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의 사회학

인기검색어 : 자유칼럼, 에세이

홈 > 연재칼럼 | 김홍묵 촌철

거짓말의 사회학

김홍묵

2010년 06월 04일 (금) 00:42:39

두 돌도 안 된 손자 녀석이 생후 처음 거짓말을 하는 것을 보고 적잖이 놀란 적이 있습니다. 연초 식탁 위의 유리컵을 손으로 밀쳐 깨트린 일을 두고 잠시 뒤에 “누가 그랬니?” 물었습니다. 녀석은 바로 “하버지”라고 태연히 말했습니다. 가족 모두가 눈을 둥그렇게 뜨고 놀라운 표정을 짓자 “아이야, 원이가”라며 겸연쩍은 낯으로 제 잘못을 시인했습니다.

미국의 심리학자 로버트 펠드먼이 인간은 세 살 때부터 거짓말을 하기 시작한다고 한 주장과 일치했던 것입니다. 아이들이 가장 먼저 하는 거짓말은 “내가 안 그랬어”라고 한 예증과도 딱 맞아 떨어졌습니다. 네댓 살이 되면 한 걸음 더 나아가 “강아지가 그랬어” 같은 계산된 거짓말을 하게 된다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난감합니다.

30년 가까이 거짓말을 연구해 온 펠드먼 교수는 서로 낯선 사람 100여 명을 두 명씩 짝을 지워 10분 동안 자기소개를 하도록 했습니다. 녹화 필름 분석 결과 참가자들은 10분 동안 평균 세 번, 많게는 열두 번이나 거짓말을 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거짓말쟁이이며 세상은 온통 거짓말투성이라는 결론입니다.

거짓말은 인류의 유산인가 봅니다. 서양의 속담들이 그것을 반증하고 있습니다. ‘거짓말에는 세금이 붙지 않는다. 그러므로 온 나라에 거짓말이 넘쳐나고 있다’(독일), ‘거짓말을 할 때마다 이빨이 하나씩 빠진다면 이빨이 성한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스웨덴), ‘거짓말은 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의 무기다’(모로코)라고 했을 정도이니 말입니다.

동양이라고 뒤지지 않습니다. 항간의 양두구육(羊頭狗肉)·교언영색(巧言令色)·허장성세(虛張聲勢), 전쟁판의 성동격서(聲東擊西)·고육지책(苦肉之策)·가도멸괵(假道滅虢), 정치판의 곡학아세(曲學阿世)·호가호위(狐假虎威)·지록위마(指鹿爲馬) 같은 성어들이 허다합니다. 한결같이 속임수를 전제로 한 고사에서 유래된 말들입니다.

고금의 대 문호들도 거짓의 횡행을 언급했습니다. ‘죄악에는 허다한 도구가 있지만 그 모든 것에 공통되는 것은 거짓말이다’(호메로스), ‘가장 혐오스런 거짓말은 가장 진실에 가까운 허언이다’(앙드레 지드), ‘나는 나면서부터 거짓말을 상속받았다’(사르트르)라고. 철학자 안병욱(安秉煜)은 ‘사람만이 거짓말을 할 줄 아는 동물’이라고 단언하기도 했습니다.

요즘 우리 사회에는 온갖 분야와 곳곳에서 진실게임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검사와 스폰서, 군수의 도주극과 뇌물, 국회의원과 공천 헌금, 교육감과 승진사슬, 의사와 허위 건보료 청구, 변호사와 탈세, 원청업체와 봉이 된 하청업체, 공기업과 예산 낭비, 교수와 연구비 횡령, 모두 양심이나 소신으로 위장된 거짓의 산물입니다.

천안함 사건과 엊그제 치러진 지방선거는 국민의 의혹과 불안을 더욱 증폭시켰습니다.
진상규명과 공약(公約)이라는 이름으로 낭설과 비어(蜚語), 허언과 공약(空約)이 난무하여 국론을 양분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진실을 가려내기가 강바닥에서 사금을 캐내기보다 어렵습니다.

“한반도에 다시 전쟁은 없다”고 한 정부의 천명이 몇 년 되지도 않았는데 서해에서 터진 천안함 폭침(爆沈)사건. 진상조사에 참여한 외국은 ‘북한 소행’을 공식화하고 있는데도 우리만 엇갈린 주장으로 혼란을 주고 있습니다. 4년 전 우리 손으로 뽑은 단체장의 48%(230명 중 110명)가 비리·위법 혐의로 기소됐다고 합니다. 이번에도 또
‘썩은 풀뿌리’를 고르지 않았는지 걱정입니다.

거짓말도 각양각색입니다. 큰 거짓말, 작은 거짓말, 뻔한 거짓말, 황당한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하얀 거짓말···. 아이들은 성장하면서 ▶재미로 장난삼아 ▶자기 존재를 과시하려고 ▶자기방어를 위해 ▶위해를 가한 타인에게 보복하거나 ▶탐나는 것을 수중에 넣으려고 ▶친구 등 남을 돕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고 합니다. 대부분 무의식적인 거짓말로 교정도 가능합니다.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은 의식적인 거짓말, 즉 악의적 거짓말입니다. 사기·횡령·배임·수뢰·유괴·간음 등 대부분의 범죄에는 거짓말이 끼어듭니다. 피해자는 부서진 신뢰로 인해 심한 분노와 배신감을 느낍니다. 이로 인한 폐해는 소외감·불안감·좌절감을 일으키고, 심한 경우 우울증·약물중독에서 자살로까지 이어집니다.

매체의 다양화와 인터넷 공간의 증대는 거짓을 한층 더 확산시키고 있습니다. 비교우위를 점하려는 정치·정당선전, 소비자를 현혹하는 기업광고, 생사를 건 이익집단의 주장. 우리는 하루도 이런 공세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 속에 어떤 거짓이 숨어 있는지 확인할 수도 없고 분별력도 떨어진 것 같습니다.

거짓말 쓰나미 세상에서 온전하게 살아갈 묘안은 없을까요? 남의 거짓말엔 화가 치밀고, 재봉틀을 쓰자니 내 입도 꿰매야 하겠고, 휴대용 거짓말 탐지기가 있으면 좋겠는데 구할 길이 없고, “사람은 입으로 거짓말을 하지만 그 주둥이가 진실을 고백한다”는 니체의 명언을 믿고 기다리기엔 맥없이 지루하고···.

김윤옥 (210.XXX.XXX.12)

본문의 거짓말 하고는 조금 다른 내용이지만.최근에 아파트 화단에 채송화 꽃 모종을 사다 심었는데 누군가 그 중 한개를 뽑아갔습니다. 너무 속상한 나머지*뽑아가지 마세요. 먼 곳에서 사왔답니다* 하는 팻말을 세웠습니다. 다음 날 누군가가 꽃 모종의 절반을 다시 심어놓았습니다. 반갑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미안 하기도 하고, 내가 너무 야뱍했던 것같기도하고....
그 뒤 그 누군가가 저녁마다 물을 주는 것이 보였습니다. 나는 왠지 차마 가까이 다가가 그가 누구인지 확인 할 수 없었습니다.

답변달기 ▼

2010-06-08 13:50:52

0		0

다비 (174.XXX.XXX.104)

그림같은 동화같은 얘기입니다. 아름다운 세상이군요.

답변달기 ▼

2010-06-15 09:00:57

0		0

차덕희 (121.XXX.XXX.215)

고령의,노환으로 얼마 안남은 삶앞에 자손의 죽음을 숨기는 경우를 자주 봐왔습니다.
악의의 거짓말에는 침묵으로 대항한 적이 있었습니다만.....
"입이 만가지 화의 근원"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처신의 근본은 "정 구업"이지만,행하기는 어렵던데요.

답변달기 ▼

2010-06-07 20:24:47

0		0

다음에 해당하는 게시물 댓글 등은 회원의 사전 동의 없이 임시게시 중단, 수정, 삭제, 이동 또는 등록 거부 등 관련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운영원칙]

욕설 및 비방, 인신공격으로 불쾌감 및 모욕을 주거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
다른 회원 또는 제3자의 사생활 침해 및 개인정보 유출
공공질서 및 미풍양속에 위반되는 내용을 유포하거나 링크하는 경우
불법복제 또는 해킹을 조장하는 내용
영리 목적의 광고나 사이트 홍보
범죄와 결부된다고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내용
지역감정이나 파벌 조성, 일방적 종교 홍보
기타 관계 법령에 위배된다고 판단되는 경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