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무상급식을 생각하며

인기검색어 : 자유칼럼, 에세이

홈 > 연재칼럼 | 임종건 드라이펜

다시 무상급식을 생각하며

임종건

2010년 03월 26일 (금) 00:51:07

저는 지난달 칼럼제목 ‘교육의 과잉’에서 무상급식의 문제점을 가볍게 얘기한 적이 있었습니다. 저의 주요 관심분야도 아닌 이 문제를 다시 논의코자 하는 것은 지난 주말 한 방송사의 TV토론에서 이 문제를 놓고 정치인 대학교수 학부모 교사 등이 나와 토의를 하는 모습을 보고 답답한 심정이 더 커졌기 때문입니다.

여당의 국회의원은 무상급식이 예산의 문제인 양 되풀이 강조했습니다. 부자집 자녀들에게 공짜점심을 줄 돈이 있으면 학교시설을 확충하는 데 써야 옳다고 주장하면서 “이건희 회장의 손자에게 공짜점심을 줄 필요가 있냐”고 극단적인 비유까지 동원했습니다. 돈만 있다면 전면무상급식도 좋다는 얘기인 듯 들렸습니다.

야당 국회의원도 예산타령이긴 마찬가지였습니다. 부자감세, 4대강 사업에 수십조원이 들어가는 데 1~2조원이 무슨 대수냐고 했습니다. 학교교육이 잘 못돼서 ‘부산사건(김길태사건을 지칭)’도 났다며, 김길태사건이 학교급식과 관계가 있기라도 한 것처럼 말했습니다.

대학교수들은 학자답게 선별주의와 보편주의라는 교육이론으로 다퉜습니다. 선별주의는 교육의 문제도 정해진 예산 범위 안에서 우선순위에 따라 개선해 나가는 게 바람직하다는 얘기였고, 보편주의는 65세 이상 노인 모두에게 지하철 무료승차 혜택을 주듯이 미래세대에 대한 배려차원에서 무상급식도 하라는 이를테면 표현을 달리한 평등주의였습니다. 의무교육이기 때문에 무상급식이라면 교통비도 의료비도 학용품도 공짜로 줘야하는 것이 아닐까요.

‘낙인효과’에 대한 주장도 많았습니다. 낙인효과는 범죄용어로 많이 쓰이는데 ‘누구를 나쁘게 낙인 찍으면 진짜 나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이론입니다. 무상급식 대상자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어린 마음에 어두운 상처가 낙인처럼 남는다는 겁니다. 쉽게 말해 ‘눈칫밥’을 먹게 하지 말자는 얘기입니다.

여기서도 학교 안에 낙인효과가 크게 존재한다는 주장과, 다른 학생은 물론 해당 학생조차도 전혀 알려지지 않도록 시스템이 구축돼 있어 염려할 것이 없다는 주장이 엇갈렸습니다.

한 여성 학부모는 요즘 경제환경이 어려워져 월 중학교 3만원, 고교 5만원하는 급식비가 부담스러운 가정이 늘어났으므로 무료급식은 많은 가정으로부터 환영받을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비교적 설득력 있는 주장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보다 더 공감이 가는 주장도 있었습니다. 여성인 한 학부모는 “무상급식이 뭐가 그리 수치스럽다는 말인가. 무상급식을 받았으면 국가에 고맙게 생각하고, 성공해서 갚으면 된다. 가난은 이겨내는 것이다”는 요지로 말했습니다.

무상급식이 돈의 문제만이라면 야당의 주장이 맞습니다. 그렇게 긴요한 문제라면 현재의 13%를 30%까지 점차적으로 늘리는 방법이 아니라 다른 예산을 당겨서라도 당장 실시하고, 재정상으로 그럴 능력도 있다고 봅니다.

제가 가장 동감할 수 없는 주장은 무상급식이 낙인효과를 없애는 궁극의 방법이라는 주장이었습니다. 부자집 학생이나 가난한 집 학생이 같은 품질의 식사를 먹게 해야 ‘음식의 평등’이 이뤄지고 그것이 교육적이라는 주장이었습니다.

무상급식을 통해서 ‘교육의 평등’을 이루자는 것은 위선이자 반교육적인 획일주의 발상이 아닐까요. 무상급식 방법도 기술과 행정력을 동원해 아무도 모르게 감쪽같이 하는 것이 가장 교육적인 배려인 양 하는 것도 위선이긴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부모나 교사는 앞서 한 학부모의 말대로 ‘무상급식이 수치가 아니라는 것, 국가가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에게 베푼 혜택이라는 것, 받은 혜택은 성장해서 국가와 이웃을 위해 갚으면 된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더 교육적인 게 아니냐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혜택은 국가로부터 받은 것은 물론, 부모로부터 받은 것도 갚아야 하는 것임을 가르치는 것이 바른 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교육이 어린이들에게 제대로 전달되기 어려울 수 있으므로 마음의 상처를 받지 않게 하려는 노력은 지속돼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면 무상급식의 명분이 돼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습니다. 또 공짜는 없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공짜라면 소도 잡아먹는다’는 속담이 있을 만큼 공짜 좋아하는 사회입니다. 의무를 모른 체하며 권리만 주장하는 풍조도 ‘공짜심리’에서 연유했을지도 모릅니다. 어렸을 적부터 공짜를 멀리하도록 가르쳐야 할 필요가 가장 절실한 것이 우리사회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보다 훨씬 일찍부터 학교급식을 시작한 선진국들 가운데서 전면 무상급식을 실시하는 나라는 거의 없습니다. 예산이 없어서가 아니라 공짜의 비교육성 때문일 것입니다.

저는 50여 년 전 보리밥에 단무지 반찬의 ‘어머니표’ 도시락을 먹고 학교를 다녔습니다. 쌀밥에 고기반찬의 친구 도시락에서 불평등을 배울 수 있기엔 너무 어렸는지 몰라도, 어머니의 도시락은 고맙고 맛만 있었습니다. 저는 학교급식이 요즘처럼 아무리 영양만점에 청결만점이라 해도 사랑과 정성이 담긴 ‘어머니표’ 도시락엔 어림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부자건 가난하건 자녀의 끼니를 부모의 기본 책임으로 알고 살아온 이전 세대처럼 저의 세대에서도 아이들의 학교 도시락을 싸는 것은 일과의 큰 부분이었습니다. 학교급식제도가 도입된 후 가정주부들은 도시락을 싸는 시간과 노력을 덜게 됐고, 그 결과 여성의 사회활동 확대, 특히 맞벌이 주부들에게 도움이 컸을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결식아동 문제도 자연히 해결됐고요.

도입당시부터 학부모의 지대한 관심사였던 학교급식은 현재도 ‘학교직영’ ‘위탁운영’을 놓고 논쟁이 한창인 가운데 전면무상급식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선거를 앞두고 주부 표를 겨냥해 정치권이 편승한 결과이죠.

저는 무상급식 계층을 늘리려고 할 게 아니라 그들이 빈곤을 벗어나 유상급식 계층에 편입되도록 해서 오히려 줄이는 것이 정책목표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가가 전적으로 책임진다는 것에는 국가의 통제를 허용한다는 의미도 내포돼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의 가장 나쁜 예가 한반도 북쪽에 있지 않습니까.

임종건 (203.XXX.XXX.10)

졸견에 공감해주신 세분께 감사드립니다.다비님은 저의 잘못된 속담인용을 일깨워주셨습니다. 공짜라면 양재물도 먹는다가 맞지요. 외상이면 소도 잡아먹는다지요. 이 때의 외상도 안갚는 성격을 내포한 것이라 공짜의 사촌쯤은 된다고 할 수 있겠네요.

답변달기 ▼

2010-04-01 15:45:15

0		0

이동한 (119.XXX.XXX.235)

"국가가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에게 베푼 혜택이라는 것, 받은 혜택은 성장해서 국가와 이웃을 위해 갚으면 된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더 교육적인 게 아니냐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혜택은 국가로부터 받은 것은 물론, 부모로부터 받은 것도 갚아야 하는 것임을 가르치는 것이 바른 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라는 의견에 동의합니다. 잠시 헷갈리던 제 머리속을 정리해 주는 글귀였습니다.

답변달기 ▼

2010-03-29 10:09:00

0		0

다비 (174.XXX.XXX.104)

공감이 가는 글에 우선 감사부터 드립니다.
무상급식을 통해셔 교육의 평등을 이룬다는 논리는 참 이해할 수 없습니다.
또한 유상급식의 학생에게 무상급식 학생이 낙인이 찍힌다는 논리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국가에서 거저 주는 밥, 무엇이 부끄러우냐, 감사할 줄 알아야 하고 국가에 되돌려 갚아야 한다는 그 여성의 발언 훌륭합니다.

공짜 좋아하는 버릇 어려서부터 길들이면 아니 될 것입니다. 노력없이 공짜로 얻어먹거나 받으려 하는 것처럼 비교육적인 것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부모의 능력이 있으면 공짜보다 밥값을 내던지 도시락을 싸가지고 등교하던지, 그것이 오히려 평등한 것 아닐까요?
공짜좋아하는 우리 한국인들의 습성부터 고쳐야 아이들의 교육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라는 우리의 속담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답변달기 ▼

2010-03-26 06:51:22

0		0

다음에 해당하는 게시물 댓글 등은 회원의 사전 동의 없이 임시게시 중단, 수정, 삭제, 이동 또는 등록 거부 등 관련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운영원칙]

욕설 및 비방, 인신공격으로 불쾌감 및 모욕을 주거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
다른 회원 또는 제3자의 사생활 침해 및 개인정보 유출
공공질서 및 미풍양속에 위반되는 내용을 유포하거나 링크하는 경우
불법복제 또는 해킹을 조장하는 내용
영리 목적의 광고나 사이트 홍보
범죄와 결부된다고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내용
지역감정이나 파벌 조성, 일방적 종교 홍보
기타 관계 법령에 위배된다고 판단되는 경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