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검색어 : 자유칼럼, 에세이
> 연재칼럼 | 임철순 담연칼럼
     
운전면허 겨우 딴 지 20년
임철순 2010년 05월 10일 (월) 01:18:06
전북 완주군 소양면에 사는 69세의 차사순 할머니는 ‘운전면허계의 전설’입니다. 2005년 4월 면허증 취득시험에 도전하기 시작한 차 할머니가 5년 만인 올해 4월 26일 드디어 면허증을 손에 쥐자 국내 언론은 물론 해외 언론까지 화제기사로 앞 다퉈 보도했습니다. 필기시험 950번 만에 합격, 실기시험 10번 만에 합격, 도합 960번 만에 2종 보통 운전면허를 땄으니 그 의지와 노력에 세계적 관심이 쏠릴 만합니다.

차 할머니 이야기는 AP통신 로이터통신 뉴욕타임스가 보도했습니다. AP통신의 경우 차 할머니와 전북운전면허시험장 관계자의 말을 들어 보려 했으나 접촉이 되지 않았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이미 지난해 11월 4일 필기시험에 합격했을 때 AP를 비롯한 통신과 러시아 언론에 보도된 바 있으니 이번 기사는 당연히 챙겼어야 할 속보인 셈입니다.

주말과 국경일 등 시험이 실시되지 않는 날만 빼고 거의 매일 시험장을 찾았다는 차 할머니의 응시횟수는 세계적 기록입니다. 전주 중앙시장에서 야채를 팔다 보니 물건을 실어 나르는 데 차가 필요해졌고, 차를 몰려면 면허를 따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의지의 한국인’ 차 할머니는 하필 성도 차(車)씨입니다. 이제 작은 중고차를 하나 사겠다는데, 차사순이라는 이름은 ‘차를 사서 몰고 다니는 여자’라는 뜻인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작년에 딱 60점으로 필기시험에 합격했을 때 “중간에 그만두고 싶지 않았느냐”는 기자의 질문을 받고, 차 할머니는 “그러면 합격이 없지”하고 간단하고 알기 쉽게 대답한 바 있습니다. 차 할머니의 포기하지 않는 도전정신과 불굴의 의지에 감탄하면서 내 경우를 생각해 봅니다.

차 할머니와는 비교도 할 수 없지만, 나도 수없이 면허시험에 낙방한 사람입니다. 내가 운전면허를 취득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1984년 여름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죽음의 계곡, 데스밸리(Death Valley)에서 차가 굴러 죽다 살아난 다음입니다. 당시 동승했던 8명 중 선배 하나는 지금 휠체어를 타고 다니고 있습니다. 그 사고 이후, 어차피 죽을 거라면 남이 운전하는 차를 타다가 죽느니 내가 운전하다가 죽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운전면허 도전은 그 다음해에 시작됐습니다. 그러나 면허 따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필기시험에 합격해야 코스, 주행으로 이어지는 실기시험을 차례로 볼 자격을 얻는데 필기시험부터 통과하기가 어려웠던 것입니다. 맨 처음 시험에서 나는 완전히 실력으로 떨어졌습니다. 그까짓 필기시험이야 상식으로 치르면 된다는 생각에서 문제집도 전혀 들춰보지 않고 갔습니다. 그런데 교통법규는 대충 때려 맞힐 수 있었지만 자동차의 구조나 작동원리(이런 것도 시험에 나왔었나?) 등에 관한 것은 깜깜이었습니다.

처음 시험에 떨어진 날, 코가 쑥 빠져 출근했더니 내가 시험 본다는 게 소문이 났는지 만나는 사람마다 어떻게 됐느냐고 물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사실대로 대답했습니다. 공부를 하나도 안 하고 갔다는 점을 특히 강조하면서. 그랬더니 모든 사람들이 다 즐거워했습니다. 특히 제작부서의 일반직 사원들은 신문기자가 운전면허 필기시험에 떨어졌다는 것이 아주 재미있고 신기한 모양이었습니다. 나의 낙방사실은 순식간에 사내에 퍼져 며칠 동안 축하인사를 받아야 했습니다.

2차 필기시험도 완전히 실력으로 떨어졌습니다. 차가 막혔는지 담배를 피우다가 그랬는지 한 3분 정도 늦게 고사장에 도착했더니 벌써 문이 닫혀 있었습니다. 그 문에는 ‘시간을 지키지 못하는 것은 문화인의 수치입니다. 문 두드리지 마십시오.’라고 엄정하게 씌어 있었습니다. 말도 못 붙이고 수험료만 날린 채 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세 번째 필기시험도 완전히 실력으로 떨어졌습니다. “사실은 지각하는 바람에 시험을 못 봤다”고 설명을 해도 사람들이 도무지 믿어주지 않고 또 실력이 없어 떨어진 줄 알기에 이번엔 준비를 좀 하고 갔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공부를 하고 갔는데도 합격점인 60점에 2점이 모자랐습니다. 한 문제만 덜 틀렸으면 됐을 텐데.

결국 필기시험은 네 번 만에야 겨우 합격했습니다. 그때의 점수도 아마 60점을 갓 넘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차 할머니의 경우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실기시험이라는 큰 고비가 남았습니다. 차 할머니는 필기가 실기보다 더 어려웠다고 했지만, 나는 실기시험이 훨씬 더 어려웠습니다. 수도 없이 떨어졌습니다. 나중엔 수입인지를 붙일 자리가 없을 정도로 원서가 너덜너덜하고 두툼해졌습니다.

특히 S자 T자 코스를 통과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남들은, 특히 여자들은 공식을 잘도 외워 한 번에 쓱 통과하곤 하던데 나는 머리가 나빠 그런지 그게 되지 않았습니다. 그것도 일종의 수학시험인 것 같았습니다. 여자들은 시험 볼 때 돈이 아까워 웬만하면 한 번에 붙는다니 정말 약이 올랐습니다. 그러면 나는 돈이 아까운 줄 모르는 사람이라는 말입니까? 어쨌든 내가 코스 시험을 통과한 것은 거의 기적입니다. 이상하게도 어떻게 합격했는지 기억이 잘 안 나지만, 정말 감격적인 일이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주행. 그때는 도로주행 시험이 없어서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면허시험장을 한 바퀴 도는 시험에서도 나는 수없이 떨어졌습니다. ‘돌발’ 신호에 재빨리 브레이크를 밟아야 하는데 시간을 놓치고, 오르막길을 가다가 뒤로 밀려 내려오고 그러다가 차에서 내리라는 말을 들은 게 무릇 기하(幾何)인지 모릅니다. 나를 불합격시키는 경관도 원망스러웠지만, 사람을 진짜로 약 오르게 만드는 것은 탄천 면허시험장의 표어였습니다. 뭐라고 크게 씌어 있었느냐면 ‘한 번 실패 두 번 실패 늘어가는 운전기술’, 이렇게 돼 있었습니다.

하여튼 그렇게 운전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늘고 발전한 덕분에’ 1990년에는 나도 드디어 운전면허증을 거머쥐게 되었습니다. 차 할머니가 5년 걸렸듯이 나도 5년이나 걸렸는데, 다른 점이 있다면 9백 몇 번씩 일삼아 시험을 치르지 않은 것 뿐입니다. 사실 그럴 시간도 없었습니다.

어렵게 운전면허를 딴 뒤에 차를 사서 처음으로 엉금엉금 회사로 몰고 나온 날, 저녁에 집에 갈 일이 큰 걱정이었습니다. 후배를 옆에 태우고 집에 가다가 아니나 다를까 차선 위반으로 교통경관에게 걸렸습니다. 버스를 따라 가다보니 차선이 갑자기 없어졌던 것입니다. 운전석 옆 자리에 앉아 있던 후배가 설명을 하고 버스는 왜 안 잡느냐고 내가 항의를 해 다행히 딱지는 떼지 않고 넘어갔습니다. 지금도 운전이 서투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별로 차도가 없습니다. 나는 특히 후진 주차를 잘 못합니다. 그 놈의 S자 T자 코스가 아직도 나를 괴롭히고 있는 셈입니다. 그동안 사고도 몇 번 냈습니다.

그러나 꿋꿋하게 지금도 차를 몰고 있습니다. 특히 나보다 더한 사람들도 있다는 생각을 하며 안심을 하고 있는 편입니다. 면허는 땄지만 차를 안 몰고 다니는 장롱면허증 소지자도 많고, 강동구에서 면허를 따서 그런지 송파구에서는 운전을 잘 못한다고 변명하며 자신없어 하는 아주머니도 있고, 면허시험을 한 번에 통과했는데도 길을 잘 몰라 운전을 하지 않거나 겁이 나서 고속도로에 못 나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운전면허를 아주 오래 걸려서 딴 내가 그런 사람들보다는 낫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언제나 내려다 보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고 보니 올해가 면허 딴 지 20년이 되는 해입니다. 기념행사로 뭔가 하긴 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재미있고 좋은 생각이 있으면 누구든지 거리낌없이 좀 알려 주십시오.

   
ⓒ 자유칼럼(http://www.freecolum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칼럼의견쓰기(18개)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김종완 (211.XXX.XXX.129)
'4수 끝 면허시험' 합격 이야기 재밌게 읽었어요. 마침 오늘 얼마전 결혼한 큰 딸아이가 처음 자가운전 출근을 하는 날이어서 임주필 칼럼을 더 관심있게 읽었어요. 면허취득 20년 경축점심을 내가 한 번 살까요. 5월말쯤에...
답변달기
2010-05-11 16:27:51
0 0
차덕희 (121.XXX.XXX.233)
운전면허는 땄는데 워낙 기계치에다 순발력이 뒤떨어져 장롱면허로 두었다가 면허를 갱신하지 않고 그냥 없에 버렸습니다.차사순할머니의 끈기는 일등이지만 몸의 순발력이 따라 갈런지 걱정됨니다. 참고로 오형제 모두 운전에는 자신이 없어 하지요.운전기피증이 있지요.대중교통이 잘되어 있어 별로 불편하지도 않고요.
답변달기
2010-05-10 20:09:24
0 0
김영진 (211.XXX.XXX.129)
안녕하십니까? 전남대병원의 김영진입니다. 항상 좋은 글을 잘 보고 있습니다. 저도 차사순 할머니의 900번 도전에 대해서 텔레비전에서 보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에서는 될 수 있으면 70세 이상은 운전을 하지 않고 운전면허증 반납 운동을 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순발력이 떨어져서 사고의 위험이 높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답변달기
2010-05-10 18:20:30
0 0
인내천 (112.XXX.XXX.244)
ㅋㅋ~ 저랑 닮으셨군요. 저는 필기시험엔 바로 합격했지만 실기시험은 수입인지를 붙일데가 없을 정도로 떨어졌으니까요. 그래도 지금은 핸들만 잡으면 기분이 좋답니다. 그동안 사고는 얼마나 났는지 들으심 놀라실 것입니다. 자그만치 다섯대를 폐차 시켰으니까요.캐피탈,프라이드,에스페로,소나타.세피아 덕분에 손목과 발목엔 쇠붙이가 들어있지만 다른 곳은 멀쩡하답니다. 아직 세상에서 할 일이 남아 목숨은 유보를 당한 것 같습니다 ㅎㅎㅎㅎ~~ 그래도 운전대만 잡으면 기분이 좋으니 못 말리는 자동차 매니아가 분명하죠? ㅋㅋ~
답변달기
2010-05-10 17:50:41
0 0
임철순 (211.XXX.XXX.129)
목숨을 걸고 사시는군요. 자나깨나 핸들 조심 꺼진 차도 다시 보자.
답변달기
2010-05-10 17:54:36
0 0
무면허자 (211.XXX.XXX.129)
한참을 웃었습니다- 특히 차사순 할머니 이름은 기막힌 거 같습니다- S자 T자 연속해서 20번 해보기는 너무 유치한가요? ㅎㅎㅎ
답변달기
2010-05-10 17:10:36
0 0
임철순 (211.XXX.XXX.129)
스무번이나? 차라리 면허를 가져 가세요.
답변달기
2010-05-10 17:55:40
0 0
채길순 (211.XXX.XXX.129)
차 몰고 골프 치러 갑시다. 기념하여 끝까지 차를 모시고 옆에 탄 우리는 막걸리 마시고요. 채길순 드림
답변달기
2010-05-10 15:35:13
0 0
김기수 (211.XXX.XXX.129)
임주필님,
평소 임주필님의 글을 잘 앍고 있는 사람입니다...
내용이 마음에 닿는 부분이 많아 제가 만든 '내가 처음 운전대를 잡을때'라는 노래가 있어 함 보내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김기수 드림
답변달기
2010-05-10 13:43:49
0 0
김윤옥 (210.XXX.XXX.84)
그나 저나, 데스밸리에서 무사하게 돌아오신 것, 축하합니다. 하마터면 임주필님의 구수한 입담 모르고 살 뻔 했습니다. 친정 언니가 이십 여년 전 운전면허가 없어서 할 일 못하는 듯 조바심을 내며 수입인지 덕지덕지 붙여가며 간신히 딴 면허증 들고 거리에 나섰다가 택시 받고, 아파트 벽 받고.... 지금은 지하철 공짜로 타고 잘 다닙니다.
답변달기
2010-05-10 13:02:13
0 0
임철순 (211.XXX.XXX.129)
감사합니다. 그때 차가 세 바퀴나 굴렀는데 저는 다친 데가 별로 없었습니다.
답변달기
2010-05-10 13:41:33
0 0
신아연 (203.XXX.XXX.182)
면허 딴 날자도 기억하고 계시는군요.^^ 저도 대학 시험 합격했을 때보다 면허 시험 합격한 날이 더 좋았습니다. 우리 엄마도 제가 대학 갔을 때보다 면허 시험 딴 날 더 좋아하셨구요.^^
답변달기
2010-05-10 12:58:41
0 0
임철순 (211.XXX.XXX.129)
날짜는 잘 모릅니다. 사실은 그 전에 면허를 딴 줄 알았더니 90년이더라구요.
답변달기
2010-05-10 13:40:43
0 0
두타 (59.XXX.XXX.151)
그 솜씨에 20년간 큰 사고 없이 잘 지내오셨군요.
게다가 간혹 酒畢하시고 바로 운전하신 적도 있으셨을텐데.

기념행사를 어떻게 해야 할 지 굳이 물어보실 필요가 있을까요?
당연히 그동안 사고를 나지 않게 도와준 酒님을 초청한 가운데 벗님들과 함께....
답변달기
2010-05-10 12:53:39
0 0
임철순 (211.XXX.XXX.129)
흐흐흐. 내 그럴 줄 알았습니다.
답변달기
2010-05-10 13:35:56
0 0
정진홍 (211.XXX.XXX.129)
읽으면서 내내 웃었습니다. 왜 웃었느냐고는 묻지 마시기 바랍니다.
답변달기
2010-05-10 10:13:07
0 0
조창섭 (211.XXX.XXX.129)
띠동갑님! 얘기소재가 어쩌면 감동적입니다. 저는 죄송합니다만 군제대하고 땃으니 다음달이면 40년 됩니다. 특히 이달은 어떤일로 면허취소되어 다시딴지 1년되는달인데 할멈하고 회식 할건데~. 운전면허와 얽힌 재미나고 기막힌사연이 아주 많을겁니다. 잘 읽었습니다.
답변달기
2010-05-10 09:29:54
0 0
김왕열 (211.XXX.XXX.129)
1. 20주년 기념 시험한번 더보기 : 면허증은 있으니 마음 졸일필요는 없겠지요?
2. 해외토픽으로 나온 할머니 찾아가기
3.20살 먹은 청소년에게 운전면허와 인생에 대해 강연하기
4.그냥 넘어가기 ㅋㅋ
답변달기
2010-05-10 09:27:42
0 0

다음에 해당하는 게시물 댓글 등은 회원의 사전 동의 없이 임시게시 중단, 수정, 삭제, 이동 또는 등록 거부 등 관련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운영원칙]

  • 욕설 및 비방, 인신공격으로 불쾌감 및 모욕을 주거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
  • 다른 회원 또는 제3자의 저작권을 침해하거나 불법정보 유출과 관련된 글
  • 다른 회원 또는 제3자의 사생활 침해 및 개인정보 유출
  • 공공질서 및 미풍양속에 위반되는 내용을 유포하거나 링크하는 경우
  • 불법복제 또는 해킹을 조장하는 내용
  • 영리 목적의 광고나 사이트 홍보
  • 범죄와 결부된다고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내용
  • 지역감정이나 파벌 조성, 일방적 종교 홍보
  • 기타 관계 법령에 위배된다고 판단되는 경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