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소송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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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소송시대

고영회

2010년 05월 14일 (금) 00:22:04

소송서류를 전자문서로 내는 시대가 열렸습니다. 이를 일러 전자소송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전자문서 이용에 관한 법률’이 2010년 3월 24일 공포되고, 2010년 4월 26일에는 대법원 규칙으로 ‘특허소송에서의 전자문서 이용에 관한 규칙’이 공포됨으로써 특허소송사건부터 적용됩니다. 2012년부터는 거의 모든 민사사건에도 적용할 계획을 밝혀두고 있어 전자소송이 보편화될 전망입니다.

지금은 민사소송에서 소장, 준비서면, 증거자료들을 서면으로 제출하고 상대방은 종이로 된 서류를 전달받습니다. 전자소송에서는 이들 서류를 전자문서로 제출하고 상대방에게 전자문서로 전달해 주면서 재판을 진행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전자식으로 서류를 제출하는 방식을 전자소송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있어 오해할 여지도 조금 있습니다.

지금까지 소송서류를 제출하려면 직접 법원을 방문하거나 우편으로 제출했습니다. 방문할 시간을 낼 수 없는 사람에게는 부담이었죠. 그리고 우편으로 제출할 때에는 해당 기일까지 서류가 도착되어야 하는데 발송일로 오해하여 시기를 놓칠 위험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직접 방문하여 제출하거나 우편으로 제출할 것을 컴퓨터에 접속하여 전송하면 되므로 시간을 낼 수 없는 사람에게는 참 편리한 제도가 될 것 같습니다.

대법원 전자소송망(http://ecfs.scourt.go.kr)에 접속하면 진행상황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어 소송 당사자나 대리인도 편리합니다. 변론기일에는 전자문서로 제출한 서류를 열어 놓고 변론할 수 있습니다. 정보통신분야의 기반이 잘 구축되어 있는 우리나라에 적합한 제도라고 해도 되겠습니다.

이미 특허분야에서는 종이 없는 제도를 운용해 왔습니다. 특허청이 운용하는 특허넷은 특허출원부터 등록, 권리관리, 심판까지 전자식으로 처리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특허전산체계는 다른 나라에 수출할 정도로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특허심판원의 특허심판사건에서 변리사들은 전자문서로 제출하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습니다. 심판사건에는 전자소송제도가 이미 시행되고 있는 셈입니다. 특허소송부터 이 제도를 적용하는 것은 이런 경험이 축적되어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일 수 있겠습니다.

소송에서 전자문서를 제출하는 제도를 두고 “이제부터 나홀로 소송을 할 수 있다”는 식으로 받아들여서는 곤란합니다. 법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제도는 지금까지 종이로 된 서류를 제출하던 것을 전자문서로 낼 수 있도록 여러 가지 규정을 마련한 것입니다.

예전에는 서류를 사람이 직접 또는 우편으로 제출하던 것을 컴퓨터망에 접속하여 전자서류로 낼 수 있도록 한 것으로 제출방식을 전자식으로 바꾼 것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인터넷으로 모두 해결, '나홀로 소송’도 쉽게 할 수 있어요”라는 식으로 소개하는 것은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전자서류를 쉽게 작성할 수 있도록 형식을 정형화하고 필요한 내용을 채워 넣는 방식으로 만들어 두기 때문에 본인이 소송서류를 작성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측면도 있긴 합니다. 그러나 대리인을 선임하는 이유는 단순히 서류를 제출하는 일 때문이 아닙니다. 제도의 이해, 법리 해석, 법 취지에 맞는 논리 개발, 이를 뒷받침할 증거의 수집과 같이 법률가로서 역할이 필요하기 때문에 대리인을 선임합니다. 예전에 특허청에서 전자출원을 도입할 때에도 대리인 필요 없이 개인이 직접 출원할 수 있다고 소개하는 바람에 실체가 오해됐던 기억도 떠오릅니다.

전자소송제도가 도입됨으로써 문서를 작성하고 제출하는 데 애로가 있었던 사람은 도움을 많이 받을 수 있습니다. 종이서류를 한 보따리씩 싸들고 법정으로 가던 시절에서 인터넷에 연결되는 통신기기를 들고 법정으로 가는 시대로 첫 걸음을 내디딘 것입니다. 이미 진행 중인 사건은 적용되지 않는다고 하여 아쉬움이 남습니다.

소송에서 새로운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언제 어디에서나 서류를 제출할 수 있는 전자심부름꾼을 두게 됐습니다. 이래저래 컴퓨터 없이는 살기 불편한 시대로 가고 있습니다. 전자소송제도를 유능한 심부름꾼으로 만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하긴 이런 심부름꾼을 둘 일이 없다면 그게 더 좋은 일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