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팀 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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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팀 버튼

김창식

2010년 04월 01일 (목) 02:16:02

할리우드에서 가장 상상력이 뛰어난 감독은 팀 버튼(Tim Burton)입니다. 그는 '가위 손'을 비롯해, '유령신부', '크리스마스 악몽', '스위니 토드', '슬리피 할로우', '화성침공' 등에서 기괴하고 발칙한 상상력으로 관객이 무엇을 상상하든 그 너머의 것을 보여주어 놀람과 찬탄을 자아낸 감독이지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Alice in Wonderland)'는 잘 알려진 대로 영국작가 루이스 캐럴(1832~1898)이 쓴 기이한 아동소설의 고전입니다. 소녀 앨리스가 우연히 토끼 굴과 연결된 지하세계(Underland)에 빠져 우여곡절 끝에 악독한 붉은 여왕이 통치하는 왕국에 평화를 가져온다는 권선징악적 내용이지요. 이 과정에서 기기묘묘한 캐릭터가 등장하고 현란한 모험이 펼쳐져 환상의 세계로 이끕니다.

팀 버튼이 '스위니 토드' 이후 3년 만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영화로 만들었습니다. 출연진도 화려합니다. 오랜 단짝이자 할리우드 최고 몸값의 배우 조니 뎁(모자 장수 역)과 그의 부인이기도 한 카리스마의 여배우 헬레나 본햄 카터(붉은 여왕 역)이니 팬들의 기대가 클 만도 했습니다. 결과는 B급 판타지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어요. 지나치게 어울리는 소재와 찰떡궁합 감독이 만나면 역효과를 불러온다는 가설을 입증키라도 하듯.

팀 버튼은 새로움을 주려 시도했습니다. 동화 내용을 살짝 바꾸어 앨리스를 19세 처녀로 설정한 것이지요. 왜 그랬을까? 그가 전하려 한 메시지는 빅토리아시대 상류사회 귀족들로 표현된 '어른'들의 엄격한 형식주의, 허위의식과 속물근성에 대한 비판으로 보입니다. '훌륭한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미친 사람들'이라는 대사를 영화 처음과 끝 부분에 굳이 배치한 것을 보아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메시지가 서사의 흐름과 화면의 변환에 녹아들지 못합니다. 관객의 공감을 끌어내지 못한 채 나무에 대를 접한 엇박자 영화가 된 것입니다. 현실세계로 복귀한 앨리스는 미혼인 늙은 이모에게도 일갈합니다. "꿈 깨. 백마 탄 왕자 따윈 없어." 앨리스가 죽은 아버지의 숙원인 중국항로 개척을 위해 사업여행을 떠나는 마지막 처리도 고개를 갸웃하게 만듭니다. 홀로 서는 무역전사 앨리스? 꿈을 버리고 현실과 화해하다...?

낯익은 내용을 영화화함에는 그만큼 위험부담이 따릅니다. 관객들은 늘 새롭고(New) 낯선(Defamiliar) 어떤 것-전도된 해석, 비틀기, 놀라운 볼거리, 극적인 반전-을 원하는 때문입니다. 이의 달성을 위해 상상력의 동원이 필수적이지요. 이 영화는 예술과 형상화의 관계, 상상력의 중요성을 새삼 살펴보게 합니다. 무릇 예술은 사상과 감정을 상상력을 통해 아름답게(또는 진실되게) 표현함으로써 관객(독자)의 공감을 얻는 행위겠지요. 여기서의 상상력은 소설적인 허구가 아니라 보는 이를 서사의 현장에 데려가는 힘(핍진성⁃逼眞性), 그러할 것이다 하고 그려보이게 하는 회화성, 결과적으로 스토리 구조나 화면에 몰입케 하는 능력을 일컬음입니다.

주제와 내레이티브, 화면이 겉도는 것도 그렇지만, 영화가 기대에 못 미친 것은 그보다 상상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탓입니다. 보고 난 후에도 잔상이 남지 않습니다. 익숙한 설정, 진부한 소재, 어디서 본 듯 전혀 새롭지 않은 캐릭터들(모양이 자유자재로 변하는 고양이, 조끼 입은 토끼, 현명한 벌레, 난쟁이 형제, 시조새를 닮은 괴수 등). 팀 버튼이 예전 영화에서 보여 준, 앙증맞고 장난감 같은 캐릭터들-삐걱대면서도 슬픈 영혼을 지닌-과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면서도 묵시론적인 영감을 자아내던 청회색 화면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팀 버튼 감독은 롤랜드 에머리히나 제임스 카메론 감독과 다릅니다. 그는 '2012' 같은 블록버스터 또는 '아바타' 같은 스펙터클 거편이 아니라 깜찍하면서도 철학적 뉘앙스를 담은 소품(小品)에 장기가 있는 감독입니다. 이 영화는 팀 버튼의 팬들에겐 재앙과 같은 영화입니다. 이상한 나라에서 길을 잃은 팀 버튼. 팀 버튼적인(Burtonesque. '버튼스럽다'는 할리우드의 造語) 상상력이 결여된 팀 버튼의 영화니까요.

김윤옥 (210.XXX.XXX.6)

어쩌다 영화 한 편 보는일도 어려워졌는지, 지금은 어떤 영화가 어떤 방식으로 관객을 유혹하고있는지, 남의 나라 엘리스 처럼 낯설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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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09 14: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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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식 (110.XXX.XXX.243)

그렇습니다, 김윤옥님. 남의 나라의 앨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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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21 10: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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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청봉 (118.XXX.XXX.158)

요즈음은 영화를 자주 보러 가지는 않지만 잔상이 남는 영화가 많지 않습니다.
옛날에는 엔딩 마크가 나와도 일어서기 싫은 영화기 흔했는데 감정이 메말라서 그런지 조금은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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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02 11: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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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xland (222.XXX.XXX.234)

그렇습니다, ys청봉님. 그러다보니 자꾸 옛영화를 거론하게 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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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02 17:5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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