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하녀_(김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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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하녀

김창식

2010년 07월 08일 (목) 04:34:10

칸 영화제 출품작으로 화제를 모았던 임상수 감독의 '하녀'는 고 김기영(1919~1998) 감독의 1960년 작 동명 영화(이은심, 김진규 주연)를 리메이크한 작품입니다. 우리 영화의 수준을 가늠해 볼 수 있다는 기대와 혹시 기대를 벗어나지 않을까 하는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영화를 보았지요.

필자가 영화를 보는 관점은 대략 세 가지입니다. 1)말하려고 하는 내용이 무엇인가?(소재‧주제) 2)그것이 어떻게 영화적으로 형상화되었나?(표현) 3)전반적 인상, 소개할 만한 촬영기법이나 장치, 특별히 관심을 끄는 대목, 영화적 진실이 실제현실에 수용되는 맥락(특기사항) 등. 3)항은 필수적인 것은 아니며 1)항과 2)항의 중요도는 섣불리 방점을 찍을 수 없지만, 걸작(Masterpiece) 또는 전범(Canonized Film) 반열에 오르는 작품은 대체적으로 세 요소가 조화를 이룹니다.

영화 '하녀'를 관람하고 난 후의 느낌은 석연치 않은 의문이 남는 허점이 많은 영화라는 것입니다. 우선 영화의 주제가 무엇인지 헷갈립니다. 빈부격차의 문제점이나 물신사회에서의 인간성 상실을 주제로 내세운 사회 비판적 드라마인가? 고개가 갸웃해집니다. 부자 주인과 대립각을 세우는 하녀1(주인공 전도연), 하녀2(집사 격 늙은 가정부 윤여정)의 신분은 결코 사회 극빈층이 아닙니다. 하녀1은 지방에 집을 전세주고 온 어엿한 주택 소유주고, 하녀2의 아들은 검사입니다. 두 사람 다 비빌 언덕이 있으며 막판에 내몰린 사람들이 결코 아닙니다. 영화 속 인물들이 자조하고 마뜩치 않아 하는 데 대해 관객들이 공감대를 가질 수 없는 이유입니다.

그렇다면 영화 포스터에 소개된 것처럼 인간의 근원적 욕망에 엇갈린 관계 드라마인가? 이 해석은 그럴 듯합니다. 그렇다면 등장인물의 성격이 치밀하게 묘사되고 심리적 이권의 충돌 등 인과관계가 드러나야 하는데 영화는 이점을 소홀히 합니다. 무엇보다 인물들의 성격이 잡히지 않습니다. 주인공인 하녀1은 영악하지도 멍청하지도 않고 뚜렷한 주관도 있어 보이지 않습니다. 주인 남자의 섹스 요구에 놀라거나 거부하지 않습니다.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던 모양. 그렇다고 정신적 외상(Trauma)에 사로잡힌 인물도 아닙니다. 아이가 유산되고 복수를 꿈꾸는 과정도 감정 이입이 되지 않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치열한 갈등과 고뇌의 과정이 생략된 때문이죠. 주인 남자(이정재)는 전혀 존재감이 없습니다. 댄디하지도 카리스마가 있지도 않습니다. 주인 여자(서우)는 '껌 좀 씹는 비행소녀' 이미지고 등장인물들 사이에 균형을 잡아주는 비중 있는 역할인 늙은 하녀2도 '가진 자'들의 횡포에 울분을 터뜨리는 상식적 인물로 묘사됩니다. 그나마 주인 여자의 친정어머니(박지영)는 스테레오 타입이지만 자연스러운 연기를 펼칩니다.

영화를 보면서 느낀 최대 의문은 클라이맥스 부분, 등장인물이 모두 모인 거실(갈등이 해소되는 폐쇄적 공간)에서의 하녀1의 돌발행동에 관한 것입니다. 아이의 유산과 심리적 몰락을 경험한 그녀가 극단적인 행동을 시도한 것은 이해가 가지만, 문제는 그 장면을 환상적 촬영 기법으로 처리했다는 점입니다. 미드 '슈퍼 내추럴'이나 '고스트 위스퍼러'를 보는 것 같습니다. 임상수 감독의 의도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하녀'의 장르는 괴기스러운 스릴러나 호러가 아닙니다. 리얼리즘, 나아가 자연주의 계열 영화인데 느닷없이 끼어든, 공포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환상적 장면이라니. 나무에 대를 접한 모양새로 어울리지 않는 설정이 관객을 어리둥절하게 합니다.

마지막 장면도 함의가 무엇인지 알 수 없기는 마찬가집니다. 새로운 하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단란해 보이는 주인 가족이 저택 정원에서 아이의 생일파티를 열어줍니다. 아이가 관객에게 다가오고 얼굴이 클로즈업되며 영화가 끝나지요. '열린 결말'을 채택해 관객을 상상의 세계로 끌어들이려 한 것 같은데 도대체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혹, 맥거핀(MacGuffin. 개연성과 이유가 없는 의도적 홀림 장치)? 그것은 아닐 것입니다. 맥거핀이 영화 엔딩 장면에 사용된다는 것은 금시초문,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것은 내용이 전개되는 초‧중반에 사용해야 효과적인 기법이거든요.

'하녀'가 우리 영화의 수준을 대표하는 영화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개봉 전부터 입소문으로 관심을 모은 노출신은 빈번하지도, 화끈하지도 않았지만 감탄스러운 대목이 한 군데 있었습니다. 주인 남자와 하녀1의 오럴 섹스 신. 노출 수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둠 속에 꿇어 앉은 여주인공 앞에 나신(裸身)으로 선 주인 남자의 그림자가 팔을 점점 허공으로 내뻗으며 환희의 포즈를 취하는 신은 엑스터시와 장엄함을 느끼게 하는 명장면입니다. 신화적 상상력을 자극하고 중세 서사적 영웅담의 주인공을 보여주는 듯한.

김윤옥 (210.XXX.XXX.8)

딸아이 내외가 아기를 잠재워 놓고 심야에 이영화를 보고와서는 뭐가뭔지 떨떠름하다길래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그 뒤 이영화에 잔뜩 기대를 걸었던 사람들의 공통된 실망을 들으면서 그동안 우리영화가 흥행면에서나 예술적 측면에서나 대중적으로 많이 발전했다고 생각했는데 김창식님의 예리한 비평의 글을 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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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12 00:3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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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식 (110.XXX.XXX.242)

그러게 말입니다, 김윤옥님. 걱정했습니다만 저만 그리 본것이 아니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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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12 15: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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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y (112.XXX.XXX.231)

할머니? 여학생들을 포함, 대학 동문 여섯명이 지난 5월, 칸 국제 영화제 시상 직전에 서대문 정동 극장에서 '하녀'를 관람했습니다. 70년대 '아더메치'란 당시 유행어도 나와서 반가왔고, 관객에 따라 평가가 好不好로 완벽하게 갈릴것이란 제 예상은 완전히 벗어났습니다. 제목처럼 대중성도 떨어지는데다가, 맹추인지 cool한건지 종잡을 수없는 여주인공 은이(전도연)의 행동과 사고 방식이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배우 문소리가 산부인과 의사로 깜짝 까메오로 우정 출연하더군요. 제가 좋아하는 윤 여정이가 늙은 하녀(집사)로 나온다 하길래 관심있게 보았는데, 역시 그녀의 연기는 더 이상 언급할 필요가 없이 완벽, 그나마 이 영화의 맥을 이어주더군요. 수확은? 37세 동갑나기 남,녀 주인공의 예쁜 몸매 감상 정도였답니다. 김 작가님의 영화평은 참 예리하시고, 정말로 맛갈나십니다. 앞으로도 쭉~ 좋은 칼럼 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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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09 06:4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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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식 (218.XXX.XXX.134)

happy님 공감래주셔서 감사합니다. 영화 감상 포인트가 저와 비슷해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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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09 16:4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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