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의 유훈_(김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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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의 유훈

김영환

2010년 06월 15일 (화) 01:07:25

행정도시 문제가 다시 거센 폭풍을 몰고 올 조짐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6월14일 아침 라디오 연설에서 세종시 문제에 대해 국회의 결정을 존중하겠다면서 회기 내 처리를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이 대통령은 “정권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따지지 않고 국가 백년대계와 지역 발전을 위해 수정을 추진했다”면서 “국정 효율과 국가경쟁력, 통일 후 미래 등을 생각하면 행정부처를 분할하는 것은 두고두고 후회할 일을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세종시 문제로 “국론 분열이 지속되고 지역적, 정치적 균열이 심화되는 것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 안보나 경제를 위해 단합이 매우 중요하다”면서 “투자를 시작해야 하는 기업들을 더 이상 기다리게 할 수 없다”고 국회의 법안처리를 강조했습니다.

야당은 이에 대해 아직도 대통령이 민심을 모르고 있다면서 국회에 책임을 넘기지 말고 세종시 수정안을 자진 철회하라고 공격했습니다. 글쎄요. 지난번 지방선거에서 나타난 여당 패배의 민의를 딱히 세종시 수정의 백지화 요구라고 단정할 수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죠. 이것이 혹시 일부에서 걱정하는 정책 추진력 상실의 레임덕 현상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한나라당의 지방선거 패배는 집권 다수당으로서의 정책을 자신 있게 추진하지 못하고 늘 이 눈치 저 눈치 보면서 갈팡질팡 행보로 비틀거리다가 산토끼는커녕 집토끼도 놓친 면이 있죠. ‘전쟁이냐 평화냐’라는 이슈로 번진 천안함 폭침사건만 해도 도주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미확인 물체를 향해 발포했다면 될 것을 둘로 갈라졌다가 하나로 합쳐졌다가 해서 새떼가 분명하다고 거짓말을 했으니 정부에 신뢰가 생길 리 없는 것이죠. 새떼라면 그냥 관찰하면 되지 76미리 주포로 왜 발포합니까? 그렇지 않아도 한반도의 화약고인 서해 NLL에서 심야에 사격연습 합니까?

그건 그렇고 행정도시만큼은 이번 기회에 국민의 총의를 확실히 헤아리고 넘어가야 합니다. 헌재의 위헌결정이 난 수도이전의 ‘우회 상장(백도어 리스팅)’같은 9부2처2청 이전의 행정도시 건설은 국회에 맡겨 보았자 국민을 진절머리 나게 하는 정쟁거리 밖에 안 될 것입니다.

정부 부처의 이전과 관련하여 올 2월8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한나라당 진수희 의원은 1977년 11월 진주교도소에 수감되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희호 여사에게 보낸 옥중서신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추진하던 행정기관의 충청 이전을 반대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진 의원은 이에 앞서 연초에 "세종시 수정을 추진하는 대통령과 정부, 이를 반대하는 야당 모두에게 도움이 될 만 한 자료를 찾았다"고 밝혔습니다. 진 의원은 DJ가 이 서한에서 "지금 서울의 위치는 처음으로 가장 올바른 수도의 자리가 된 것으로 정부와 국가의 모든 지도적 인사들이 국토방위에 끊임없이 긴장하며 숨쉬고 있을 때, 그 남쪽의 국민들의 믿음과 협력은 무한히 솟아오를 것이다. 세계 각국의 수도란 모두 국토방위의 최전선에서 일국의 수도라는 지지를 얻어온 것이다“라고 말했다면서 통일 문제를 고려할 경우 행정기관 이전은 옳지 않다는 함의를 읽을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민주당은 표를 얻어야할 때가 되면 김대중 정신을 계승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떠받드는 DJ의 유훈인 행정기관 이전 반대에 대한 정치철학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충남은 지금 우리나라에서 지역내총생산(GRDP) 성장률이 전국 1위입니다. 잘 나가는 곳에 더 퍼주자고 하니… 다른 곳은 손가락을 빨라는 말입니까? 납득이 가는 주장을 해야죠. 균형발전은 부처 이전이 아니라 권력을 지방에 나눠주는 것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2005년 4월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의 김문수 의원(현 경기도지사)은 대정부질문에서 수도이전에 대해 이해찬 당시 국무총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4년 2월 24일 취임 1주년 방송기자클럽 회견에서 국회 동의 후에라도 국민투표를 통해 여러 가지 정책의 안정적 기반을 마련하겠다고 이야기하는 등 지금까지 다섯 번이나 국민투표를 하겠다고 대외적․공개적으로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나라의 주인이 대통령이 아니라 바로 국민인데 지금이라도 대통령께 국민투표를 실시하게 건의하실 생각이 없습니까?” 답변에서 이 전 총리는 “부처 12개를 옮기는 것은 국가안위에 관한 정책이 아니므로 국민투표 사안이 아니다”라고 일축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에게 투표한 사람들 중에서는 국민투표 약속을 믿고 지지한 사람들도 상당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 노 전 대통령은 ‘노무현스럽게’, 철석같이 믿었던 국민투표 실시를 식언하여 혼란을 계속 유발한 셈이죠.

‘노무현 당선=수도 이전’ ‘지방선거 승리=행정도시 건설’이라는 논리를 펴는 사람들은 서울시장 시절 ‘그럼 어떻게 하나, 군대라도 동원해서 막을까’라고 말한 이명박 후보의 580만 표 압승, 대통령 당선이야말로 행정도시 백지화를 요구하는 명쾌한 민의라고 해석해야 할 겁니다.

이제 행정도시 논란이 지겹지도 않습니까? 정공법을 택합시다. 권력의 최종 보유자이자 이전비용을 세금으로 대야 하는 국민들이 국민투표로 종지부를 찍읍시다. 국민투표 비용 정도야 수도분할의 천문학적 낭비에 비하면 ‘푼돈’인 셈이죠. 시류에 따라 오락가락하는 정치인이 아니라 국민들이 역사에 책임지고 찬반 논란을 끝장내자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