非人不傳_(김홍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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非人不傳

김홍묵

2010년 04월 19일 (월) 01:52:29

지방선거가 40여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자치단체의 살림을 꾸리고 지역 발전과 주민 복지를 책임질 일꾼을 뽑는 중요한 일입니다. 천안함 침몰 참사로 잠시 수면 아래 잠복해 있던 정치판이 선거철을 앞두고 다시 부상하면서 나라 안이 시끌시끌합니다.

21세기 들어 두 번 째 맞는 10년 (decade). 우리나라는 내우외환에 버금가는 어려움에 처해 있습니다. 안으로는 실업과 소득 불균형의 심화, 대책없는 노령인구의 증가, 끊임없는 이념대립과 사회갈등, 늘어만 가는 정부와 개인의 부채…. 급기야 20,000달러 수준의 국민소득이 17,000달러 대로 내려앉고 말았습니다.

밖으로부터의 도전도 심각합니다. 3대(代) 세습을 도모하는 것으로 알려진 북한은 남한정부와 기업이 투자한 금강산 지역 부동산의 몰수 조치를 취했고, 개성공단에 대해서도 제재를 할 태세입니다. 핵 우위를 내세운 군사적 위협도 끊이지 않아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는 공갈이 현실화 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군사력 경제력 기술력을 앞세운 나라들과의 경쟁도 점점 더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선진국들은 환경기준 제품표준 기술특허 등으로 자국 상품 보호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반면 후진국들에게는 관세철폐 정부보조 중단 지적재산권 보장 같은 명분으로 경제적 문화적 잠식영역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이 바람에 효자산업들이 줄줄이 위기상황을 맞고 있습니다. 조선이 중국에 밀리고, IT분야는 미국의 대 공세에 휘청거리고, 반사 특수를 반짝 누렸던 자동차도 탄탄대로를 달리진 못합니다. 우리나라가 기술수준으로 중국을 앞설 수 있는 시절이 앞으로 3~4년 정도라니 앞날이 걱정입니다.

이번 선거가 더욱 중요한 것은 이 같은 위기상황에서 국운융성을 꾀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절체절명의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역사의 수레바퀴가 뒷걸음질하지 않게, 심혈을 기울여 나라 발전을 시현할 일꾼들을 뽑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왕희지(王羲之:307~365)의 ‘비인부전’(非人不傳)이란 말이 문득 떠오릅니다. 동진(東晋)시대의 서성(書聖)인 왕희지가 제자들에게 한 말로, 스승의 안목으로 보아 합당한 인물이 아니면 함부로 예(藝)나 도(道)를 전해줄 수 없다는 사제간의 냉엄한 도리를 일컫는 경구입니다.

왕희지의 뜻이 가장 잘 지켜진 예로는 조선 중기 명의 허준(許浚:1546~1615)과 스승 유의태(柳義泰)의 관계를 들 수 있겠습니다. 올곧은 성품과 실력을 갖춘 유의태는 수많은 제자를 제치고 심의(心醫)자질을 가진 허준에게 자신의 의업(醫業)과 의술을 고스란히 넘겨주었습니다.

냉혹하기까지 한 유의태는 물지게꾼 약초꾼을 거쳐 수련의에 오른 허준의 열성과 마음 씀씀이를 보고 3대에 걸쳐 쌓아온 의술의 진수를 그에게 전수했습니다. 아들과 의절도 마다 않은 유의태는 허준이 자기 몸을 해부하도록 자진(自盡)하여 살신성인하는 업력(業力)이 되었다고 합니다.

피눈물이 나고 뼈를 깎는 어려움 속에서도 허준은 이론과 실습에 정진하고 항상 가난하거나 천한 사람의 치료를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너무나 잘 알려진 『동의보감』은 유의태의 사람 보는 안목과 허준의 각고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보배로운 책입니다.

절대 권력자나 큰 스승은 아니더라도 민주주의 대의제도에서 ‘합당한 사람’을 일꾼으로 뽑아야 함은 당연한 진리입니다. 국민의 편에 서서 정직하고 청렴하고 혜안을 가진 그런 공복들 말입니다. 잘못 고른 사람 때문에 폐해가 생기고 제 발등 찍히는 어리석음은 더 이상 반복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래 됐다고 사슴 뿔이 될 리 없는 염소 뿔 같은 범속. 목욕물 버리랬더니 아기까지 버리는 숙맥. 돌 깨는 기술은 뒷전으로 미루고 눈깜짝이는 것부터 배운 석수. 염불엔 관심 없고 잿밥만 기웃거리는 중. 똥싸는 소리만 요란했지 개 먹을 것도 없는 허풍선이. 딸 덕에 부원군 꿈꾸는 건달. 이런 인사가 없는지 잘 가려야 할 것입니다.

이 봄, 우리 모두 병충해나 가뭄에 강하고 소출은 많은 종자를 정성껏 고르듯, 두 눈 부릅뜨고 참하고 능력 있고 소신 있는 사람 고르기에 심혈을 쏟아야 할 것입니다. 공직에 있는 사람은 공정하면 명지(明智)가 생기고, 청렴하면 위엄이 생긴다고 했으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