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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의 말라이카들에게
방석순 2007년 03월 05일 (월) 11:58:24

겨우내 시커멓던 언덕배기를 푸릇푸릇 물들이며 봄이 밀려오고 있습니다. 거리를 활보하는 여인들의 경쾌해진 옷자락에서도 짙은 봄기운이 풍겨납니다. 정말 봄이 왔나봅니다. 책상 위에 한 장 두 장, 쌓여가는 청첩장을 보노라면 더욱 실감이 납니다.

쌍춘절이니 뭐니 해서 지난해 결혼시장이 어느 해보다 붐볐다는데 올해도 그 기세가 만만찮아 보입니다. 청첩장을 건네준 한 친구의 얘기로는 원하는 날짜에 성당에서 결혼미사를 올리려는 사람이 너무 많아 경쟁률이 25대 1을 기록했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원하는 날 원하는 곳에서 웨딩마치를 울리는 것만으로도 큰 축복인 셈입니다. 뜻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발을 구르는 사람들은 훨씬 많습니다. 오랫동안 깊이 사귀어 오던 연인들 사이에서 막판 양쪽 집안의 저울질이 어긋나 결혼약속 자체가 어그러지는 일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언제나 자신만만하고 허풍스럽기까지 하던 친구 하나가 늦은 시각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가까이 와 있으니 한잔 하자는 거였습니다. 이미 저녁까지 먹은 후였지만 모처럼의 부름에 응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습니다.

호기롭게 이런저런 얘기를 풀어가던 친구가 슬그머니 아들 혼사를 털어놓았습니다. “녀석, 그 건이었군” 하고 싱긋 웃는데 웬일인지 친구의 어깨가 점점 아래로 처지기 시작했습니다.

평생을 남보다 열심히 살아 아들 셋을 훌륭히 키워냈다고 자랑하던 그에게도 남모르는 새 고민이 생긴 까닭입니다. 사돈댁이 “결혼식 비용과 혼수 일체를 책임질 테니 아이들 살만한 집을 장만해 달라”고 요구하더라며 친구는 거푸 술잔을 비웠습니다.

고민하는 양으로 보아 변두리 전세방 한 두 칸으론 만족시킬 수 없는 상황 같았습니다. 그렇다고 아들 셋을 모두 그렇게 넉넉히 장가들일 형편도 아니고. 밤은 깊어가고 친구는 점점 작아져 아예 술잔 속으로 들어갈 것처럼 보였습니다.

웬만큼 여유롭지 않다면 누구나 그런 고민을 안고 사는 게 우리네 현실입니다. 낳아서 기르고 공부시켜 직장까지 갖게 된 자식에게 결혼 뒷바라지와 평생의 안락까지 책임져야 한다니요. 참으로 터무니없는 애프터서비스입니다. 그 잘 산다는 미국에서도 젊은이들이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대출받았던 학자금을 상환하는 것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다던데 말입니다.

늦게까지 친구와 술잔을 기울이다가 문득 해리 벨라폰테와 이름을 기억 못하는 아프리카 여인이 애틋하게 부르던 노랫가락이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Malaika na ku penda Malaika … …”
(나의 천사여, 그대를 사랑하오. 그대는 내 인생의 반려.
나는 어이 하리. 그대와 결혼하고 싶지만 나에게는 아무것도 없소.
내 마음의 천사여. 그대와의 결혼을 갈망하지만 …)

‘malaika’는 남동부 아프리카의 스와힐리어로 ‘천사(연인)’를 뜻한답니다. 노래는 사랑하는 여인의 집에 소나 염소 같은 재물을 줄 수 없어 사랑을 이루지 못한 가난한 연인의 슬픔을 하소연하고 있습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젊은 연인들에겐 부디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미욱한 어른들이 더러 바보같은 생각을 하더라도 젊은이다운 의지와 슬기로 자신들의 미래를 스스로 개척해나가는 용기를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2007년 3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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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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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bero (211.XXX.XXX.216)
결혼, 해도 후회하고 안 해도 후회한다던 말이 생각나는군요. 주절주절 쓴 글보다 오히려 잘 알아 들을 수도 없는 가사의 노래가 주는 느낌이 더욱 절절했음을 고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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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16 19:07:31
0 0
강남훈 (221.XXX.XXX.28)
해리 벨라폰테와 같이 노래부른 여인은 아프리카 음악의 여왕 미리암 마케바(Miriam Makeba) 입니다. 좋은글 잘읽었습니다.크게 공감하고 있습니다.감사합니다.
답변달기
2007-03-07 20:38:25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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