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들은 어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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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들은 어디로

오마리

2010년 02월 04일 (목) 01:43:57

나에게서 가장 아름다웠던 유년의 봄이라면 몇 년간 살았던 남도의 봄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담했던 그 도시의 봄은, 그 곳을 감싸 안듯 흐르는 강의 살얼음이 녹아내리면 건너편 산, 들과 함께 서서히 잠에서 깨어납니다. 그러다 남녘에서 훈풍이 불어오면 강변을 따라 무리 진, 수십 년 된 거무죽죽한 고목인 벚꽃나무들이 툭툭 소리를 내며 화사한 꽃망울을 터트립니다. 하얀 벚꽃들이 일제히 만개하던 강변의 터널은 장관이었습니다.

작년 봄 나의 기억을 따라 그곳을 수십 년 만에 찾았습니다. 나 어머니와 아버지, 유년의 추억과 만나고 싶었던 것입니다. 반짝이는 별무리가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듯 휘날리는 벚꽃 아래 편찮으신 아버지와 걸었던 추억의 그 길은 이제 나무들은 사라져 버린 채 무수한 차들이 달리고 있는 시꺼먼 강변로로 변해버렸습니다.


	중앙 부분의 화단과 은행나무들이 있던 원래의 세종로. 화단의 나무들이 북악산 경복궁과 조화롭다.

몇 달 전, 지인에게서 들은 국내소식에 의하면 광화문 세종로 거리, 중앙에 있던 화단이 없어지고 그 화단 위로 줄줄이 서 있던 오랜 고목인 은행나무들이 잘렸다 합니다. 그래서 그 분에게 사진을 찍어 보내달라고 부탁해 받아보고는 황량하게 변해버린 세종로의 사진을 보고 경악하였고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대한민국 수도의 자랑이자 자존심인 세종로는 경복궁과, 청와대란 국가수뇌의 정무처를 동시에 끼고 있는 단 하나의 길이며, 조선 오백년의 역사, 해방(광복)후 수십 년 동안 민족의 기쁨, 고통과 한을 담고 있는 길이자 역사의 증인입니다. 위용 있고 당당하게 서 있는 북악산을 배경삼은 세종로 중앙의 화단에는 오랜 연륜을 자랑하던 고목 은행나무가 그 주변 분위기와 완벽한 조경미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더욱이 그 길은 광화문, 경복궁, 인사동, 비원, 창덕궁, 그리고 청와대가 위치하여, 외국사절과 관광객들의 출입이 빈번한 곳으로 국가의 위상을 더욱 빛나게 해주던, 우리 국민의 영혼이 깃든 유서 깊은 길이었습니다,


	현재의 세종로. 텅 비고 황량하다.

또한 덕수궁 쪽에서 세종로 쪽으로 북악산을 바라보고 걷노라면 세종로 뒤로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북악산과 그 아래 날렵하게 앉아 있는 경복궁은 빼어나게 아름다워 그곳을 한양의 왕궁터로 삼은 태조 이성계와 무학대사, 우리 조상의 심미안에 감탄을 하게 됩니다. 이곳처럼 자랑스런 길은 대한민국 어디에도 없기 때문입니다.

세종로엔 우리들의 추억도 함께 합니다. 은행잎이 노랗게 물들 때 그 길을 걷거나, 길가에 앉아 떨어지는 은행잎을 보고 있노라면 한 잔의 차를 같이 할 수 있는 누군가가 그리워지는 곳입니다. 어떤 이는 그곳에서 사랑을, 작별을, 그리고 재회를 했고, 어떤 이는 눈물을 흘리기도 웃기도 하였던 삶의 애환이 어린 길입니다.

그곳을 황폐하게 만든 이유는 광장을 크게 만들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시청 앞 광장으로도 충분한 서울의 좁은 땅에서 그렇게 커다란 광장이 필요했는지, 아니면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처럼 대형 집회나 데모를 위한 곳이 또 필요했을까요?

광장을 만들어, 그곳에서 꼭 스노보드 시티점프 행사를 열지 않으면 다른 곳에서 할 장소가 없었는지, 지금은 그곳에서 아이들이 스케이트를 지친다고 합니다. 서울시가 원한다면 다른 곳에 얼마든지 스케이트장을 만들 수 있었음에도 그 단아하고 우아했던 길을 파헤쳐 버린 겁니다.


	일본 가나자와시의 강변 . 수십 년 전과 변함없는 강변에서 전통 마츠리 축제가 열린다

일본의 사적지나 공원들을 가보신 분들이 많으실 것입니다. 일본인들은 대도시이거나 시골, 심지어 사적지가 아닌 어느 곳이라도 자연 그대로의 강과 나무들을 사랑하며 거기에 의미를 둡니다. 그래서인지 그들의 전통과 문화 자연에 대한 사랑이 유별나 하다못해 동네 강변에 있는 나무 한 그루도 쉽게 베어내지 않고 보존합니다. 오래된 나무들도 자연유산이란 것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프랑스 파리의 샹젤리제 거리

파리에는 오래된 플라타너스와 마로니에가 온 도시를 꾸며주고 있습니다. 대통령 궁 근처인 샹젤리제 대로에는 우리가 쉽게 베어버린 수백 년 된 은행나무보다도 못생긴 플라타너스가 개선문광장과 콩코드 광장이 만나는 그 길을 조화롭게 해주고 있으며 국민들은 그 거리와 나무들을 사랑합니다.


	남 프랑스 아비뇽(프로방스 지방) 근교의 플라타너스 나무들. 수령 250년을 헤아린다.

남불 프로방스의 시골길엔 지금도 수백 년 자란 플라타너스 종류인 나무들이 멋지게 하늘을 향하여 서 있습니다. 많은 관광객들이 이곳을 지나며 감탄을 연발합니다. 프랑스인들은 이 나무를 사랑하며 이 길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지요. 그들은 알기 때문입니다. 한 그루의 나무에도 역사와 문화가 있다는 것을, 한 그루의 나무를 키우기에는 우리가 살아낼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이탈리아 로마의 고대 유적지 콜로세움

이탈리아 로마에는 로마 특유의 아름다운 원형 소나무가 도시 전체를 꾸며주고 있습니다. 그들의 자긍심의 상징인 로마 시내의 고대유적 콜로세움, 포로 로마노, 그 밖의 유적지나 그에 가까운 시내의 거리마다 이 독특한 원형 소나무는 위대한 인류문화 유산을 빛을 더해 주고 있으며, 도시 로마를 풍요롭고 신선하게 합니다.


	로마시내의 유적지와 소나무들

만약 로마라는 고대의 도시에 이 아름답고도 특유한 소나무가 한 그루도 없다면, 세종로의 은행나무처럼 잘라져 그저 유적지와 도시 건물뿐이라고 상상한다면, 로마라는 도시가 주는 분위기는 전혀 다를 것입니다.

한 번 잘라 버리면 다시 백년을 기다려야 하는 수령이 많은 고목도 자연유산이건만, 그런 나무들을 쉽게 잘라버렸습니다. 옛것을 아끼기보다 새로운 것만을 지향하고, 전통과 낭만이 서려 있는 것보다 크고 편리한 것만 선호하여 우리의 얼이 담겨 있는 모든 것들이 사라져 간다면 한국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두렵습니다. 이런 유산들을 섣불리 없애버리고 집회를 위하여 만든 광장, 스케이트장, 스노보드 점프장에서 과연 우리 아이들은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사진 촬영 오마리>

방배 아저씨 (124.XXX.XXX.105)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어떻게 합니까?
고만 덮어두고 가슴을 진정시킵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