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16강_(임종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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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16강

임종건

2010년 06월 21일 (월) 01:33:18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4강에 진출한 한국 팀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신화라고 불렀습니다. 그 해 6월 우리는 아름다운 꿈에 도취해 한 달을 보냈습니다. 퇴근 후 붉은 악마 티셔츠를 입고 광화문 광장에서 “대~한민국”을 외치던 감격이 되살아납니다.

그런 한국 팀의 목표가 남아공 월드컵에선 왜 8강도, 4강도, 우승도 아닌 16강이어야 할까. 2002년에 겨우 16강에 들었던 일본도 4강이 목표라던데. 그 이유도 결국 한국과 월드컵의 관계속에서 살펴봐야 하겠지요.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 처녀출전해서 헝가리에 9대0으로 참패한 것은 악몽의 전설로 내려오고 있지요. 그 후 이번 대회까지 8회 출전을 하고 있고, 특히 1986년 멕시코 대회 이후엔 7개 대회에 연속 출전을 하고 있지요.

그것만 해도 아시아에서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굉장한 기록이지요. 인구 16억의 중국도 한일 월드컵 때 개최국의 자동출전 규칙에 따라 한국 일본과 겨룰 필요가 없어진 통에 본선 출전 기회를 한번 잡았을 뿐이지요.

그렇게 여러 번 출전을 했지만 2002년 이전까지는 잘 해야 비기고 대부분 졌지요. 16강 진출은커녕 1골, 1승이 꿈이었던 겁니다. 그런 한국 팀이 2002년 대회에서 48년 만에 2승1무의 성적으로 16강에 진출하더니 파죽지세로 4강까지 진격한 겁니다.

아시아 국가 중에서 4강의 문턱에 갔던 나라는 1966년 영국대회 때 북한이 유일합니다. 당시에는 2차전이 8강전이었는데 포르투갈에 에우제비오라는 전설적인 선수가 없었더라면 북한은 4강에 진출했을 겁니다. 전반에 3대0으로 이기다 후반에 에우제비오의 4골을 포함해 5골을 먹어 역전패를 당했던 것이니까요. 북한으로선 이번 대회가 그 때 이후 44년 만의 출전인데 포르투갈과 같은 조에 들어 설욕을 벼르고 있죠. 지금의 포르투갈 팀에는 에우제비오에 버금가는 호날두가 있는데 그를 극복하고 꼭 이기기를 바랍니다.

이 ‘사건’은 아시아에 대한 티켓배정을 1장으로 늘리는 계기가 됐다고도 하지요. 그 이전에는 0.5장에 불과했는데, 1954년 대회에서 한국의 9대0 패배도 빌미의 하나가 됐다고 해야겠지요. 남아공 월드컵에서 아시아 출전권은 호주까지 포함해 4.5장인데 이중에서 남북한이 돈 많은 중동국가들, 중국 인도 인도네시아 같은 인구대국들을 제치고 동반 출전하고 있습니다. 그것 자체로 대단한 일이고, 월드컵과의 인연으로 볼 때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2002년 대회의 ‘4강 신화’는 홈그라운드 대회였다는 점을 빼고선 설명하기 어려운 신화적인 요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홈그라운드의 이점이라고 하면 흔히 불공정거래가 연상되지만 그게 아니고 ‘붉은 악마’로 상징되는 ‘5천만의 응원’ 효과를 말하는 겁니다.

경기장의 스탠드는 물론이요 경기장 밖을 에워싼 수만 명의 응원단, 전국의 거리와 안방의 TV앞에서 5천만이 한 마음으로 외쳐댔던 ‘대~한민국’의 함성이 우리 선수들에겐 사기를 충천케 했을 것이고 상대 선수들에겐 오금을 저리게 했을 테니까요.

남아공 대회의 첫 경기에서 한국이 그리스를 2대0으로 이긴 뒤에 그런 분위기가 다시 살아나는 조짐이었지요. 아르헨티나에 4대1로 패해 다소 주춤하는 분위기지만 나이지리아를 이기기만 하면 16강 진출도 가능하다고 하니 23일 새벽 열심히 응원을 해볼 참입니다.

이런 점들을 살펴볼 때 ‘원정 월드컵 16강’은 신화가 아니라 현실 속에서 설정한 목표라고 하겠지요. 하지만 누가 압니까. 신바람은 한국인에게 내재된 특별한 에너지 아닌가요. 한번 신바람을 타면 신화가 재현되지 말란 법도 없지 않겠습니까. 남아공까지의 거리는 응원의 함성이 전달되기에는 멀지만 기로 변환시킨다면 얼마든 가능한 일이죠.

하나 마음에 걸리는 점은 아르헨티나에게 지던 날 거리응원단들이 쓰레기 치우기가 매우 소홀했다고 하네요. 응원은 이길 때나 질 때나 한결같아야 함성이 정기(精氣)로 변해서 선수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