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검색어 : 자유칼럼, 에세이
> 연재칼럼 | 김이경 책방
     
닫힌 문 앞에서 우는 당신께 - 『화성의 인류학자』
김이경 2010년 04월 16일 (금) 00:02:51
봄은 왔으되 기다리던 봄은 아직 오지 않은 채 봄날이 갑니다. 바람이 불고, 막 꽃을 피운 벚꽃들이 우수수 떨어집니다. 마음도 날씨를 닮아 자꾸 움츠러듭니다. 살아갈수록 길이 보이기는커녕 절망만 커지는 세상. 닫힌 문 앞에서 우는 사람들이 왜 이리 많은지, 천지간에 울음이 가득합니다.

빗장을 지른 세상을 원망하다가 스스로의 마음에 빗장을 걸어버린 사람들이 홀로 문 안에서 울 때, 나는 문밖을 서성일 따름입니다. 나는 당신의 절망 앞에 타인입니다. 우리는 모두 서로의 절망에 낯선 타인일 뿐입니다. 그러니 섣불리 안다고는 하지 않겠습니다. 위로의 말도 건네지 않겠습니다. 당신이 끝내 비관의 선택을 한대도 비난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당신의 닫힌 문 앞에 책 한 권 놓아두는 일. 어쩌면 희망이 될지도 모른다는, 아주 작은 희망으로 당신께 이 책 『화성의 인류학자』를 드립니다.

신경과의사인 올리버 색스가 쓴 『화성의 인류학자』에는 신경병을 앓는 일곱 명의 인물이 나옵니다. 그 중 넷은 성인이 되어 발병했고, 다른 셋은 날 때부터 신경병을 앓아왔지만,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그들이 겪는 고통과 절망은 다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뇌의 손상에도 불구하고 혹은 그 손상 덕분에, 나름의 세계관을 갖고 새로운 인생을 산다는 것도 닮은 점입니다.

책의 첫머리에 등장하는 화가 조너선 I.는 교통사고로 어느 날 갑자기 색맹이 된 경우입니다. 그냥 색맹이 아니라 전색맹이라 해서, “주위가 온통 흑백TV 화면”처럼 보이게 된 것입니다. 50여 년을 화가로 살아온 그에게 이것은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색을 잃은 눈으로 그림을 그린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었고, 모든 게 “쥐색”인 세상은 “더럽고 지저분하게” 느껴졌습니다.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예전으로 돌아가 있기를 기도하던 조너선은, 한 달이 지나면서 변한 현실을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눈에 보이는 흑백의 세상을 그림으로 그리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일 년여가 지나고, 그는 자신의 예술인생에서 가장 독창적이고 견실한 시기를 맞이합니다. “그는 더 이상 색을 떠올리며 그리워하거나 안타까워하지 않”으며 “색맹이라는 별난 선물이 그를 새로운 감성과 생존방식으로 인도했다고 생각”합니다.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고통을 혼자 감당한 끝에 도달한 평화요 깨달음이었지요.

만년에 이르러 뜻밖의 고통을 겪게 된 조너선과 달리, 외과의사 베넷은 일곱 살 때부터 투렛증후군을 앓아온 경우입니다. 사람들은 경련성 틱이나 발작적 행동을 보이는 투렛증후군 환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다양한 직업을 가진 투렛증후군 환자들을 보아온 신경학자 색스는 그렇지 않다는 걸 압니다. 하지만 그런 색스조차도 베넷을 처음 봤을 때는 깜짝 놀라고 맙니다. 느닷없이 펄쩍 뛰고 같은 말을 수백 번씩 반복하는 베넷이 정교한 수술까지 하는 외과의사라는 게 믿기지 않았지요.

하지만 베넷은 투렛증후군을 앓으면서도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북극 쇄빙선에서 일했으며, 17년간 병원에서 환자를 치료해온 현직 의사입니다. 베넷의 의지와 도전정신은 물론이요, 그를 의사로 인정하고 기꺼이 함께하는 마을사람들과 동료들, 그리고 가족들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지요. 색스는 진료실에서 그가 환자들을 치료하는 광경을 지켜보고 그것을 깨닫습니다.

“베넷은 손을 씻고 무균장갑을 꼈다. 그런데 투렛증후군을 자극했는지 씻지 않아 ‘지저분한’ 왼손 쪽으로 장갑을 낀 오른손을 불쑥불쑥 내미는 초기 증상을 보였다. 환자는 아무 표정 없이 이런 모습을 지켜보았다.…… 베넷은 침착하게 절개하고 40초 만에 종양을 제거했다. 그는 상처 가장자리를 빈틈없이 봉합했다. 환자는 농담을 던졌다. ‘집에서도 바느질을 하세요?’……베넷은 분명 인기가 많은 의사였다. 그는 빈틈없고 한결같은 집중력을 보였다. 환자들은 그의 관심이 자기 한 몸에 집중돼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이처럼 순조로운 것은 아닙니다. 베넷은 색스에게 자신의 내부에 있는 공포와 분노에 대해 털어놓습니다. 밖에서는 병이 불러일으키는 분노를 터뜨리지 않기 위해 온힘을 다하지만, 그 긴장을 끝까지 유지할 수는 없기에 집 안 서재 벽은 칼자국으로 뒤덮이고 벽은 구멍이 뚫립니다. 그는 투렛증후군 환자들의 이면에는 어두운 면이 자리 잡고 있으며 “그 어두운 부분을 상대로 평생 사투를 벌여야” 한다고 고백합니다.
질병을 앓고 있음에도 베넷처럼 전문직을 갖고 성공적인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을 보면, 우리는 병을 이긴 그의 의지와 ‘인간승리’를 찬양합니다. 하지만 베넷의 고백은, 질병이란 극복되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사는 것이며, 죽을 때까지는 누구도 승리를 말할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계속 의지력을 발휘해야만 하는 환자의 고독에 대해서도 새삼 돌아보게 합니다.

“자폐증 환자의 모범이랄 수 있는” 템플 그랜딘에 대한 이야기는 바로 그 고독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템플은 생후 6개월부터 엄마가 안아주면 뻣뻣하게 몸이 굳었고 10개월 때는 “덫에 갇힌 짐승”처럼 엄마를 할퀴던 자폐아였습니다. 세 살 때 그녀는 평생 특수시설에서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동물학 박사학위를 받고 콜로라도 주립대학교 교수로 일하면서, 직접 사업체까지 운영하는 다재다능한 인재가 되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 색스는 의심을 풀지 못합니다. 신경학자로서, 자폐증 환자인 그녀가 이룬 너무나 엄청난 성과를 믿을 수가 없었지요.

만나자마자 템플은 인사말 한마디 없이 곧바로 일 이야기를 꺼냅니다. 점심도 거르고 하루 종일 차를 타고 온 색스에게는 고역이었지만 그녀는 상대의 기분을 파악하지 못합니다. 그녀가 공감능력이 있는지 색스가 궁금해 하자 그녀는 말합니다. “화성의 인류학자가 된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아요.”

화성의 인류학자. 그것은 같은 인간을 외계인처럼 느낄 수밖에 없는 템플의 심정을 한마디로 표현한 말입니다. 학생으로, 교수로, 기술개발자로, 끊임없이 사람들을 만나고 사람들 속에서 살아왔지만 그녀는 그들의 감정을 ‘해독’할 뿐 이해하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감정을 모른다 해서 그녀가 아무 감정도 못 느끼는 것은 아닙니다. 그녀도 안기고 싶고 위로받고 싶어 합니다. 다만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서 느끼지 못하는 것뿐이지요.

그래서 그녀는 ‘포옹기계’를 만듭니다. 나무로 만든 기계와 포옹하면서 그녀는 사람에게서 얻지 못한 평화를 느낍니다. 사람들은 비웃고 정신과의사들은 ‘퇴행’과 ‘고착’이란 단어를 들먹였지만 템플은 꺾이지 않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감정을 과학적으로 입증하기 위해 노력했고, 이 기계를 발전시켜 세계 최고의 육우용 압박 슈트 설계자로 떠오릅니다. 압박 기계를 통해 도살되기 전 소가 느끼는 괴로움을 덜어주는 장치를 개발한 것입니다.

사람과는 소통하지 못하지만 그녀는 소를 비롯한 짐승의 마음은 누구보다 잘 느낍니다. 소의 울음소리만 들어도 행복한지 불행한지 그녀는 압니다. 색스는 그녀가 짐승들의 고통을 온몸으로 느낀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동물을 함부로 죽이고 장애인을 동물처럼 취급하는 인간에 대해서, 사형제도를 실시하는 사회에 대해서, 그녀는 열정적으로 분노합니다. 우주의 법칙을 믿는 그녀에게는 인간도 동물도 장애인도 모두 똑같은 우주의 한 존재였으니까요.

마지막 날, 템플은 색스를 배웅하러 가던 길에 갑자기 울음을 터뜨립니다. 그녀는 말합니다. “나도 무언가를 이루고 싶은데…… 권력이나 돈에는 관심 없어요. 죽은 뒤에도 무언가를 남기고 싶은 거지. 이 사회에 기여하고 싶어요. 그래야 내 삶도 의미가 있죠. 그게 바로 나라는 존재의 핵심이라고요.”

색스는 말문이 막힙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템플은 자폐증에 대한 색스의 인식을 흔들어 놓습니다. 헤어지기 전, 그는 한번 안아보고 싶은데 그래도 되겠느냐고 묻습니다. 그는 그 순간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나는 템플을 끌어안았다. 그녀도 나를 안아주는 것 같았다.”

일곱 명의 신경증 환자들을 만나면서, 의사인 색스는 자신의 의학지식과 임상경험을 내세우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이 그들과 그들이 앓는 병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귀를 기울이고 기록해 갑니다. 그리고 백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수많은 연구와 지식이 쌓였지만, 그 모든 것으로도 사람의 마음 한 자락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자폐증 환자인 템플이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질병 앞에서 한계를 느끼듯, 우리도 다른 사람들 앞에서 벽을 느끼고, 그 벽을 넘지 못하는 자신 앞에서 절망을 느낍니다. 어떻게 벽을 넘을 수 있는지, 닫힌 문을 열고 다른 세계를 만날 수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합니다. 다만, 모두가 이런 마음을 겪고 이런 꿈을 꾸면서 산다는 것은 압니다. 내 희망은 거기서 자랍니다. 우리가 모두 절망하는 존재라는 것, 그게 내 희망입니다.

*덧붙이는 말 : ‘독서처방’이란 이름으로 무면허 치료사 노릇을 한 지 2년 3개월이 지났습니다. 본전이 바닥난 지금, 독자들 앞에서 솔직히 자격미달을 고백하고 새 출발을 하고자 합니다. 다음 달부터 ‘김이경의 책방’을 새로 열고 좀 더 자유롭게 책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처럼 앞으로도 너그러운 눈으로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 자유칼럼(http://www.freecolum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칼럼의견쓰기(5개)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Janisa (187.XXX.XXX.13)
Play informative for me, Mr. inetrent writer.
답변달기
2011-09-16 01:57:34
0 0
홍승철 (122.XXX.XXX.53)
세상에는 면허 받은 자격 미달자가 많습니다. 김이경 님은 자격 있는 무면허자라고 해 두죠. 누가 면허를 주겠습니까? 앞으로도 고마운 글을 기대합니다.
답변달기
2010-04-21 00:49:22
0 0
김승식 (122.XXX.XXX.53)
어떻게 벽을 넘고 다른 세상을 볼수 있나요. 이런 절망이 있어 내게는 희망이라고........정말 대단한 글이고 경지입니다. 이런 좋은 글 감사드리고 내내 행복하세요
답변달기
2010-04-19 02:02:59
0 0
인내천 (222.XXX.XXX.213)
항상 깊이 있는 독서처방 기다리며 읽었습니다.
고백할 것은, 감동 먹으면서도 처방전을 실행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일곱명의 신경환자들에 비하면 닫힌 문 앞에서 절망하는 우리가 얼마나 호사스러운지.....
그래도, 우리 모두가 절망하기 때문에 희망이 있다는 말에 새 힘을 얻습니다! 앞으로도 변함 없이 좋은 글 많이 써주세요.감사합니다.
답변달기
2010-04-18 19:08:38
0 0
다비 (174.XXX.XXX.104)
우선 감사하다는 말씀부터 드리고 싶군요.
떠나시지 않고 계속 독서에 관한 글을 올려주신다니
독자들이 행복할 것입니다.
항상 좋은 글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답변달기
2010-04-18 10:13:15
0 0

다음에 해당하는 게시물 댓글 등은 회원의 사전 동의 없이 임시게시 중단, 수정, 삭제, 이동 또는 등록 거부 등 관련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운영원칙]

  • 욕설 및 비방, 인신공격으로 불쾌감 및 모욕을 주거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
  • 다른 회원 또는 제3자의 저작권을 침해하거나 불법정보 유출과 관련된 글
  • 다른 회원 또는 제3자의 사생활 침해 및 개인정보 유출
  • 공공질서 및 미풍양속에 위반되는 내용을 유포하거나 링크하는 경우
  • 불법복제 또는 해킹을 조장하는 내용
  • 영리 목적의 광고나 사이트 홍보
  • 범죄와 결부된다고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내용
  • 지역감정이나 파벌 조성, 일방적 종교 홍보
  • 기타 관계 법령에 위배된다고 판단되는 경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