 밑에서 자라야 한다고 하는데, 넌 속도 모르고 할아버지만 따르지.

곤히 잠든 너를 뉘어놓고 도망치듯 빠져나오니 눈물이 고여 운전을 제대로 할 수 없고, 신 도청 소재지의 현란한 네온도 영롱한 별빛도 뿌옇구나. 네가 있었음 차창 밖을 보며 "우와~ 교회 있다! 교회 크~다!" 연신 외쳤을 네온사인 십자가가 여기저기 솟아올라 보고 싶은 네 얼굴과 겹치는구나. 넌 병원에 붙은 십자가를 봐도 "교회 있다!"고 외쳤지?

서현아!
넌 사랑하니까 헤어져야 한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할 거야. 할아버지가 옆에 있어 안심하고 잠든 너를 떼어놓고 올 수 밖에 없었던 건 너를 정말 사랑하기 때문이니 야속하다고 하지 말아줘. 몇 번이나 네 볼을 부비고 자꾸 뒤돌아보며 떠나온 할아버지 마음을 알겠니?

서현아!
할아버진 스물여섯 살 때 처음으로 사랑을 했단다. 너 말고 누구를 사랑했느냐고? 기관장인 아빠 밑에서 고생 모르고 자란 여고 졸업반 단발머리! 지금 같이 사는 할머니냐고? 아니.
왜 헤어졌냐고? 사랑했으니까~ 넌 아직 이해하지 못할 거야. 3년하고 5개월 자란 네가 사랑하니까 헤어졌다는 말을 이해하겠니?

그 아가씨도 네가 할아버질 좋아하는 만큼 할아버질 사랑했고 할아버지도 너를 사랑하는 만큼 열렬히 사랑했단다. 아카시아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던 5월에 시작된 뜨거운 사랑이 9월에 끝나고 말았지. 이제와 생각하면 할아버지가 너무 순진했던 거 같아. 우리 집보다 훨씬 조건이 좋고 부자인 사람을 만나야 행복할 거라며, 알량한 사랑의 아량(?)을 발휘했으니까.

그동안 주고받은 무수한 편지를 돌려주고 10킬로미터가 넘는 밤길을 터벅터벅 걸어서 집으로 온 후, 그 아가씨가 사는 쪽 하늘을 바라보며 하얗게 밤을 새우고 부치지 못할 편지를 얼마나 썼는지 모른단다.

35년이 흐른 지금 할아버진 첫사랑 이별 후의 가슴앓이보다 더한 가슴앓이를 하고 있단다.
누구 때문이냐고? 바로 서현이 너 때문이야. 네가 할아버지 그리움에 사무쳐있을 남쪽 삼호(전남 영암군 삼호읍)하늘을 쳐다보다, 네가 앉았던 자동차 조수석을 만져보고, 개굴(개구리) 보러 갔던 웅덩이를 돌아보고, 고기랑 우렁이를 정기 점검하던 농수로를 둘러보고, 네가 "우와, 달 떴다! 별도 많다!" "달이 나 볼라고 따라온다!" 외치던 밤하늘을 쳐다보다 안절부절 네게 편지를 쓴다.

서현아! 너 보단 할아버지가 널 더 좋아하나봐. 그래서 이렇게 편지라도 쓰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거겠지. 이제 1,2,3....아라비아 숫자만 익힌 네가 할아버지의 편지를 읽을 수도 없을 텐데. 먼 훗날에라도 읽고 야속했던 할아버질 용서해주렴. 그럴 수 있지?

퇴근한 아빠가 컴퓨터 앞에만 앉아 있고, 엄마가 2살배기 동생에게만 관심을 두는 것처럼 보인다고 조금 살갑게 대하는 할아버지에게 마음을 주면 되겠니?

너와 할아버지 사이에 아빠와 엄마가 있어야 하기에 "하버지! 나, 시골 살거야~ 하버지! 나, 하버지만 좋아, 나 데려가" 전화로 애걸하는 널 데리러가지 못하는 할아버지를 용서해줘, 내 사랑 서현아!



   최 병상씨는 한국기독교농민회 총연합회 사무국장과 3대 지방의원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고향인 전남 무안군 몽탄면 학산리에서 쌀농사를 하며 꿀벌을 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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