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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행복
방석순 2007년 03월 19일 (월) 11:06:42
매주 목요일은 송파에 있는 주간 신문사의 편집회의가 열리는 날입니다. 강남의 뱅뱅네거리에서 10 여분 기다리면 서울에 아직도 이런 버스가 굴러다니나 싶을 만큼 후줄근한 버스가 나타납니다.

차에 오르면 좋으나 싫으나 운전기사의 기호에 맞춰 라디오 방송을 듣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어느 집 시시콜콜한 가정사를 들을 때도 있고, 무슨 토론인지 귀 따갑게 떠드는 소리를 오랫동안 들을 때도 있습니다. 어떤 땐 핸드폰으로 누구와 다투는 것인지, 차내 확성기가 켜져 있는 줄도 모르고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는 운전기사를 만나기도 합니다. 아침 시간 즐거운 기분은 대부분 이렇게 해서 망가지게 마련입니다.

버스를 탈 때마다 한국에 시집살이 왔다는 맹랑한 일본인 새댁 요코짱의 만화-새댁 요코짱의 한국살이-가 머리에 떠오르곤 합니다. 한국의 경치를 보겠노라고 맨 앞자리에 앉았다가 체감속도 200km의 질주에 눈을 감고 죽음을 각오했다던 이야기. 일본에 다니러가서도 조건반사처럼 버스가 서기 전에 문간에 나섰다가 운전기사로부터 야단맞았다던 이야기 등등.

그러나 오늘은 운이 좋은 날입니다. 눈부시게 차창과 몸체가 깨끗이 닦여진, 더구나 바닥이 보도 높이와 비슷한 저상버스를 탔기 때문입니다. 차 문에 올라서며 “와- 이렇게 좋은 버스는 처음 타 보네요”하고 인사를 건네자 운전기사도 기분이 좋은지 연신 싱글벙글입니다. 며칠 전 이 노선에도 드디어 천연가스버스 5대가 들어왔노라고 자랑까지 합니다. 차 안에 앉은 사람들 모두가 환한 얼굴입니다. 요코짱에게도 자랑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천연가스버스는 사실 버스회사의 서비스 개선이 아니라 시민들 주머니돈으로 마련되는 것입니다. 서울시가 2004년 7월 대중교통체계를 바꾸어 준공영제를 실시하며 연간 천억원대의 지원금을 버스회사에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세금으로 낸 돈이 이런 정도의 서비스로 되돌아오는 것이 고마울 따름입니다. 서울시는 시민 편의는 물론 대기오염을 줄이기 위해 2010년까지는 시내버스를 모두 천연가스버스로 바꾼다는 계획입니다.

대당 1억5천만원 가량 한다는 저상버스의 운전석 앞 전광판에는 다음 정류장 이름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앞자리엔 본래의 의자를 젖히고 휠체어를 세워 고정시키는 장치도 있습니다. 통로가 널찍해 휠체어가 오르내리는 데도 아무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막 정류장에 도착해 버스에서 내린 아주머니 한 분이 걸어가다 말고 뒤돌아서서 다시 한 번 버스를 쳐다봅니다. 환한 미소를 머금은 채. 소시민의 행복이 그리 멀리 있는 게 아님을 오늘 버스에서 확실히 느껴봅니다.

그러나 이런 작은 행복을 위협하는 요소들도 하나 둘이 아닙니다. 때로는 버스 회사의 최일선 봉사요원인 운전기사가 아무 생각없이 주인 행세를 합니다. 앞차가 늦게 간다고 가속페달과 급브레이크를 부술 듯이 밟아댑니다. 승객들은 황소 등에 올라탄 로데오선수처럼 몸을 가누기도 힘겹습니다.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구성진 노랫가락을 따라 부르는 기사도 있습니다. 신호대기 중에 차 문을 열고 옆에 나란히 선 다른 버스 기사와 잡담을 나누는 기사들도 자주 봅니다. 그들에게 서비스정신을 요구하는 일은 아직도 무리일까요.

도로도 순탄치 않습니다. 이곳저곳 도로공사, 전기공사, 수도공사, 가스공사로 팠다 덮었다 마감한 자리가 파도치듯 터덜거립니다. 버스 전용차선을 넘나드는 곡예차량에 아예 버스정거장을 무단으로 점거한 차량들도 부지기숩니다. 도리없이 버스는 안쪽 차선에 정차하고 승객들은 지나다니는 차를 피해 보도로 올라서야 합니다.

경찰은 민중의 지팡이랬던가 뭐랬던가. 한동안 차가 신호 대기선만 밟아도 딱지를 떼던 교통경찰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한적한 뒷골목에서 숨은 듯 기다렸다가 안전벨트 미착용자, 음주운전자 단속을 하고 있을까요. 검찰과의 힘겨루기에 진이 빠진 것인지, 각종시위를 막다 지친 것인지, 요즘 민생 현장에서 경찰 찾아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시민들의 작은 행복을 지켜줄 용의는 없는지 묻고 싶습니다. 일상생활이 이어져가는 도로 위에서 지금 시민들은 행복은커녕 생명을 지킬 안전마저 위협받고 있는 실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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